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잠 못자고 아빠 의무를 다 하던 날

희망으로 2020. 9. 5. 09:05

<잠 못자고 아빠 의무를 다 하던 날>

 

잠이 막 들려는 시간, 

‘드르르륵’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 35분... 

딸 아이 문자가 왔다. 

 

- 무슨 일? 

- 지금 숙제 끝냈어... 

- 늦도록 힘들었겠다 

- 읽어줄까? 

- 좋지, 

- 그럼 아빠가 전화를 해줘 

- 알았어! 

 

그렇게 일어나 병실 바깥 복도로 나가서 듣기 시작한 아이의 독후감 낭독, 

이번 주에만 벌써 세 번째 새벽에 잠이 드는 중3의 숙제... 

한 번은 4절지에 미래 공상과학 포스터 그리기 미술 숙제, 새벽 3시30분에 잠에 들었다. 

또 한 번은 기술가정 숙제, 장래 계획분야를 정하고 설계 작성, 새벽 2시경 자고, 

이번엔 비교적 빨리 끝난 국어 숙제, 독후감 작성, 밤 1시에 잠든다. 

내신 성적이 중요하다고 선생님도 말하고 스스로도 관리한다고 애쓴다. 

무슨 중학생 숙제를 박사 논문쓰듯 하나...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자다가도 일어나 들어주고 의욕을 돋우며 칭찬해야 한다. 

 

<낭독 시작>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독후감 

 

이 책을 독후감으로 선택한 동기? 

 

- 내가 왜 이 책을 골랐을까? 처음에는 선생님이 자유선택으로 골라서 쓰라고 하셨을 때 읽었던 책 중에서 쓸까 하다가 그냥 책 한권 빌릴까 도서관을 뒤지던 나는 전혀 이 책을 읽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고, 공지영의 '고등어'나 일본소설을 읽을 참이었다. 그래서 처음 골랐던 책이 ‘공중정원’이라는 책이었는데 처음부분에 러브모텔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만 나오기에 반납했다. 

 

다시 책장을 뒤지던 내게 머릿속에 등장한 게 바로 이 책,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다. 사실 이 책은 초등학교5학년 때 만화로 읽은 적이 있다. 어떤 장면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울었다. 그때 둘째 오빠는 내게 왜 이 책을 만화로 읽냐며 글 책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골랐다. 이 책을 읽었고 이 책으로 독후감을 쓰는 것이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으면서 느낀 것들... 

 

- 내 생각엔 아마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갖고 있었던 걸로 안다. 가끔 대화도 나누고 즐겁게 놀이 상대도 되어주던 그것들은 내가 어른이 되면 서로를 도와주듯 이별을 맞이한다.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대부분 그것을 잊어버리곤 한다. 사실 이 책을 읽다보면 느끼겠지만 여기서 진짜 그 뜻 그대로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인 밍기뉴는 그다지 주인공이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 책에 많은 제제의 친구들 중의 하나, 그 정도 역할인 듯하다. 더구나 제제는 뽀루뚜까에게 밍기뉴는 그저 꽃한송이 피우지 못하는 어린 오렌지나무라며 자신이 사랑하는 건 뽀루뚜까 뿐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밍기뉴는 제목을 차치했을까? 내 생각에는 아마 이 책에서 밍기뉴와 작별하는 딱 그 순간, 바로 전까지의 제제가 바로 밍기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밍기뉴는 제제가 말했듯이 꽃한송이 피우지 못하는 어린 오렌지나무 였다. 그런데 책 마지막쯤엔 밍기뉴는 꽃을 피웠고 제제는 그것이 작별 인사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그 즈음에 밍기뉴도 제제도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책 안에서 제제는 참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 준다. 그래서 제제는 한 가지 단어로 설명할 수 없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 제제에게는 악마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천사라고 한다. 굳이 단정을 짖자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아닐 때가 있다. 학교 같은 데서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곧잘 참는 듯하다. 아마 딱 어린아이의 모습 그 정도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 가족들은 제제에게 철 든 모습을 요구한다. 책을 읽다가 가끔 제제의 나이를 잊게 되는 것은 그래서 일거다. 

 

사람들은 또 나는 커가며 제제가 사랑하는 뽀루뚜까를 잃고 결국 자신인 밍기뉴를 잊듯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하고 자신들의 저마다의 어린 시절을 잃고 잊고 지우곤 한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확실히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아무 것도 말하려고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이 글은 작가의 어린 시절이 담겨 있고, 그것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나에게 전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곧잘 이 책이 슬프다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 모두의 시절인 것이다.   

 

이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은 사람, 아빠... 

 

- 아빠, 아빠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아마 한 번, 두 번, 어쩌면 세 번을 넘게 읽어서 저보다 더 잘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추천합니다. 제가 읽어보니까 매번 읽을 때마다 들어오는 구절이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아빠가 한 번 더 읽어보고 괜찮으시다면 아빠의 어린 시절, 아빠의 라임오렌지나무에 대해 듣는다면 진짜 좋겠어요. 저도 제 라임오렌지나무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해요. 벌써 잊혀져 갔지만 노력해보면 다시 생각날 수도 있어요. 어린 시절 없는 어른이 없듯이 어린 시절은 때론 어른들에게 삶의 목표와 향수를 주지요. 아빠가 힘들 대 이 책을 읽고 힘냈으면 좋겠어요. 꼭 한 번 다시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독후감 끝> 

 

중간에 독후감 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그 이유를 쓰는 항목에서 잠깐 대화, 

 

“이 책을 권할 사람으로 아빠를 추천했어,” 

“그랬어? 왜? 아빠가 정신연령이 낮아서 너와 비슷해서? ^^*” 

“딱히 생각나는 사람도 없고, 아빠가 읽고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고맙구나, 사실 난 너 나이 때는 이 책을 못 읽었어. 먹고 살기도 바빠서,” 

 

“이거 순전히 니 느낌으로 쓴거야?” 

“그럼,” 

“대견하구나, 이 책의 내용과 의미를 이해한다니, 책 속의 제제는 다섯 살이지만 사실 어른인 작가가 다섯 살의 시선과 이름을 빌려서 어른의 생각을 말한 건데 그걸 이해한다면, 넌 어른의 철학을 이해하는거지. 다섯 살 제제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 

“너무 오래 잊어버리고 있으면 아예 다시 기억을 못할 수도 있어, 당시의 감정도 내용도... 그래서 중간마다 글을 남기고 생각을 적어보는 게 좋은 것 같아, 일기도 그래서 쓰는거겠지” 

“맞아요.” 

 

“이거 하나만 복사해줄래?” 

“내일 제출해야하는데... 못해,”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녹음한 거 내가 옮겨서 정리해야지 뭐~” 

“으잉? 녹음? 헐... 다른 사람에겐 들려 주지마 목소리 잠기고 갈라지고 -.- ”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돌릴 수 없는 딸의 글, 목소리라서 기념으로!” 

 

“이번 주간 내내 새벽에 자고, 많이 고단하겠다?” 

“무지 힘든데 버티는 중이야. 얼른 시험쳤으면 좋겠어... 

시험 때는 숙제 안내주니까...“ 

“시험 때 다른 사람들은 밤 세우고 한다던데?” 

“밤 세우면 수업시간에 졸아서 더 공부 안돼, ” 

“근데 넌 평상시에도 밤에 공부안하고 시험 때도 안하잖아?” 

“ㅎㅎㅎ! 난 시험기간이 좋아, 숙제 없어서~~” 

 

“잘 자, 탈나지 않게, 오늘 고맙다.” 

 

그렇게 한밤중의 부녀간 대화는 밤 1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먼 객지에서 병원살이로 떠도느라 딸과 떨어져 살면서 

날마다 곁에서 온갖 기쁨과 슬픔, 애환을 나누며 살지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아이의 부모로, 가족으로 지키며 넘어간다. 

그 사이 딸아이는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간다. 

감사하다. 

 

* 나중에 아이는 이 독후감으로 충주시에서 우수상을 받고 도대항 글짓기에 자동출전되었다.

충청북도에서는 더 올라가 중학교 부문 최우수 글짓기 상을 받았다.

아버지 노릇을 많이 못해서 잠 못자며 들어주는 것으로 떼운 대가로는 너무 큰 기쁨을 돌려 받았다. 

양궁과 대학진학 등 여러번 늘 그랬지만... 

좀 힘든 지금 시기가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 

한 십년 쯤이 하룻밤 자고 나니 마법처럼 지나가 있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