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부모가 주는 ‘가혹한 자유’

희망으로 2020. 9. 5. 09:16

 

 

<부모가 주는 ‘가혹한 자유’>

 

1. 

 

친구 아들이 어느날 아버지에게 속상하다고 작심하고 따졌다. 공부 뒷바라지도 일류로 못해주었고 넉넉하게 결혼자금도 못대주고 소위 부모님의 인맥도 없어 일자리 구하는데 보탬도 안되는게 맺혔던 것같다. 무슨 말끝에 잔소리 했다고 따지는 말이, "아버지가 해준게 뭐 있어요? 이럴거 뭐하러 낳아서 힘들게 해요!" 

가끔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보는 장면이다. 대개 따귀가 철썩! 하고 한바탕 난리가 나는 그 상황... 나도 겁이 난다.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따지고 물어오면 어디로 숨어야할지가 먼저 떠오른다. 위 경우보다 열 배는 할말이 없다. 따귀는 고사하고 나와 아내가 아이들에게 안겨준 말도 안되는 억울한 고생이 미안해서... 

 

2. 

 

돌아보니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다행히 생각만으로 대부분 담고 꺼내지는 않았지만 딱 한번 전화로 아버지께 따진 적 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명도 넘는 시댁 식구들을 반지하 빌라에서 뒷바라지하던 스물셋의 아내가 병이 났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안 나지만 성격 급한 아버지가 맘에 안든다고 부자인연을 끊는다고해서 악에 받쳐서 평생 처음으로 대들었다. "나도 그러고싶어요! 아버지가 해준게 뭐 있어요!" 했다. 초등학교도 졸업 안시키고 세상에 던져진 후 죽기살기로 버텨산 세월이 서러워서... 

그런데 이제 부모가 되고 똑같이 무방비로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형편에 빠지고보니 참 할말이 없다. 천재지변같이 닥친 불행이니 그럴 수 있다고? 내 부모는 왜그런 사연 하나 없었겠나... 머리 좋았던 나를 공부 못시킨게 한이 된다고 하도 한숨을 쉬셔서 그거 풀어주느라 독학으로 다 통과하고 대학도 입학했다고 말했더니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그걸 보면 공연히 내게 무책임하지는 않으신 것같다. 그러니 내가 자식때도 왜 세상에 나왔는지 답을 못들었고 지금은 부모가 되어서도 답을 모르겠다. 

 

3. 

 

아내를 경사침대에 묶어세우고 열심히 다리를 주무르다가 힘도 들고 땀이 차기시작한다. 갑자기 울컥 짜증이 난다.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되요? 계속 계속, 날마다 날마다... 이렇게 살다가 더 나이들고 기운도 없어지고 나까지 병이라도 나면 그때는 우리 두 사람다 어쩌지요?"  이 시간만 그런 질문이 울컥솟는 게 아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하고, 아내 대소변 처리를 하다가도 하고, 목욕시키다가, 병원비내느라 쪼달릴 때도 하고 멀리 검사받으러 오르내리다가, 혼자 밤길을 걷다가도 하고 심지어는 자다가 깨어서도 한다. 어쩌라고요, 언제까지요...라고,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난다. 내가 자녀일때도 해결안되고 부모가 되어서도 대답을 못해준 질문, 왜 나를 세상에 나오게 했어요? 해준게 뭐 있어요? 라는 항변... 자식때도 부모때도 모른다면 그건 틀림없이 하나님이 대답하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하나님이 보내셨을거라는 생각에... 

 

4. 

 

자녀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세상에 나온것도 아니고 부모가 완전한 대책과 환경을 만들어놓고 자신있게 세상으로 부른것도 아니라면?  틀림없이 하나님이 보내셨을것이다. 그런데 그 뒤가 더 속상한다. 이게 뭔가?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온 세상도 아닌데 불완전 투성이다. 죽을때까지 기침한번 안할 만큼 건강하기를 하나, 필요한 모든 먹을 것 입을 것, 돈이고 물건이고 넉넉하게 주어지기를 하나,  그렇다고 모두에게 존경만 받을 만큼 너그럽고 완벽한 성품이 있기를하나... 

아마 많은 이들이 이런 크고작은 곤경을 넘나들며 살아가지 싶다. 더 속상하는 건 그 모든 욕심버리고 산다해도 이리저리 만신창이 되고 얼룩진 인생의 끝에 기다리는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순간부터 각자 산대로 그 댓가를 치르는 심판이 시작된다. 그러니 한편 억울하다. 육신의 욕정을 완벽히 자제할 만큼 성결함을 타고 나지 않았다면 죄를 안지을 길이 없는데... 재물에 초연한 청빈을 타고나기를했나 권력과 명예를 애당초 곁눈길도 주지 않을 고고함을 갖추기를 했나… 그래도 산 결과를 계산해보자고 당겨앉히고 따지신단다. 정말 너무 하다.

 

5.

 

그렇게 어딘가 준비가 덜되거나 모자란채로 온 세상살이에 하나님은 완전한 자유를 주셨다. 어떤 일도 스스로 선택하여 살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심지어 죽음조차 끌어 안을 자유까지 ㅠ 그러니 그  '완전한 자유'란 다른 말로 '가혹한 자유'다. 온갖 시행착오와 어둠으로 걸어들어갈 수도 있는 위험한 자유... 그리고도 결과는 선택한 각자가 고스란히 짊어져야하는 가혹한 자유... 

마음이 자주 슬프다. 잘못 선택한 결과가 확인될 때마다 자신감도 없어진다. 그러면 이렇게 따지고싶어진다. "하나님 왜 제게 이런 날카로운 칼날이 달린 선택의 자유를 주셨나요? 차라리 내맘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대신 아무 고통도 벌도 안받는 길을주시지 그러셨어요... " 

그래서 돌아본다. 만약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게 선택권을 준다면? 수백만개의 씨앗 중 잉태 되지 못하고 그냥 죽는 길과, 잉태 되어 생명으로 출발하는 선택권을 준다면 과연  난 망설임 없이 죽음을 선택할까? 그 선택을 기쁨과 복으로 받아들일까? 고민이 된다. 선택권을 준다는데도... 그러면 당연히 기쁨도 설레임도 희망도 감사의 기회도 다 포기해야 한다. 이것도 정작 고민이된다... 

 

6. 

 

만약에 내 아이들이 두 가지 선택의 길 앞에 서있다면 난 어느쪽을 권할까? 한 가지는 아무 슬픔도 아픔도 없이 도무지 표정없는 얼굴로 일생을 살아가는 대신 아무런 해도 없고 벌도 없다. 또 하나의 길은 예상못한 병으로 온갖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그 경험으로 많은 아픈 사람들을 위로할수있으며, 이별의 아픔도 겪고 실패와 외로움으로 몸부림치기도 하지만 그렇게 견디는 성숙함이 누구에겐가 유익한 사람이 되어가는 길이라면??... 

나라면 내 아이들에게 두번째 길을 권하고 싶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들 딸이라면 열번 울더라도 단 한번 행복한 기쁨과 감사를 느끼기를 바랄 것이다. 그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열번의 아픔도 참을 수 있다. 평생을 무표정한 얼굴을 보느니... 

아마 나의 부모도 그럴 것이다. 그 마음은 하나님도 그러셨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을 닮게 만들고, 자신의 생령을 불어넣어셨을거다. 그 표정 한번보자고!  다시 내게 선택의 기회를 주신다해도 지금과 다를 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그저 살아갈 일만 남았다. 한번 활짝 웃으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힘으로 버티며! 어떻게 웃는 횟수를 한번이라도 늘릴 길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