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날은 햇살도 좋았다>
33년 전,
서울올림픽이 열린 그 해 9월3일.
나와 아내는 종로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따가운 가을하늘을 같이 느꼈다.
그 때 그 날은 햇살도 좋았다
아내는 면사포를 쓰고
빨간벽돌 정원과 강당에서 사진도 찍고.
그렇게 결혼식을 치르고
이렇게 33년을 같이 사는 중이다
온갖 곳을 같이 가고
온갖 일을 같이 겪고
웃을 때도 같이 웃고
울 때도 같이 울며 동행했다.
아내의 곁에는 늘 내가 있었고
내 곁에는 아내가 늘 함께 있었다.
우리를 맺어준 신의 의도는 무엇일까?
몰래 숨겨놓은 남은 이벤트는 혹시 없는걸까?
그저 30년이 넘도록 서로를 섬기고 돌보다가
생을 마치고 돌아오라는 미션만 주어진걸까?
아프다가 마치는 생이라면… 좀 야속하다ㅠ
다른 부부들에게는 멋진 노후도 잘도 주시면서
큰 잘못의 기억은 없는 우리에게는
왜 이토록 험난한 고통의 날들을 주실까?ㅠ
어서 하루가 가고 특별하지 않은 날
아무 날도 아닌 내일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어쩌면 아무 날도 아닌 날에는
덜 서운하고 덜 외롭고 덜 야속하겠지?
결혼기념일 33주년을 앞두고
죄수처럼 갇힌 사람으로 맞이하려니
아름답던 추억들도 아픈 영화처럼
심술궂은 어둠이 되어 파고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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