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행복한 글쓰기 보물상자

나는 믿는 걸까? 아는 걸까?

희망으로 2024. 8. 12. 13:42




‘나는 믿는 걸까? 아는 걸까?’

며칠 전 끝난 어느 드라마에서 대사 한 부분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겉으로 거칠어보이는 상사와 겉으로는 좋은 상사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심하게 자리 다툼을 하는 중에 출세를 바라는 중역 한명이
그 두 상사의 파워게임에 오락가락하며 줄을 탔다.
마침내 드라마가 끝이 나고 겉으로 보는 선입견과 다른 진실이 밝혀졌다.
중반쯤에 수세에 몰리고 억울한 누명까지 쓴 상태일 때
“너는 나를 믿냐?” 라고 겉은 거칠어보이는 상사가 물었다.
줄타는 중역의 그는 “저…그게, 그러니까” 하며 바로 대답을 못했다.
“상황이 끝난 지금은?” 하면서 이전에는 왜 못 믿었냐고 물었다.
“그때는 모든 게 안개속처럼 안보여서…”

문득 믿음이런 어떤 걸까?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보이는대로 믿다가 안믿다가, 아는데로 믿거나 안믿고…
그건 믿음의 관계는 아니지 싶었다.
그건 그냥 보는 거고 아는 거지.
안보일때도 믿어주고 눈을 감아도 흔들리지 않으며
믿어주는 상태가 진짜 믿음이고 믿는 사이가 아닐까?

아내가 무슨 병인지 진단도 받지 못하고
온갖 병원을 돌아다니고, 그 와중에 점점 증상은 심해져서
응급조치로 큰 병원을 입원 퇴원을 반복하던 첫 해였다.
추수감사절 전 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예배시간에
‘날마다 감사’ 를 가족송으로 부르고 이어 짧은 간증을 했다
사실 아직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지금도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니지만
어떻게 되던지 늘 감사를 드리고 싶다고 고백하였다.
그럴 수 있을 거 같았다. 아니, 꼭 그래야 된다고 다짐도 했다.
그런데 그때는 나중의 상태에 비하면 십분의일, 백분의 일이었다.
아픈 정도도 그랬고, 비용을 포함한 여러 난감한 문제도 그랬다.
가정의 상태도 폭탄맞은 것처럼 뿔뿔이 흩어져 심히 괴로웠다.

그 뒤로 죽기살기로 기도도 하고 눈물도 많이 흘리고 원망도 많이 했다.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를 드리겠다는 간증 고백은 무색해졌다.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할 여유도 없을만큼…
많이 지나 돌아보니 그건 믿음도 감사도 아니었다.
얼굴이 붉어지도록 민망하고 한없이 자신이 초라해졌다
물론 완전한 바닥에 내려가 거기 미리 계신 분을 만나고
평화도 얻고 짐도 좀 떠넘기고 물처러 바람처럼 살아야지
생각하면서 다시 마음의 평안을 회복하기도 했다.

병이 나을때만, 소원이 이루어질 때만 믿는 것은
그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지
특별한 믿음의 상태는 아니다. 잘 믿는 신자도 아니고.
무언가 손에 들어올 때만, 일등하고 승리할 때만
감사하는 것도 그럴지 모른다. 그건 그냥 반응일뿐.
어느 믿음의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하는 걸 부끄러워했다.

보이는 것만 믿고 아는 만큼만 믿고, 그건 믿음 아니다
안보이는 것과 모르는 것도 믿어주는 게 믿음이지
재산이나 이익이 들어올 때도 나갈때도 감사하고
몸과 마음이 아플때도 건강할 때도 감사해야 진짜고
나를 좋아하는 이와 나를 싫어하는 이도
같이 기도해줄수 있어야 진짜 사랑이지!
그런 사랑이 내안에서 싹트기를 빌어본다.
여지껏 쉽지 않던 그 어려운 숙제같은 기도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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