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명...쯤이면 족합니다>
총각때, 부모님은 먼 고향으로 내려가시고
아무도 만날 사람 없는 전쟁같은 객지 서울에서 버티고 살 때,
단 한 사람이 아쉬웠습니다.
내일이 불안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밤에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몸살 감기로 온몸이 불 같고 얼음같을 때 물 한그릇 떠줄 사람
먹거리가 달랑거려 아끼느라 배고플 때 서러움 반찬삼아 마주 먹어줄 사람
그 한 사람이 없어 외롭고 더 아프고 더 힘들었습니다.
말 안들어 미워도, 습관이 달라 성가셔도, 종종 걱정을 끼쳐도
아내가 생기고 아이들이 생기니 너무 좋았습니다.
한 사람을 넘어 교대로 그 자리를 지켜주는 가족이 생겨서.
초등학교도 같이 졸업식을 못치르고 헤어진 친구들
이후로 학교다운 학교생활을 못하고 떠돌며 마친 공부로
동창회 동무들 모임 한 번 못가졌습니다.
서른해를 넘겨 겨우 한 번 만난 고향 국민학교 모임에 갔을 때
비정규직 반토막 자격지심은 버텨도 얼굴도 이름도 기억안나
다들 서로 웃고 놀 때 내 마음이 너무 쓸쓸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딱 두 친구, 너무 가까웠던 죽마고우가
내내 내 이름과 그 시절 내 행동을 기억해주며 안아주어
눈물겹게 언 마음이 조금은 녹았습니다.
두 명도 다행이고 수백명 못지않은 든든한 선물이었습니다.
어쩌다 치열한 생존경쟁 전쟁터 세상을 헤매다가
교회로 불러주신 하나님 덕분에 귀한 형제를 만났습니다.
피를 나눈 부모 형제보다 더 챙기고 작고 큰 고민도 품어주는
정말 거짓말 같은 신앙의 동지를 만들었습니다.
오래 아픈 아내때문에 하나 둘 모두 멀어져도
수십년 변치않고 위로와 도움을 베푸는 믿음으로 맺어진 사람.
아... 무슨 자격으로 나에게 이런 귀한 분들 몇몇이 연결되었는지!
안그랬으면 비정하고 메마른 마지막 생을 기억의 끝으로 삼고
나는 망했고 인생은 슬프더라고 외칠뻔 했는데 다행입니다.
아브라함이 무거운 마음으로 패배감을 안고 피난했던
소돔과 고모라의 상황을 떠올려봅니다.
단 열명, 의인 열명이 없어서 도시가 망하고
가정이 깨어지고 목숨이 날라갔던 그 상황이...
열명...쯤이면 족합니다!
외롭고 힘든 세상을 버텨가라고 보내주는 가족과 친구들
열명...쯤이명 감사합니다!
큰 선물을 세어보며 이 밤이 더는 잠 못자고 뒤척이지 않습니다.
의롭고 진실한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
열명...쯤이 제게는 있습니다.
뭉클 눈물이 날 것 같은 축복입니다.
[내가 의인 열명으로 말미암아 이 땅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 창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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