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작은 기도

그저 기도 10 - 넉넉하게 살 수 있는 복이 오히려 문제일까?

희망으로 2022. 6. 24. 00:18

그저 기도 10 - 넉넉하게 살 수 있는 복이 오히려 문제일까?

살 날이 많이 남은 사람들과 탈이 나지 않은 사람들은 종종 앞날을 걱정을 한다. ‘어떻게 살지?’ ’뭘 하며 먹고사나?‘ 그렇게 짐진자처럼 근심스럽게.

그런데 나는 아내가 중증 환자로 아픈 바람에 십년이 넘는 장기병원생활을 하면서 또 다른 면을 보았다.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병원도 있어보았고 나중에는 재활요양병원도 꽤 머물러야 했다.

국립암센터에서는 마주치는 환자는 모두 암에 걸린 사람들이었고 입원실을 몇번 들락거리며 같이 지내는 환자중에는 말기암 환자도 여럿 있었다. 그들중에는 죽을 날을 대충 받아놓은 이들도 많았다.

거기만이 아니라 삼성종합병원에서는 희귀난치병 환자도 여럿 통성명을 하거나 지켜보며 지내기도 했다. 재활병원은 젊은 교통사고환자들과 산재로 중장애를 입은 사람도 만났다.

그들은 얼마나 살 수 있을까를 자주 계산하고 의료진들에게 묻기도 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남은 날이 불투명하고 그리 길지 않은 사람들의 걱정은 종류가 달랐다.

꽃피는 봄이 오면 내년에도 살아서 이 봄을 볼 수 있을까? 를 나즈막히 말했고 심한 경우는 내일도 살아 있을까? 장담을 못하며 마음을 졸이며 비우기도 했다. 남은 가족이나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은 조금만 더 살게해달라고 기도하고 소원을 빌었다.

죽을 걱정이 당장은 없는 사람들은 사는 걱정을 하고, 남은 살 날이 많은 것이 오히려 짐이 되었고 살 날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죽음이 닥쳐올 것을 걱정하며 시간이 좀 더 주어지기만 을 빌었다. 살 날이 더 길어진다해도 어떻게 살지, 잘 살지 고생할지는 아예 고민 대상에도 넣지 않았다.

참 안타까운 아이러니다. 넉넉하게 살 사람들은 오늘이 어제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게 지겹다면서 하소연 하는 데, 정작 오래 살 수 없는 사람들은 첫번째 소원이 그 지겹다는 일상을 조금이라도 더 사는 것이라니…

오늘 사람들이 맞이하는 하루는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울며 매달리며 빌었는데도 맞이하지 못한 생명의 날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하루라도 더 지내기를 기도하고 자녀들을 두고 갈 수 없다며 이것저것 정리하는 어미의 찢어지는 슬픔애도 불구하고 주어지지 않은 그 지겨운 일상. 그들에게는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국립암센터에서 입원하는 동안 만난 아내와 동갑내기 그녀는 폐암말기였다. 가퇴원했다가 다시 입원한 그녀는 집에가서 고등학생인 딸에게 살림을 인수인계 하고 왔다고 했다. 찬장과 싱크대에서 그릇이랑 집기들을 대폭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긴 그녀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딸에게 설명과 함께 살림을 넘겼다고… 그리고 그녀는 남편에게 자기가 떠난 후 최소한 2년은 지나서 재혼해달라고 부탁했다. 딸이 마음을 추스르고 적응하기까지 곁에 좀 있어주기를 바란다며.

그렇게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큰 소원은 그냥 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잡일이라도 해보는 것이고 누워서만 지내야하는 이들의 가장 큰 소원은 집안일이라도 하고  밥이라도 지어 가족에게 먹이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소원의 대상이나 크기가 다를까? 절실한 사람일수록 단순하고 작은 것들이고 넉넉한 사람들일수록 터무니 없을 정도로 크고 높은 소원을 기본으로 잡아놓고 거기 도달하지 못한 것을 불만하며 좌절한다. 그들이 가진 일상이 가능한 몸과 생명은 어떤 이에게는 주어지기만 하면 기적이라고 감동할 세상에서 말이다.

결국 잃기전에는 이미 가진 것의 값을 몰라서 기뻐하며 살지 못하고, 잃은 후에는 이제 더는 없어서 감사하지 못하고 슬프게 산다. 그래서 자칫 세상이 온통 부족하고 걱정하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다. 이 안타깝고 어이없는 상황을 어떻게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현장을 목격한 나도 잠시만 방심하면 깜박 무심해져 일상을 지겨워 한다. 아무리 보고 겪고 안다고 해도 지독한 건망증 본능은 못 벗어나나보다. 아님 회복불능의 욕심에 눈이 멀었거나.

오늘 이 하루가 귀하고 소중하다는 절절한 감사는 꼭 누군가의 슬픈 현실을 볼때만 실감한다. 그런 슬픔을 안보고도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느끼고 소중히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잘 안된다. 안타깝고 속상한다. 문득 멍해져 있는 나를 발견할때마다.

주님의 은총이 나를 배부른 불평에서 깨우고, 감사와 기쁨으로 온전히 나날을 보내게 해주시면 좋겠다. 사는 게 지겨운 듯 말하는 이 지독한 위험천만 건망증을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