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다녀왔습니다! 특혜 아닌 졸혼기념여행?...

희망으로 2018. 5. 30. 13:49

<다녀왔습니다! 특혜 아닌 졸혼기념여행(?)...>

 

- 병원 옥상에 올라

 

이른 아침 5시 좀 넘어 병원 옥상을 올라갔습니다.

오늘 병원을 빠져나가 5시간 정도 대전의 어느 작은 산 황토길을 걷고 올 수 있는 복이 터졌는데, 그 갑작스런 선물이 너무 설레어 잠을 설치다가 이른 시간에 깨어 그냥 산책삼아 병원 건물의 옥상으로.

 

하늘이 흐렸습니다. 일기예보는 소나기가 올 예정이랍니다.

그래도... 떠날 겁니다. 3년만의 당일치기 휴가, 8시간의 자유외출입니다.

빗줄기 따위가 가출을 막기에는 그동안 쌓인 내 마음의 무게가 너무 두껍고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나... 얼른 옥상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자주 느낀 것이지만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오면 나도 모르게 아래로 뛰어내릴 것만 같은 충동에 빠지는지. 좀 두렵고 섬뜩해서 내려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길 가던 모르는 이들에게 황당함을 안겨주거나, 나를 아는 분들에게는 진한 슬픔을 줄만큼 사는 것도 생명도 밉지는 않습니다.

 

후다닥...

 








 

- 출발! 터미널을 지나

 

딸래미를 바래주거나 손님을 맞으로 가서 늘 눈으로 보기만 하던 매표소에서 표 한장을 샀습니다! 매점에서는 생수 한 병을 사서 등에 메는 작은 가방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갑자기 싱거웠습니다. 이게 뭐가 어렵다고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도록 못했는지...

 

예전 직장을 다닐 때는 정말 덤덤하고 때론 지겹던 출근시간대 이동이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그 생생한 물결에 같이 묻혀 걸어보았습니다. 다들 바삐 걷는 사람들 틈에서 어딘가로 출근하는 척하며, 조금은 슬쩍 구경하듯~

 

눈 뜨면 출근이고 누워 눈 감으면 퇴근이 되는 병실 간병업무, 자다가도 환자가 깨우면 바로 야근 잔업이 되는 직업, 그런 직장 분위기와는 상당히 다른 출근의 기분입니다. 오랜만에 맛보는 바깥 출근 바람입니다! 그럼, 갑니다~

 



 



- 달리는 버스 안에서

 

예전 총각시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틈만 나면 떠돌아다니던 시절에는 몰랐던 감정이었습니다. 어디를 가거나 오는 버스에 몸 싣는 일이 그렇게 감사하고 소중한 혜택인줄은. 이제 이 소박한 일마저 하늘이 허락하고 내려주는 특별한 은총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가 아니고 얼마나 필요한 것이 없는지가 기준이라던 말이 깊이 공감됩니다. 내가 입에 달린 것처럼 노래 부르던 원도 없이 만족한 여행은 이런 거였습니다. 더 멀리, 더 많은 곳을 얼마나 자주 가느냐! 그러나 오늘 문득 그게 아니라는 것. 얼마나 못가면서 그 와중에 갈 수 있을 때, 그 기회를 얼마나 소중하게 느끼는지, 그리고 그 마음이 오히려 오래 추억으로 남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많이 가지고 무뎌지는 사람보다 부족함속에서 더 깊이 감사의 마음이 사무치며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게 진짜 하늘이 주는 은총이 아닐까 싶어서...

 


 

- 산을 오르다가...

 

산으로 들어와 오르는 길, 앞에 꽤 경사가 높은 커브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느낌이 꼭 어디선가 본 듯 낯익었습니다. , 십 수 년 전 아내와 충주로 막 이사 왔을 때 이른 아침마다 천등산을 오르던 산림도로와 너무 닮았습니다. 어디가나 비슷한 우리나라 산의 속 모습이 맞습니다.

그때 이런 시를 썼습니다. 블로그에서 그 글을 다시 찾아 읽으니 멀쩡했던 아내의 기억이 갑자기 몰려와 울컥 심장이 아픕니다.ㅠㅠ 그때 그랬는데... 나중에 많이 잘해주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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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34 -

 

새벽이면 일어나

잠든 아이를 들쳐 업고 당신과

산길을 오릅니다.

 

산행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산비탈에 핀 보라색 도라지 꽃 때문에

첫날부터 계획은 무너졌습니다.

 

당신은 기어이 비탈을 올라 맨손으로 흙을 파내더니

다음날은 숟가락을 주머니에 몰래 넣어오고

그러다 아예 호미를 들고 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당신을 보며

나는 내내 아이를 안고 업고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위험하다고 절벽에 핀 도라지를 보고도

말하지 않으려는 내 맘과 달리

어느새 손가락은 그곳을 향하고 맙니다.

 

당신을 말리지 못한 나는

좋아하다 안쓰러워하다 다시 좋아하다

어쩔 줄 몰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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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놓고도 어제 밤에는 또 아내와 티격 신경전을 했습니다.

나 안가! 내가 하루 쉬는 게 그렇게 못마땅하면...”

언제쯤 온 인류가, 특히 남정네들이 철이 좀 들까요? 에휴...

 





 

- 허기지고 다리 아픈 하산 길

 

그곳에 산이 있어 간다던 등산가가 있었습니다. 뭐 전문 등산인이 아니더라도 눈앞에 보이는 정상은 오르고 싶어 모두들 낑낑 아픈 다리 참으며 오릅니다. 이미 황토길을 10km 가까이 걷다가 계단과 비탈을 오르는 길은 좀 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저기 보이는 무엇이 있으니...

 

해야 할 일과 눈앞에 닥치는 길은 사는 방식과 비슷한 걸까요? 겨우 빵 한 봉지 생수 하나로 중간 중간 쉬며 한두 쪽 씩 먹고 오르는데 허기가 집니다. ‘김밥을 사올걸...’ 늦은 후회는 살면서 돈 좀 더 벌어 놓을걸...’ 과 비슷하게 후회로 몰려왔습니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땀에 베인 등짝, 화끈거리는 얼굴로도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과 그늘아래 앉아 맞는 시원한 바람은 충분히 고단함을 잊게 해주었습니다.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갈 때가 더 힘들고 위험하다고 말들 합니다. 맞네...’하면서도 또 올라갑니다만. 내 앞에 남은 시간도 어쩌면 내려가는 과정인지 모릅니다. 시작보다 어렵고 가장 위험한 고비를 넘긴 아내의 투병 나의 극복이지만 이미 지치고 쌓인 약한 지반처럼 합병증이 오기 때문에...






 






오후 3시가 넘도록 물만 마시고 식당하나 없는 하산 길과 마을을 지나 버스로 시내로 온 뒤에 국밥 한그릇을 생명수처럼 먹었습니다. 약속한 시간, 대리간병중인 딸의 퇴근시간 오후5시를 넘기지 않으려고 종종 돌아오니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5시에서 2분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3년만의 하루 자유외출은 끝났습니다. 고맙게 웃으며 다시 만난 아내와 딸의 미소는 사르르 몰려오는 피로감만큼 아늑합니다.

 

이렇게 마냥 걷고 땀 흘리며 산을 오를 수 있는 날, 어디든지 내가 정하고 내가 멈추며 다니는 자유로운 상황, 그렇게 다시 또 갈 수 있는 날은 한참 뒤겠지?’

 

미안해서 속으로만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내와 딸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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