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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었네?

희망으로 2024. 9. 2. 05:04

‘잘되었네…’

늘 할때마다 힘들다 생각은 하지만
유난히 더 힘들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내가 몸 상태가 안좋거나 아내가 아주 컨디션이 나빠서
몇번이나 눕혔다가 세웠다가 반복하며 씻기는 날이 그렇다
환자 목욕을 시키는 일은 그렇다.
특히 몸을 가누지 못하며 앉아 있기도 힘든 환자는 더 그렇다

병원생활을 하던 어느날 다른 날처럼
아내를 목욕시켜 병실로 돌아온 날이었다
땀에 범벅이 되고 지쳐 돌아온 그 순간
병실의 티비에서 슬픈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다들 혀를 차고 안타까워하는데 내 속에서 얼른 떠오른
말 한마디에 내가 하고도 놀랐었다.
‘잘되었네…’

25년을 치매 할머니를 돌보던 할아버지가
자기마저 암에 걸려 더 이상 간병하기 힘들어 고민 끝에
아내를 질식사 시키고 자신도 죽으려고 했는데
발견되어 살아난 사건이었었다
그 뒤 소식은 모르겠다. 감형이 되었는지 교도소에 있는지.
그런데 왜 내 속에서 대뜸 ‘잘되었다 이제 끝이 나겠네’
그런 말이 떠올랐는지…

정말 감당이 안되는 나이가 되면 어쩌지?
늘 그런 고민과 고단함이 아마 내속에 가득했었나보다
젊을 때는 참 많은 계획과 목표와 소원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소원의 내용이 좀 달라졌다
그저 내몸이 아내가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건강하기를
버틸 수 있을만큼 유지만 되기를 빌게 된다

젊을 때 잘못된 태도가 또 하나있다
어지간해서는 감사하거나 감동하지 않았던 몹쓸 반응
대부분 뭐 내가 잘나서 당연한 복이거나
그거 없어도 내 힘으로도 가능한 일 또는 대상이라는
자립심과는 질이 다른 자만심 때문이었다
그러니 뭐가 감사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런데 이제와 생각하니 참 바보같았다.
황금 덩어리나 벤츠가 없어서 죽지는 않는다.
일용할 양식이 없어서 죽는 경우는 있어도.
그런데 그런 것도 아닌데 뭘 감사하고 감동해? 그랬다
사람은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고 람보처럼 센 힘이
사는데 필요한게 아닌데 그런 걸 부러워한다

정작 아픈 아내를 오래 지켜보면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고 정말 감사할 일은
내 발로 걸어서 화장실을 가고 볼일 보는 건강이다
그저 의식도 못하면서 숨 쉬고 잠들 수 있는
그런 기본적 건강이 날마다 주어지지 않으면 못산다
그걸 모르고 엉뚱한 대상을 복이라고 부러워하며
그게 나에게 없다고 불평하며 살았다니..

일용할 양식과 내 몸 움직일 건강주시기를 빕니다
조금 더 보태주셔서 가족을 돌볼 시간까지만 주시면…
그럼 무지 감사하고 기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