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아버지가 있었어요...>
어릴 때 아버지는 꼬여버린 사업실패의 후유증으로 엄마를 무지 괴롭혔지요. 경주에서 할아버지의 명성으로 당시 인텔리인 인천경찰전문학교를 나와 6.25전쟁때는 장교로 근무하고 화랑무공훈장을 받아 국가유공자를 우리에게 남겨주신 경력과 추락된 말년의 삶은 너무 격차가 벌어져 아마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자주 폭언과 잠 못자게 밤새도록 엄마를 괴롭히는 걸 못견뎌 엄마와 도망가려고 시골기차역에서 하루종일 앉았다가 결국 실행은 못하고 밤에 다시 집으로 귀가했던 기억은 제 평생가는 아버지에 대한 미운 감정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도 졸업시키지 못하고 붕 떠버린 제 학력때문에 늘 자책하던 아버지가 보기 딱해 무려 초,중,고를 모두 검정고시 독학으로 마치고 대학까지 입학해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렸지만 대장암에 걸려 우리 가족의 협심노력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15층 옥상에서 몸을 던지신 그 해의 기억은 악몽이자 슬픔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도대체 아버지라는 자리와 책임은 어떤 모습이라야 하는가 회의도 들고 수용하기가 힘들었지요. 그런데... 내가 아버지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몸의 질병들, 삶의 고단함,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늘 내리누르니 자꾸만 그때는 몰랐던 아버지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내가 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버지도 결코 완벽하지도 못하고 강하게만 살아지지 않는 연약한 늙은 남자일뿐이더라는 확인에 씁쓸하고 동시에 아버지 살아 생전에 이해해드리지 못한 미안함도 몰려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미리 나의 감정, 한계를 털어놓아야겠다. 결심하고 스무살이 넘는 시기부터 솔직하게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잃은 것은 무서운 아버지의 권위고 얻은 것은 ‘걱정맨’이라는 별명과 놀림과 조금의 이해? 가까운 관계의 친밀감입니다. 그리고 노력하는 제 모습을 인정하는 편입니다. 나라면 아버지 같이 못할거 같다는 돌려서 말하는 칭찬도 자식에게 들었습니다. 나는 살기가 편합니다. 굳이 숨기면서 부작용으로 폭발하는 모습을 안보여도 되고 이중성격으로 거리감이 생길 위험도 없어졌습니다. 아버지처럼은 안살겠다는 오랜 결심이 가져다 준 좋은 결과이면서 좀 더 능력있고 안정감 있는 가정을 제공하지 못한 미안함도 많습니다만...
아버지에 대한 여러 감회, 생각들이 종합으로는 죄와 결점 투성이의 약한 사람을 인정할 수있게 해주었습니다. 부모와 좋은 기억 안좋은 기억 등 숱한 상처나 추억을 가지고 그 부모의 입장에서 다시 자녀들과 생을 이어가는 분들이 궁금합니다. 다른 가정, 다른 신앙인들은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가실까 그런... 오랫만에 속에 담고 있던 긴 시간에 얽힌 기억 감정 생각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이야기를 꺼내주신 씨옵글님과 갈대님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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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7개
예쁜아줌마 (2020.06.04 오전 11:41:31)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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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것이겠죠? |
희망으로 (2020.06.04 오후 12:28:19)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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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
뷰티 (2020.06.04 오전 11:44:08)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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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님을 칭찬합니다. |
희망으로 (2020.06.04 오후 12:31:01)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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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제가 공부도 잘하고 아버지의 자랑이었나봅니다. |
brokenreed (2020.06.04 오전 11:44:39) andro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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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님의 인생은 한편의 대하 드라마 같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아버지의 약함도 이해하시고 자녀들에게 더 좋은 아버지가 되시려는 모습이 귀합니다. |
희망으로 (2020.06.04 오후 12:35:16)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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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젊을 때는 아버지를 이해 못했어요. |
sea of glass (2020.06.04 오전 11:50:35) andro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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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집사님의 스토리를 듣는 호사를 누립니다. |
희망으로 (2020.06.04 오후 1:09:48)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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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마흔 가까이 까지 이해보다는 상처와 원망으로 |
새벽이슬 (2020.06.04 오전 11:50:53)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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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버지 이야기기 시리즈로 나오네요. |
희망으로 (2020.06.04 오후 1:10:51)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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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기도해주시니 |
물맷돌 (2020.06.04 오후 12:19:38)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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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
희망으로 (2020.06.04 오후 1:20:57)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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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할아버지가 그 근처의 넓은 땅을 다 가지신 부자였고 |
닛시 (2020.06.04 오후 3:02:27) andro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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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전투에 투입되셨다면 다부동 전적비에 명단이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
희망으로 (2020.06.04 오후 4:59:15)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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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가 움직일 수 없는 형편이고 |
예수님 사랑 쌍둥이자매 (2020.06.04 오후 4:34:48) andro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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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세요 |
희망으로 (2020.06.04 오후 5:01:01)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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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그걸 이해하시네요. |
nada1026 (2020.06.04 오후 8:58:54) andro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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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시기를 사신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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