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리키’
저도 오래 전에 본 영화입니다.
너무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 한참을 우울하게 보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원래 이 영화는 켄 로치 감독이 너무도 생생한 현실의 부조리와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생을 해피엔딩 따위를 걷어낸 리얼리즘으로 표현한 사회 고발 성격의 작품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수렁, 끝없는 부자들의 치밀한 노동력 착취로 부를 더 쌓는 무한 경쟁, 무제한 자유, 대를 이을 수밖에 없는 가난의 구조를 동화따위는 버리고 그려낸 다큐같은 영화입니다.
그러나 그런 비평은 전문가들이 할 소리고...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개인으로 인간이 겪는 고난과 신은 어디에 있는걸까 찾느라 눈을 떼지 못하며 보았습니다. 나라면? 내가 저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 끝없이 대입하며 뾰족한 탈출구가 없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비관적 감정을 내내 느꼈습니다. 제가겪고건너온 세상살이를 떠올리며 맞다! 저렇게 되지... 그런 공감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인 아빠는 나쁜 사람일까요? 아뇨! 비록 욕심으로 판단을 잘못하기도 하고, 조급하며 급한 성격으로 사고를 부르기도 하지만 가장으로 책임을 다하려는 시도가 지나침이 오히려 문제일 정도로 매달립니다. 그래서 자녀들과 아내의 마음도 살펴볼 여유도 없어 더 갈등이 깊어집니다. 그와 같은 가장, 같은 가진 것 없는 나이든 아버지로 나이들어가는 저도 그 깊은 초조함과 무리하는 급급한 잔머리를 이해하게 됩니다.
엄마인 아내는 너무도 아이들을 챙기고 더 이상 성실할 수 없을 만큼 삽니다. 어쩌면 정신적인 가장일만큼 중심을 잡고 가족들을 버티게 하는 여유와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분투합니다. 요양보호사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도 돈벌이 수준을 넘어 마음으로 다가가려 애씁니다. 그러나 그 본이 될만한 삶의 노력도 일을 위해 꼭 필요한 차를 팔아버리는 남편의 무지막지한 행동앞에서 무너집니다. 또 사춘기의 고뇌를 잘 이겨내지 못해 아버지와 끝없이 다투고 빗나가는 아들을 챙기는 반복에 지쳐갑니다. 착하게 살면 오는 행운도 그다지 보이지 않고 하늘의 도움은 어디서 오는지 언제 오는지 내내 두리번 거리며 영화를 보는 동안 내가 미안해질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계신걸까? 저리 열심히 살아도 꼬이는 생활은 언제까지 엄마로 아내로 희생을 요구하는걸까? 다 버리고 도망간대도 누가 비난을 못하겠다... 그런 심정이 들었습니다.
딸아이는 나쁜 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철도 들고 엄마와 아빠의 다툼으로 오는 긴장, 아빠와 오빠의 갈등사이에서 언제나 화목한 가정을 기대하며 웃음메이커가 되고 철든 자녀가 되려 애쓰는 총명한 아이였습니다. 택배차를 사고 과로로 너무 코너로 몰리고 지쳐서 날카로워지는 아빠를 지켜보다가 택배 차만 없어지면 예전의 여유있는 아빠로 돌아가지 않을까? 그래야만 모두가 살아날 것 같아 차 열쇠를 감추는 극단에까지 이릅니다. 아이가 잘못일까요? 오죽하면,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괴로웠으면 열쇠를 숨기는 그 일로 인해 아빠와 오빠가 위험해지는 엄청난 일을 벌였을까요. 아이의 심성이 무너지는 눈물앞에 보는 나의 마음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만약 내 딸이 부모의 갈등, 긴박해져가는 살림에 못견뎌 저 지경이 되면 어떻게 살까?짐작하니 더 안쓰러웠습니다.
이제 시시비비가 많은 아들의 입장을 생각해봅시다. 흔할 청소년기의 예민하고 반항기 많을 시기를 감안하고도 분명 철없어보이고 말썽부리는 행동이 많습니다. 핸드폰에 집착하고 부모, 특히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는 장면은 늘 화나고 답답하며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여동생과 엄마에 대한 깊은 속 심성을 보면 바닥까지 막무가내 악한 자녀가 결코 아닙니다. 아버지를 도와 잠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습니다. 풀리지 않는 가난한 가정의 상태와 급한 성격의 아버지와 충돌로 생기는 우발적 반항이 더 많습니다. 왜그렇게 되었을까? 태어날때부터 그러지는 않아보였는데... 여러 생각끝에 그 빗나가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아무리 애써도 나중에 아버지의 고단한 삶의 위치와 별로 다르지 않을 미래를 무겁게 느끼며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크게 뛰어난 재능도 없고 개천에서 날 용이 되지는 못할 자신의 한계도 뼈저리게 인정하였을 겁니다. 그 답답한 미래의 비관이 자꾸만 순간 순간 도피 태도를 부르고 핸드폰, 게임, 친구들과 어울림에 빠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럴수록 못마땅해 하는 아버지의 잔소리는 점점 벌어지는 거리감만 만들고...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현실에는 늘 존재합니다. 착해도 해결 안되고 노력하고 땀흘려도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은 대를 물리는 불행한 진실입니다. 한 데나리온에 팔리는 참새같은 값싼 생명이 되어 생을 유지해가는 가족들이 지구상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복지정책과 불완전한 사회안전망 속에서 점점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은 많은 나라에서 실재로 존재합니다. 더 이상 개천에서는 용이 나지 못하고 오염이 심해져 평범한 물고기조차 살지 못하게 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아주 뛰어난 몇몇은 그 굴레를 벗어나기도 하지만 너무 소수고 천만다행 하늘의 도움으로 이웃들의 지원을 받아 생명을 지켜나가는 우리 가정 같은 경우도 정말 드문 경우입니다 ㅠㅠ
이 영화를 보고나서 그런 비슷한 처지에도 밝게 서로 격려하며 사는 가족들이 위대하게 보였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가장과 발맞추어 살아가는 엄마와 자녀들에게 엎드려 절하며 고맙다고 하고 싶었습니다. 요즘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해 삶의 기둥이 흔들리고 더 위태해진 많은 사람들이 떠올라 다시금 이 영화의 슬픈 장면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엄마가 버스정류장에서 지친 몸으로 멍하니 앉아 비를 피하는 장면, 아버지의 땀에 젖고 허기진 상태로 달리는 순간들, 딸아이의 눈물과 가족다툼에 두려워 떠는 얼굴들이... 부디 동화도 행운도 없이도 날마다 살아야하는 많은 가정들이 하나님을 보고 만나는 순간이 오기까지 그 안계신듯한 긴 시간을 버텨주시기를 빌고 빕니다. 한편 무정하게 보이는 하나님이 빨리 도움의 손이 산을 넘어 오기를 간구하면서...
(요즘의 우울한 마음이 영화를 생각하며 좀 더 무거워졌네요 ㅠㅠ 이 또한 지나가겠지요? 그러기를 빌면서 마음나누기를 합니다. 순전히 폐를 끼치는 미안함으로..., 최간사님의 글에 댓글을 달다가 너무 길어져서 도리가 아닌것 같아 여기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작정하고 쓴 글이 아니고 댓글로 넉두리처럼 쓰다보니 별 의미도 내용도 없으면서 길어만 졌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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