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플라스틱 꽃

희망으로 2020. 9. 5. 08:31

 

 

<플라스틱 꽃>

 

한참 긴장모드로 들어가는 연속극! 

모두 귀 기울이고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는데, 

갑자기 건너편 침대 어르신이 기침을 시작했다. 

그것도 한 두 번 짜리 기침이 아니고 연속으로... 

목에 사래가 들었는지 쉬지 않고 해대시는데 

티비의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가 없다. 

금새 얼굴이 붉어지시고 숨도 가빠지신다. 

‘...얼마나 힘드실까? 등이라도 두드려 드릴까?’ 

그 생각도 잠깐, 계속 그치지 못하고 해대시는데 

‘아.. 그만 그쳤으면, 다 지나가겠네, 하나도 안 들리고 ㅜ.ㅜ’ 

어떻게 한 몸에서 이렇게 다른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일어나는걸까? 어떻게... 

머리는 힘들겠다. 저건 생리적 현상이야 어쩔 수 없어!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론 아~ 짜증나! 빨리 좀 그쳤으면... 그런다. 

 

병실의 환자 한분이 퇴원하시면서 새로운 환자가 오셨다. 

그런데 그분이 새로 입원하시는 분이 아니고 

옆 병실에 계시던 분인데 간병하는 분이 코골이가 심해서 

다른 분들의 항의성 요청 때문에 우리 방으로 옮겨 오시게 되었다. 

다들 볼멘소리에 걱정으로 수군거리다가 드디어 하루밤이 지난 후 

몇 예민하신 분, 바로 옆자리 분들이 간호사실에 항의를 했나보다. 

간병하는 분을 밤에 병실에서 나가 치료실이나 

간호사실에 딸린 침대에서 자게 해달라고 이야기하셨다. 

그걸 알게 된 환자분은 화가 나셔서 욕설이 담긴 불평을 쏟아내신다. 

같이 몇 달을 지낸 자기도 괜찮은데 왜 그러냐고... 

머리로는 맞다 심하다 그런다. 

사람이 잘 때 자기도 모르게 그럴 수도 있고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따로 나가서 자라니... 

그런데 묘한 게 머리는 이해하면서 안됐다 그러지만

마음 한구석은 다행이다! 그러면 좋겠다. 할 수 없지 그런다. 

적극적으로 괜찮다고 우리가 참겠다고 말도 안하고 

그냥 모른척 냅두자, 기다려보자!  뭐, 그런다...ㅠ 

 

요즘 어린 십대 학생들 말투나 내용이 어른세대들에겐 

참 당혹하고 마음이 안드는 경우가 많다. 

옷을 사러 같이 가도 어른들과 취향도 다르고 선택기준도 다르다. 

실용적이고 유난하지 않고 값도 무난한 걸 권하고 싶은데 영 다르다. 

튀는 디자인에 계절이나 용도에 딱 맞지 않아 보이면서

공연히 메이커 이름에 따라 비슷한 제품이 가격도 배나 차이도 난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선택의 기준이 된다고?

마음으론 이해하자, 십대고 이때 안 그래보면 언제 해봐? 

나이 들어서 그러면 더 이상하지! 

그러면서 정작 감정은 점점 피곤해진다. 

말 안 듣는다고 부아가 돋기 시작하고, 

요즘 아이들은 돈 아끼는 개념도 없다고 실망하게 된다.

공부나 진로 계획 같은 진지한 대상을 놓고는 더 심한 갈등이 생긴다. 

이걸 이해한다 그러며 안고 가? 아님 정신차려! 하면서 훈계를 해? 

애들은 어떤 이야기도 무조건 잔소리로 퉁치며 흘려듣겠지만...

 

종종 인터넷 카페 게시판이나 교회, 직장모임에서도 

서로 많이 다른 생각과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마주친다.

자기가 밥먹여주고 옷사주고 재워주며 키운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것 아니면서 무조건 나를 따르라! 강요한다. 

자기와 다른 의견이나 행동은 참기 힘들어 부글 속을 끓이고, 

상대를 무슨 생각 없는 사람이거나 불순한 것처럼 꼬투리를 잡는다. 

때론 구체적으로 어떤 제제를 하고 싶어 선을 넘어 태클을 건다.

그걸 당하는 사람도 머리나 말로야 다 이해한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 있을 타당성과 요구도 인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가슴은 이미 삐딱해지고 불편하고 

아무도 모르게 칸막이를 슬그머니 내리고 싶어진다. 

 

남과야 그렇더라도 흘려 버리며 멀리하고 살수도 있지만 

가장 소중한 부부사이에도 이럴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아내가 많이 아프고 점점 나빠지면서 감당이 안될 때 그랬다.

당사자는 얼마나 아프고 불안할까? 

가족을 몽땅 힘들게 만들어서 많이 미안하겠지? 그렇게 이해를 했다.

남들 앞에서도 그렇게 아내의 심정을 안다는 듯 변명도 해주었다.

그러다 시간이 길어지고, 몸으로 오는 고단함이 많이 누적되는 중에

아내가 한번 짜증이라도 내면 바로 터진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우리 모두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얼마나 참고 애를 쓰는지 알기나 하냐고! 

근데 왜 기운빠지게 절망적인 말을 하고 포기하냐?

자꾸 그러면 얼마나 참아낼지 모른다!”

...이건 머리로만 알고 사는거지 결코 가슴으로 사는 게 아니었다. 

쌓았다가 퍼부을 뿐이지 단 한 번도 품어주지 않았다는 증거다. 

 

머리로만 알고, 

머리로만 살고, 

머리로만 바라는 것들은 

가슴으로 알고, 

가슴으로 살며, 

가슴으로 실천하며 꿈꾸는 것들에 

비교할 수 없도록 천박한 싸구려들이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간들 단 한번도 향기로 꽃피우지 못하는 

화학향수나 풍기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와 다름 없다.

아직도 더러 종종 그렇게 사는 나를 발견할 때면 슬퍼진다.

머리만 달리고 가슴이 없는 기형 사람 하나를 보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