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그때 그날은 햇살도 좋았다

희망으로 2021. 9. 29. 18:48

<그때 그 날은 햇살도 좋았다>

 

33년 전,

서울올림픽이 열린 그 해 9월3일.

나와 아내는 종로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따가운 가을하늘을 같이 느꼈다.

그 때 그 날은 햇살도 좋았다

아내는 면사포를 쓰고

빨간벽돌 정원과 강당에서 사진도 찍고.

그렇게 결혼식을 치르고

이렇게 33년을 같이 사는 중이다

 

온갖 곳을 같이 가고

온갖 일을 같이 겪고

웃을 때도 같이 웃고

울 때도 같이 울며 동행했다.

아내의 곁에는 늘 내가 있었고

내 곁에는 아내가 늘 함께 있었다.

 

 

 

 

우리를 맺어준 신의 의도는 무엇일까?

몰래 숨겨놓은 남은 이벤트는 혹시 없는걸까?

그저 30년이 넘도록 서로를 섬기고 돌보다가

생을 마치고 돌아오라는 미션만 주어진걸까?

아프다가 마치는 생이라면… 좀 야속하다ㅠ

다른 부부들에게는 멋진 노후도 잘도 주시면서

큰 잘못의 기억은 없는 우리에게는

왜 이토록 험난한 고통의 날들을 주실까?ㅠ

 

어서 하루가 가고 특별하지 않은 날

아무 날도 아닌 내일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어쩌면 아무 날도 아닌 날에는

덜 서운하고 덜 외롭고 덜 야속하겠지?

결혼기념일 33주년을 앞두고

죄수처럼 갇힌 사람으로 맞이하려니

아름답던 추억들도 아픈 영화처럼

심술궂은 어둠이 되어 파고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