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아프다’
이 말을 꺼내자마자 누군가 푸념처럼 나올것 같다.
“또? 지겹게...”
누군가만 그런건 아니다. 나도 그렇다. 누가 그럴걸 아는 건 내가 남의 속말을 알아듣는 초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속에서도 동시에 나오는 말이라서 안다. 그걸 알면서도 민망하게 글을 올리는 것은 오늘은 그 아픈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는게 아니고 사람들 속에 있는 연약한 반응 한가지를 경험했기에 나누고 싶다.
아내가 목이 붓기 시작해서 약 처방을 받아 먹는 중에 이유없이 배가 추가로 아프더니 급기야 명치가 막히고 밤새 숨쉬기가 곤란한 상태로 악화가 되었다. “이상하다? 갑자기 왜 이렇게 줄줄이 탈이 나지” 아내가 아프기 전에도 며칠을 나는 이상한 악몽이 계속되어 밤을 세웠다. 잔인하고 피를 낭자하게 보는 가위에 눌려 밤새 찬송가를 귀에 꽂고 사투를 벌렸다. 그러면서 이상한 생각이 연달아떠올랐다. ‘무슨 사악한 기운이 아내와 나를 덥치나?’ 그러다 병실의 한 아주머니가 싫다는데 계속 이것저것 가져다주는 먹을거리나 남겨서 주는 밥들이 꺼림칙했다. 또 옆자리 할머니 한분이 유난히 스트레스를 주곤했는데 가끔 귀신이 든 사람같다는 섬찟한 느낌도 들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이상한 생각들이 들면 나마저도 미신에 가까운 괴상한 생각에 빠져 정상적인 크리스찬의 시각이 아니라 사이비교 비슷한 정신병이 들것만 같았다. 말할수 없는 곤경이 계속 몰려오면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매달리고 싶어진다. 그러다 한발 더 나가 용하다는 영력을 가진 신유기도자라도 찾아가고, 그러면 이상한 신앙형태에 빠지는건 시간 문제가 된다.
왜 벼랑끝에 선 사람들이 건강한 사람들이 볼때 그다지 이성적이지 못한 결정을 내리고 수상한 현상에 목매는지 조금 이해가 된다. 뭐라도 붙잡고 싶고 뭐라도 기대를 가져야 살 수가 있으니 그럴거다. ‘그런 게 아니다, 이런 생각에 빠지면 안된다!’ 라고 나를 다잡고 밀어낼 쯤에 아내는 심한 통증때문에 더 견디지 못했고, 결국 대학병원 응급실을 새벽바람에 들어갔다. 온갖 괴로운 피검사 시티촬영을 한 후 담낭염으로 수술을 해야한다는 의사선생님의 진단을 들었다.
옆구리에 관을 뚫어 담낭에서 염증액을 빼내면서 아내의 통증은 응급실 오기 이전보다 몇배는 세졌다. 70에 40으로 혈압이 떨어져 약 넣고 나면 오한에 발열, 구토에 복통으로 아내는 괴로워했다. 죽겠다 소리를 좀처럼 안내던 아내에게서 죽을거 같다는 비명이 계속 나왔다. 하루 세번, 마약진통제 주사로 조금 통증을 내려 놓으면서 아내와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일방적으로 내가 말하고 아내는 고개만 끄덕이고...
“누가 나에게 세상에 태어날지 안할지 선택할 기회를 준다면 난 3초도 안기다리고 말할거야. 태어나기 싫어요! 라고...”
아내도 동의한다. 나는 청년때부터 그랬다. 세상에 크게 재미난 것도 없었고 돈이나 명예, 권력도 욕심이 안났다. 그러니 무슨 재미로 인생을 부득 살겠다고 할까? 결혼도 연애도 그다지 내게 삶의 목표가 아니었고 별 미련이 안생겼다. 그냥 태어났으니 남에게 욕 안먹고 욕 안하면서 살면 그저 되었다. 그게 나의 태도였다. 인생이 무슨 별난거 아니다. 다들 아무도 대신 해주지 못하는 고독을 안고 평생 살다가 가는 거지. 그래서 부모에게 크게 원망도 안했고 그냥 살아왔다. 묘하게 아내도 나와 비슷했다.
“당신은 나를 만나 살아온 거 후회도 안돼? 그런대로 괜찮았어?”
애매한 표정이지만 어느 정도 다행이라는 대답을 한다. 그런데 왜 나는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책임지면서 살게 했을까? 내 생각대로면 혼자 살다가 세상을 조용히 떠나는 길이 정답인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구의 작정일가? 무슨 의도였을까? 사실 내 부모님도 나를 낳아주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생각은 자주 한다. 아버지가 암 투병중에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전철을 내 아이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고 괴로워도 억지로 사는 결과도 누군가에게 유익한 걸까? 그나마.
“난 고통이 너무 무서워! 오늘이라도 당신과 내가 심한 통증을 거치지만 않는다면 당장 세상에서 데려가줘도 너무 좋겠어! 이제 아이들은 성인이니 스스로 살겠지 뭐, 자연사라면 아이들에게 욕도 안먹을거고. 하지만 나만 데려가는건 안돼! 홀로 살 수 없는 당신을 남겨두고는 못가지...”
그러나 그런 소원은 잘 들어주지 않는 하나님인거 모두가 안다. 그거야말로 얼마나 큰 공을 세우면 주는 상일까 싶고. 그저 아내만 먼저 데려가주셔도 고맙겠다. 내가 뒤 마무리를 하고 알아서 버티다 가면 될테니. 하지만 한가지는 결단코 지키고 싶다. 비록 불행의 코너에 몰려 한가닥 지푸라기라도 잡고 이 고통이 줄어들기를 바라지만 끝까지 감수하며 살아가겠다고. 우리를 통해 무슨 쓸모를 채우시고 누구에게 유익이 되게 하시려는지 도통 모르지만 이상한 결심도 안하고 이상한 우상이나 미신에 의지하지도 않고 살겠다고.
나는 안다. 그리고 고맙게 생각한다. 나를 결혼도 안시키고 아이들도 없이 혼자 세상에 살게 냅두었다면 어쩌면 벌써 나는 이 땅의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내를 만나게하고 내 발을 묶으신거라고. 그건 아내에게 종살이 시키려는 목적이 아니고 나를 살리시려고 하신 계획이란거. 단지 그 시기가 언제까지인지 몰라서 갑갑할 뿐이다.
그래서 보답하는 길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의도대로 일정을 따라 살다가 가는 것이다. 부디 아내와 동반하여 떠나는 보너스를 받는 행운이 오면 더욱 좋겠고. 내 기도는 그저 엉뚱한 사고만 안치고 빗나가지 않고 이 주어진 역을 마치는 것이다.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백성처럼 좀 불편하면 원망하고 좀 두려우면 우상을 만들어 탈선하지 않게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파보니까, 코너에 몰려보니까 그 걸음도 내 의지로 안되더라. 너무 힘드니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혹 하면서 넘어가고 두려움으로 귀신과 싸우고 딱 어딘가 이상한 길로 빠지게 되더라는 경험을 한다. 덕분에 그렇게 되는 이들을 이해는 하지만 따라 하지는 않아야겠다 결심한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더 유혹에 빠지고 아픈 사람들이 더 쉽게 미신과 사이비에 넘어가는지, 심하면 귀신이 들리는지 이해가 되니 더 조심해야겠다. 이 나눔을 하고 싶었다.
'아내 투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음으로 해보는 맡기는 기도> (0) | 2019.06.17 |
---|---|
<익숙하지 않은 날들> (0) | 2019.06.17 |
담낭염 수술을 위한 배액시술... (0) | 2019.06.07 |
<비는 오고 응급실은 슬프고...> (0) | 2019.06.07 |
그때 그 말씀들 11 ‘너무 늦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라’ (0) | 2019.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