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기도 12 - 바람의 이름은 변합니다. 고난처럼
병원에서 환자 아내를 돌보며 보조침대에서 자는 날이 십여년을 넘는 동안 온몸이 참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60센치 폭의 낮고 좁은 자리에서 바닥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두 팔을 가슴에 올리고 밤새 꼼짝도 않고 잠이 들어야 합니다. 그 긴장과 부동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자는 동안 몸 여기저기 많은 근육과 뼈에 통증을 부릅니다. 그 바람에 근처 한의원의 단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단한 몸보다 더한 고단함을 안고 아침을 맞이하는 날이 종종 있습니다. 집사람이 밤이면 더 진하게 몰려오는 우울증에 잠못들고 울어대서 끈 불을 다시 켜고 다독이다 늦게 간신히 잠이 드는 바람에…
아내는 슬픔이 한번 터지면 몇시간을 통곡하다시피 울어서 비상이 걸립니다. 행여 또 울다가 심장이 딱딱해지는 과호흡에 걸려 고생할까봐 우황청심환도 먹여보고 신경안정제도 먹이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곤 합니다.
한 번씩 가슴 조이고 달래다보면 저도 지칩니다. 당시는 제발 무사히 넘어가기만 바라다가 막상 잠잠해지면 화도 나고 서럽기도 합니다. 이렇게 심한 상황이 점점 잦아지면 어떻게 견디나 무겁기도하고요. 한편 왜 내가 이런 불행의 쳇바퀴에 걸렸을까? 원망스럽습니다. 이 굴레같은 상황을 벗어날 무슨 뾰족한 길도 안보이고 막막합니다. 그러면 또 기운이 빠집니다.
‘이제 못하겠다 여기까지만 할까? 다들 잠든 새벽에 가방하나 챙겨 그냥 도망을 가버릴까? ’ 별 생각이 몰려옵니다. ‘그래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하는 생각이 미치면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십여년이 넘도록 애써온 아이들과 주변 여러 사람들의 정성이 와르르 모래로 쌓은 탑처럼 무너질까봐 슬프기도 하고요.
그러다 문득 고난이 바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도 그렇고 언제 휙 올지 예상을 못하는 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비슷한 것은 우리가 느끼고 단정하는 기준이 순전히 자기 중심이라는 점입니다.
바람에는 밀어주는 바람과 막아서는 바람이 따로 없습니다. 누군가 갈 방향을 정하는 순간 순풍과 역풍이라는 바람의 이름이 붙을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고난도 바람과 비슷합니다. 그 속성과 끝이 반드시 유익한지 무익한지는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고 그 길을 걸은 사람에 의해 붙는 이름일 뿐입니다.
예전에 아내가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아주 중증 상태로 입원해 있을 때 입니다. 같은 병실에 다리 한쪽을 수술한 아주머니가 같이 있었는데 하루에도 몇번씩 투덜대며 한숨을 내뱉으며 ‘이런 병신으로 잘 걷지도 못할바엔 살아서 뭐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등 온갖 험한 말을 했습니다.
어떤 때는 그냥 한대 쥐어박아주고 싶은 충동을 꾹꾹 참아야 했습니다. 숨도 힘들게 쉬고 침대에 누운채로 대소변을 보며 힘들어하는 사람도 입 다불고 최선을 다해 투병중인데 그 곁에서 생의 의욕을 푹푹 꺾는 부정적인 말을 한다는 게 너무 밉고 싫었습니다. 물론 다른 의젓하고 모범적인 환자도 겉이 지내본 경험도 있어 비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픈 질병상태 그 자체가 불행의 척도로 줄서기처럼 정해지는 것이 아님을 체감했습니다. 어떤 암환자는 그 병을 이겨내며 평샹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만큼 건강한 식생활과 운동습관으로 복이 된 경우도 흔하게 듣고 보았으니까요.
순풍이든지 심한 풍랑이든지 목적지가 일정하게 흔들리지 않으면 모두가 유익할 수도 있고 목적지가 흔들리고 방황하는 배는 어떤 바람도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사는 동안 겪는 우리의 고난도 또한 비슷하다는 점을 여러번 알았습니다. 문제는 감정이나 인내가 따라가지 못할 때 흔들려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떤 면에서 이미 부름받은자입니다. 부름받은자는 부르신 분의 뜻과 미래 계획을 지금 이 땅에서 살아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순종이며 유익입니다. 심지어 성경도 예언, 예언자란 하나님의 미래 일을 미리 보여주는 삶을 사는 자라고 말합니다. 내일 일이나 흉과복을 점치는 수준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언자이고 부름받은자입니다.
신앙인이 된 저는 자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고백은 했는데… 그렇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고난을 대하는 태도와 약한 자를 사랑하며 돌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도 잘알면서 도망을 갈 수는 없잖아요? 심지어 그 길은 좁고 험하지만 가기만하면 외면하지 않겠더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시니.
그래서 기도합니다. 이전에도 늘 저를 일으켜 주신 것처럼 이번에도 한걸음만 더, 하루만 더… 견디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질병과 가난만이 아니라 모든 바람앞에서 그렇게 살고 이번만이 아니라 늘 그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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