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병원 옥상을 올라왔습니다.
오늘 병원을 빠져나가 5시간 정도 대전의 어느 작은 산 황토길을 걷고 올 수 있는 복이 터졌습니다. 그 갑작스런 선물이 너무 설레어 잠이 안와 이른 시간에 깨어 뒤척이다 산책겸 옥상에 왔습니다.
하늘이 흐렸습니다. 일기예보는 소나기가 올 예정이랍니다.
그래도... 떠날겁니다. 3년만의 휴가, 8시간의 외출입니다.
빗줄기 따위가 가출을 막기에는 내 마음의 무게가 너무 쌓이고 무거워졌습니다.
그리고...얼른 옥상에서 내려가야겠습니다. 자주 느낀 것이지만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오면 나도 모르게 아래로 뛰어내릴 것만 같은 충동이 순간 순간 몰려오는지... 좀 두렵고 섬뜩해서 내려가야겠습니다. 아직은 모르는 이들에게 황당함을 안겨주고 나를 아는 분들에게는 슬픔을 줄만큼 생명이 밉지는 않습니다.
후다닥...
<출발! 터미널>
늘 지나며 보기만 하던 매표소에서 표 한장을 샀습니다! 매점에서 생수 한 병 사서 가방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이게 뭐가 어렵다고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도록 못했는지...
예전 직장을 다닐 때는 정말 덤덤하고 때론 지겹던 출근시간대 이동을 오랫만에 물결에 묻혀 걸어보았습니다. 다들 바삐 걷는 사람들틈에서 조금은 구경하듯~
눈 뜨면 출근이고 누워 눈 감으면 퇴근이 되는 병실 간병업무, 자다가도 깨우면 수시로 야근 잔업이 되는 그런 기분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오랫만에 맛보는 바깥 바람입니다!
갑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예전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떠돌아 다니던 시절에는 몰랐던 감정,
어디를 가고 오는 버스에 몸 싣는 일이 그렇게 감사하고 소중한 혜택인줄 몰랐으니까요.
이제 이 소박한 일마저 하늘의 은총으로 받습니다.
부자는 얼마나 많이 가지냐가 아니고 얼마나 필요한 것이 없는냐가 기준이라던 말이 깊이 공감됩니다.
내가 노래부르던 만족한 여행은 더 멀리, 더 많은 곳을 얼마나 자주 가는냐가 아니라는 것. 얼마나 못가고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는냐가 오히려 오래 추억으로 남는 기준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많이 가지고 무뎌지는 사람보다 부족함속에서 더 깊이 사무치며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진짜 하늘이 주는 은총이 아닐까 싶어서...
<산 길을 오르다가...>
산으로 들어와 오르는 길
앞에 꽤 경사가 높은 커브가 나타났습니다.
어디선가 본듯 낯익은 느낌...
아, 십수년 전 아내와 천등산 새벽길을 도라지 캐러오르던 임도와 너무 닮았습니다.
어디나 비슷한 우리나라 산의 속이 맞습니다.
그때 이런 시를 썼습니다.
다시 멀쩡했던 아내의 기억이 갑자기 몰려와 울컥 심장이 아픕니다.ㅠㅠ
그때 그랬는데... 나중에 많이 잘해주려고 했는데...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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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34
새벽이면 일어나
잠든 아이를 들쳐업고
산길을 오릅니다
산행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산비탈에 핀 보라색 도라지 꽃 때문에
첫날부터 무너졌습니다
비탈을 올라 맨손으로 흙을 파내더니
다음날은 숟가락을 주머니에 몰래 넣어오고
그러다 아예 호미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당신을 보며
나는 내내 아이를 안고 업고
따라다닙니다
위험하다고 절벽에 핀 도라지를
말하지 않으려는 내 맘과 달리
어느새 손가락은 그곳을 향합니다
당신을 말리지 못한 나는
좋아하다 안스러워하다
어쩔 줄 몰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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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놓고도 어제 밤에는 또 아내와 티격 신경전을 했습니다.
“나 안가! 내가 하루 쉬는 게 그렇게 못마땅하면...” 그러면서요.
언제쯤 온 인류가, 특히 남정네들이 철이 좀 들까요?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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