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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가깝게,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사는 방법

희망으로 2020. 6. 14. 11:06

<먼 길을 가깝게,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사는 방법>

 

한국 사람들은 성질이 급하다고 세계에 소문이 났는데

경상도 사람은 거기서도 한걸음 더! 좀 더 그렇습니다.

컴퓨터가 작동하는 그 몇초를 못견디고 느려터졌다고 성질을 냅니다.

더구나 처음 전원을 넣고 부팅이 되는 시간은 더 길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화면에 여러 아이콘도 치우고 자동실행프로그램도 줄이고 

별 짓을 다해도 더 이상 빨라지지 않는 시간이 벽처럼 느껴집니다. 

누군가 부팅시간(컴퓨터가 켜지는 시간)을 30초만 앞당겨도 소문이 나고

성질 급한 사람들에게 어필해서 돈을 자루에 끌어담을 만큼 벌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제 노트북이 아주 빨라졌습니다. 

정말 시간도 안걸리고 지루하지도 않아졌습니다. 

무슨 장치를 해야하는 복잡한 방법도 아니고, 

아주 비싼 노트북으로 바꾼 것도 아닙니다. 

단지 사진 하나만 바꾸었을 뿐인데.

그 이후론 주먹을 쥐지도 않고 

숨이차거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지도 않습니다. 

신기하게도 기분까지 좋아지는 행복한 순간으로 변했습니다. 

아래의 사진입니다. 

 

 

 

위 사진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고 있는 어느 분의 뒷모습입니다. 

프랑스 생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하여 피레네 산을 넘어 론세스바에스 부르고스, 

팜플로나를 지나 야곱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870키로를 걸어서 가는순례길입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저 길을 가는 사람대신 제 마음이 들어가면 

어느새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나무의 새들 소리가 들립니다. 

심지어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프기도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바크가 한 말,

‘어디인들 멀랴, 마음이 간다면 이미 가있는 것들을!' 

그 구절이 와닿습니다. 

거리도, 장벽도 넘어 마음이 이미 가 있는 놀라운 비행, 여행들! 

이 비슷한 체험을 하면서 깜짝 놀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천국도 때로는 땅에 묶여 바둥거리는 제게 왔다갑니다. 

 

먼 길을 가깝게 가는 방법, 

어디인들 멀지않게 이미 갈 수 있는 마음여행이 성경에도 있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  - 창세기30장 20절]

 

먼길을 가깝게 가는 방법은 즐겁게 가는 것입니다.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가면 됩니다.

먼 세월을 기다리는 중에도 몇날처럼 보낼수있는 길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나 무엇인가를 사랑하며 사는 방법이라고

성경에서도 말하네요.

온갖 지겨운 일과 불행, 고단한 삶을 다 피할수는 없지만 

이 땅을 지옥같은 느낌에서 천국같은 기분으로 바꾸는 길은

사랑하는 누군가와 같이 가는 방법이 아주 효과가 있습니다.

아니면 무슨 일,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그것을 없애거나 도망가는 선택보다 훨씬 가능한 길입니다.

 

아는 분이 한가지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친구가 딸을 하늘나라 보냈어요

아픈딸이 있을땐 딸 케어하며 재활치료하고 집안일에 새벽기도까지 

바쁘게 살아도 힘든거 모르고 지나왔는데 

딸을 보내니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손까딱 할 힘이 없다고

그 아이가 나를 살게한거 같다고 얘기 하시더라고요.

그뒤로 저도 이 아픈 환자가 나를 살게 하는 고마운 존재라는걸 

다시금 생각하게되요”

 

그런데 이 소식을 저에게 전해온 분이 어떤 처지인지 알기에

제 마음이 더 울림이 크고 깊이 감동되었습니다.

키가 185도 넘는 잘생긴 아들이 고3 마지막 방학에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오토바이로 집에 귀가 하는 중 불법 유턴하는 승용차에 충돌하는 큰 사고가 

났습니다. 그 사고로 그만 아들이 사경을 헤매다 지금은 8년째 코마 상태,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 상태로 재활치료를 받으며 버티고 있습니다.

그 큰 아들을 씻기고 먹이고(경관식 호스로) 움직이며 버티는 엄마입니다.

그 처지에 늘 신앙의 힘이 기둥이 되고 처마가 되고 보약으로 삼습니다.

그런데도 한번은 우리를 만나 밥사주겠다고 국립암센터까지 왔었습니다.

이 상황의 삶을 사는 분이 환자인 아들이 고마운 존재라고...그런 고백을 합니다.

이 고단하고 먼 길을 가는 중인데 원망과 푸념이 전부가 아니고

말도 표정도 대꾸도 못하며 누워서 강직과 모든 통증을 쏟아내는 아들에게

자기를 살아가게하는 고마운 존재라고...

 

저도 여러 순간에 느낀 일들이 있어 공감하고 남습니다.

가장 힘들고 심각했을 때 짐이라고 보였던 딸 아이가 사실은 우리가 

죽지 않고 힘내서 견디며 고비를 넘기게 한 하늘의 위로요 

에너지 였다는 걸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 고마운 존재를!

지옥같이 받아들일 상황에, 먼 길에 우리에게 사랑하는 누구를 주신

그 깊은 뜻을, 배려를 미처 모르고 소홀이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칠년을 며칠같이 짧게 보낼 수 있었던 야곱의 라헬이 우리에게도 있겠지요?

뭐가, 누구가 우리의 라헬일까요?

먼 길, 힘든 세상을 가볍게 만들어 줄 우리가 사랑하는 라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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