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행복한건 지 애매한 경우>
영화 ‘보케’ (또 다른 제목 - 세상끝에서 우리는)에서 지구의 모든 인구가 사라져 버리고 단 두명, 제나이와 라일리 연인만 남게 된 영화. 그게 과연 가능한지, 비과학적이라든지 뭐 그런 건 제외하고 보면 생각해볼 상황이 전개된다. 좀 불량스럽고 밉도록 규칙을 지키지 않지만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라일리와 달리 제나이는 진지하고 준비를 해야만 하는 반면 걱정이 짖누르고 우울증이 오기 쉬운 성격이다.
남은 음식과 물건들로 지구에서 죽는 날까지 살 방법을 생각하고 유효기간 날짜대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제나이의 숨막히는 진지함은 날이 갈수록 무겁고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져간다. 아이슬란드의 멋진 자연풍광에도 결코 기뻐하지 못하는 제나이는 악동같이 쾌활한 라일리와 점점 갈등이 깊어 간다. 단 둘만 남은 세상에서도 사람의 갈등은 예외일 수 없다는 현상이 두렵고 끔찍하게 느껴졌다.
이런 저런 상황을 지나면서 끝내 제나이는 라일리에게 사진을 남기고 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만다. 주어진 긍정적 본능을 가진 라일리는 점점 적응을 하면서 오히려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져 가는 중이었지만 단 한명의 파트너이자 연인인 제나이가 죽고 말자 무너진다. 라일리는 같이 죽겠다고 물속에 몸을 던지지만... 그 끝에서도 라일리는 살려는 생명에 대한 본능으로 죽겠다는 생각을 뒤집고 기어 나오고 만다. 이제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한 사람이 되어.
좌절과 외로움, 예상되는 미래의 그늘을 얼굴 가득 담고 한없이 무거워지는 라일리의 몸부림, 차를 타고 절규하듯 달리는 마지막 장면이 영화를 끝낸다. 과연 살아남아 자연적인 수명이 마치도록 온갖 인내와 방법으로 견딜 라일리가 더 행복한 걸까? 아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미리 죽어 버린 제나이가 더 행복한 걸까? 사람에게 이미 타고나는 긍정과 부정적 본능은 왜 다른 걸까? 만약 둘 다 낙관적이고 긍정으로 행복하게 죽는 날까지 어떤 방법으로든 생존했다면 해피엔딩일수도 있는데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는 각자의 차별성, 그 와중에도 생기는 갈등이라니...
사람들이 다른 타인이나 세상과 교류를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우글거리거나 세상이 안전을 제공해도 단 둘만 남은 영화속의 상태와 별 다를게 없을 것이다. 고립되거나 은둔해서 폐인이 되는 사람들이 실재로 그런 상태로 빠지는 경우를 보면. 부부를 맺고 가정을 이루어도 너무 다른 성향이 서로를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괴롭게 하는 요소로 충돌하고 갈등이 깊어진다면 영화속 라일리와 제나이처럼 비극의 끝을 맞을 수도 있다. 세상은 여전하고 사람들은 많아도.
영화를 본 후에도 계속 남는 생각 하나는 사람이 자연적 생명의 끝까지 갈 수 있는 조건은 어쩌면 충분한 음식과 필요한 물건들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더 중요한 것은 지구 멸망의 마지막 상황에도 함께 마음을 다독이고 서로 격려하며 희망을 가지며 감사로 살 수 있는 건강한 심리상태, 서로를 묶어주는 헌신의 결심이 아닐까? 지구 멸망의 상황이 아닌 멀쩡한 세상, 오늘에도 최악의 비관과 무거움으로 사는 이들도 있으니...
* 이 영화를 신앙이나 과학등의 잣대를 대지 않고 그냥 한 편의 영화로 볼 수 있다면 우리들이 서로 다른 사람에 대한 소중함 배려, 생명에 대한 존중 등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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