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어느 날의 기억 26

희망으로 2018. 3. 7. 15:35

<어느 날의 기억 26 - ‘늙음’>

“무서워, 무서워!”
“왜 그러세요? 할머니?”
“아이구, 벽에 불이 날까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어!”
“어디가 이상한데요, 할머니?”
“저어기... 불나겠네, 무서워!”

그 할머니 기어이 간호사실에 가서 불난다고 일러바쳐서 한 분을 데리고 왔다.
간호사가 ‘뭐지?’ 보니까 핸드폰 배터리 충전기의 작은 전원불빛이다.
기가 막혔다. 그걸 불이 난다고 열 명이나 잠을 깨우다니...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넘었다.

“내 방이여! 여긴 내 방이라구”
“알았으니 제발 좀 주무세요!”
“근데 내 자리가 없어!”
“미치겠네. 저기가 할머니 자리잖아요!”

성질 급한 딴 환자의 간병인 아주머니가 짜증 섞인 소리로 할머니께 타박을 한다.
갑자기 킥킥 웃음이 난다.
얼마 전 한 할머니가 아침 동이 틀 때까지 밤새 사람들 잠 못 자게 중얼거린 게 떠올랐다.
며칠을 그렇게, ‘집에 가자!’ ‘나 집에 보내줘!’ 라고 하면서.

그러고 보니 이 병실 사람들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니다.
벌써 더 심한 경우를 겪어본 베테랑 환자와 보호자들! 흐흐흐!

바깥을 보니 비가 뿌린다.
이상하게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면 더 심해지신다. 마치 신경통이 있는 분들이 비오는 날엔 더 쑤시듯.
마음의 신경통인 치매도 그러신가 보다.

늙음 - 삶이 낡으면 비 오는 날 마음도 앓이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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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 “무서워, 무서워!” “왜 그러세요? 할머니?” “아이구, 벽에 불이 날까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어!” “어디가 이상한데요, 할머니?” “저어기... 불나겠네, 무서워!” 그 할머니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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