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것이 아름다운 이유>
작은 것이 아름다운 이유가 있습니다. 큰 일은 욕심으로도 할 수 있고 돌려받는 보상이 상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명예든 물질이든, 혹 높은 자리나 자기 만족이든. 하지만 작은 일은 그 모든 것들이 보장이 없고 특별한 장소와 시간에 준비를 하고 시작하는 큰 일과 달리 수시로 아무 곳이나 아무 때나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큰 일과 비슷하게 대하기란 쉽지가 않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그것은 늘 진심이고 늘 겸손하고 늘 욕심이 없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공감하며 날마다 읽는 목사님의 칼럼에서 아래 글을 읽었습니다. ‘맞아! 나도 그런데...’ 속으로 그런 동감이 저절로 일어났습니다.
“ (중간 생략) 아미시의 용서가 생각납니다. 2006년 아켈마인에 있는 아미시 학교에 무장한 괴한이 침입하여 열 명의 아이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 내용이 <아미시>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열 명의 아이들 중 다섯 명이 죽고 다섯 명이 살았습니다. 범인은 현장에서 자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범인의 장례식에 아미시 사람들이 참석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은 아미시 사람들을 ‘검은 옷을 입은 천사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미시 사람들은 장례식이 있기 전에도 범인의 가족을 찾아 그들을 안아주며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죽은 아이들을 위해 전국에서 답지한 성금을 범인의 가족들에게도 똑같이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마시에게 용서란 절대적인 당위였습니다. 그들은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했고, 원수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늘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시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함께 그 길을 가자는 것인데 아직 함께 그 길을 가자는 분들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책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은 또 있었습니다. 범인을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할 수 있었던 그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사소한 이웃과의 다툼을 용서하는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걸 읽고 공감이 갔습니다. 아내와 늘 싸우는 제겐 범인을 용서했다는 사실보다 그 내용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내와의 다툼이 일상인 제겐 정말 위로가 되는 내용이었으니까요, 그건 참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아니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오늘도 그 불가능에 도전해서 또 실패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제가 큰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것입니다.”
그럴 수가 있을까요? 자기들 이 자녀를 비명에 잃고 고통스러운데 복수를 하지 않는 것만도 사람으로 힘든 것인데 그 살인자를 용서하고, 더 나가 그 가족들에게 성금을 나눠주고 이후로도 지원을 해나간다는 일이 가능할까요? 그 어려운 일을 아미쉬공동체는 해냈습니다. 그런 그들도 이웃과의 다툼, 미움은 속히 털어내지 못하고 시달리는 것이 참으로 괴로웠고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니... 한참을 생각해보고 나를 돌아보니 공감이 갑니다. 나도 그러했고 우리도 많이 자주 그러고 산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네 일상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흔하게 봅니다. 사회에서는 온갖 놀라운 ?교육법을 강의도하고 감탄을 자아내면서 정작 자기의 집 자녀들은 대화도 없고 문제가 많은 사이로 지내는 사람, 어떤 갈등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듯 상담의 전문가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달변을 내면서도 정작 자기 부부는 갈등과 성격처이를 극복못해 이혼하는 소식을 들으면서 황당했던 일, 적지 않은 꽤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에서 용서와 사랑을 선포하면서 자녀들이 빗나가고 존경을 받지 못하며 배우자에게도 권위로 군림하며 일방적인 태도로 살아 사모가 상처와 억눌린 우울증이 걸리기도 하는 경우 등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 고린도전서 11장 1,3절]
우리는 내 몸을 내어주면서도 지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소리 높여 사랑을 외쳐도 빈 깡통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다름아닌 성경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큰 일도 중심과 속 사랑이 없이 하는 것은 무용지물이라고...?
위의 아미시 공동체 구성원들은 분명 사랑을 바탕으로 용서를 했을겁니다. 적어도 내키지 않을지라도 옳다는 믿음과 따르겠다는 순종의 결단으로 그렇게 살것입니다. 사랑없는 위선의 경우는 분명 아닙니다. 단지 사랑의 마음에서 사는 일상은 늘 그래야하고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고 우격다짐이 아닌 흐르는 물처럼 살아져야하는데 그게 힘들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큰 가르침은 기를 쓰고라도 할 수 있으나 24시간 누가 보거나 말거나, 해도 빛나는 칭찬 따위가 따르지 않는 일에는 잘 안되는 한계를 말합니다. 그것은 아직 미완성이고 완전한 내 것이 못된 교육생 수준을 말합니다. 하기는 그 자리에조차 못 이르고 꿈도 꾸지 않으며 애쓰지도 않는 신자인 내가 뭐라고 말할 자격은 없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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