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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기도 13 - 쓰레기도 다듬어지면 보석이 될까?

희망으로 2022. 6. 26. 23:59

그저 기도 13 - 쓰레기도 다듬어지면 보석이 될까?

나에게 아버지는 두가지 기억을 깊게 남기셨다. 어릴 때 그 당시는 어쩌면 원망이고 분노였고 내가 아버지 나이가 되면서는 아픔이고 안쓰러움이 되었다.

그 한가지는 약자인 엄마를 너무 오랜 세월 괴롭히고 감정을 푸는 대상으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그때 밤마다 긴 시간을 잠 재우지 않고 고문에 가까운 말꼬리 잡기로 몰아세우고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것 같은 고함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든척 한 나에게도 깊은 슬픔이었고 날카로운 추억이 되었다.

나는 자라서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여러 이유중 하나는 그때 보고 겪은 아버지의 엄마 학대, 다툼도 대화는 더더욱 아닌 그 시간들이 영향을 미쳤다.

나중에 어쩌다보니 이미 결혼해 있던 나를 깨닫고는 결심은 조금 바꾸었다. 나는 아버지와 같은 반복은 죽어도 안하겠다는 스스로의 맹세로. 내 아이들에게 그런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각오였고 실제로 많이 애썼다.

그러나 잘 안되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철칙을 정하고 아내에게 욕 한마디, 가벼운 손찌검한번도 안했지만 다른 부분에서 절반의 실패를 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공포 분위기때문에 잠 못들게 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 아내가 심하게 아픈 희귀난치병에 걸리고 생사를 넘나들 때 울면서 말했다. ‘난 결혼 20년 생활이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고…

처음에는 인정도 못하고 이해가 안갔지만 곰곰 돌아보며 조금씩 이해가 된 것은 내가 너무 아내를 내 기준으로 일방적으로 사랑했다는 결론이었다. ‘당신은 무조건 내가 시키는대로만 해! 내 말만 들으면 다 맞아!’ 그런 감옥같은 이론의 울타리에 아내를 가두고 사랑대신 사육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말로는 나를 못 이긴 아내는 속으로 병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깊게 남긴 기억 또 하나는 너무 돈, 돈, 하며 돈을 벌어야 한다는 태도였다. 말마다 성공한 누군가의 사례를 들먹이고 무슨 일이든 돈이 되는지가 우선 순위였다. 사람관계도 인생의 목적도 사는 이유도 다 돈이 우선 기준이었다. 지겨웠다. 왜 사는지 종교나 철학적 사고는 뒷전이더라도 돈보다 행복을 추구하는 말 한마디쯤은 있어야 하는데 돈이면 전부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절대 그런 가치관을 날마다 늘어놓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했고 지켰다. 돈이 전부가 아니고 행복하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말했다. 직장선택도 사람과의 만남도 돈이 되는지가 첫째는 아니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살았고 아이들에게 일상으로 보여주었다. 돈 버는게 지상목표라는 잔소리는 적어도 안했으니 그 단어로 아이들이 지겹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점에서 난 아이들에게 오십보 백보 비슷한 기억을 남겼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만큼 오랜 시간 깊게 새겨질 정도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지만…

막내 딸아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이었다. 멀리 경기도 일산에 병원생활을 하는 엄마 아빠와 주로 문자나 전화통화로 대화하며 한달에 딱 한번 얼굴을 보며 이산가족으로 지내던 때였다.

‘아빠! 나 이번 기말고사에서 또 1등 한 것 같아!’

막 시험을 끝내고 하교길이라며 전화기로 들려오는 딸아이의 목소리는 들뜨고 자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와! 잘했네! 고생이 많았겠다 시험 준비하느라… 잘 쉬고 맛있는 거 사먹어라! 특별용돈 보낼게!’

내가 이랬을까? 그랬어야 하는데…난 큰 실수를 했다. 어쩌면 실수가 아니라 아빠라면서도 싸구려에 치사한 나의 바닥 욕망이 드러난 건지도 모른다. 내가 아버지의 돈타령에 지겹다며 다음에 내가 부모되면 절대 안하겠다고 각오까지 한 그 미운 짓을 옮겨놓은 듯 닮은 말을.

‘국어 점수가 94점이네? 왜 틀렸어? 너 국어는 잘하잖아!’

‘…….’

전화기에서는 한동안 아무 말도 안들리고 한참 지나더니 흑흑 흐느껴 우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중에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 말에 의하면 국어시험이 좀 어렵게 나와 모두 많이 틀렸고 자기가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축하는 안해주고 틀린 점수부터 먼저 따진 아빠가 많이 미웠다고 했다.

그랬다. 잘못한 거 맞다. 한참 지나서도 딸아이는 그때 잘못한 내 행동에 여러번 농담반 진담반 지적을 하며 원망도 했다. 우스개 소리처럼 동조하는 가족들의 비난도 들어야했다. ‘아빠가 잘못한거 맞네! 이런…

난 지겨웠던 내 아버지의 ’돈‘ 타령 자리에 ’성적‘을 바꿨을 뿐이었다.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경쟁을 시키고 행여 라이벌 친구에게 밀려 성적이 내려가면 자꾸 다른 일에 연관을 시켰다. 가령 컴퓨터게임 시간이나 다른 취미생활을 제한하는 등 압박을 했다. 나도 모르게 내 아버지의 돈 우선 가치관을 닮아가고 있었다.

내가 이런 시행착오 미움 받을 행동을 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아버지를 이해하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냥 몹쓸 자격미달의 아버지라는 아픈 기억이 인간이 본성적으로 가진 다른 종류의 아픈 기억으로 변하고 있었다. 내게도 모난 면, 날카로운 날과 가시가 있어서 시랑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며 큰 자녀들이 나중에 같은 폭력 부모가 되는 경우가 많고 모진 시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당한 며느리가 그렇게 비슷해진다는 말을 들었다. 구타받던 졸병이 상관이 되어 자기 부하를 또 구타하는 군대문화도 그중의 하나다. 모두 자기가 당할 때는 나는 나중에 안그래야지 했다는 점도 아픈 공통점이고…

캘리포니아 어느 해변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몽돌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신다. 세계적 명소가 되어 관광객들이 찾기도 한다는데 다른 곳에도 비슷한 해변이 여럿 있다고 들었다. 그 빛나는 형형색색 몽돌은 사실은 깨진 유리 쓰레기들이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세찬 파도에 깎이고 다듬어져 날카로운 모서리가 전부 매끈해진 결과 보석보다 아름다운 몽돌이 되었단다.

우리가 가진 모자라거나 지나친 결점, 성품도 어쩌면 깨진 유리쓰레기와 비슷한 점도 있다. 우리를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줄 파도는 무엇일까? 쉴새없이 몰려오는 고난도 피해도 그럴 수 있지만 우리속에 유리 특성인 단단함 같은 게 없다면 그저 부서져 가루가 되어 사라질 뿐이다. 아님 더 날카로운 쓰레기가 될 나쁜 반복의 재앙일수도 있고.

하지만 우리속에 예수의 성품과 사랑이 모델이 되어 파도같은 고난에 깎여간다면 아마 가능해질거다. 석양이 지는 해변에서 무지개보다 다양한 칼라로 반짝이는 보석으로 남는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