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어느 날의 기억 26

희망으로 2018. 3. 5. 15:25

<어느 날의 기억 25 - ‘내짝’>

"어느 날 사라져서 소식 없으면 인도에 가 있을 남편입니다!"

아내는 내가 꺼낸 '인도'라는 단어를 듣던 선교사님께 고자질하듯 그렇게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오래 전 내가 아내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슬리퍼를 끌고 마을 산책을 나갔다가 좀 더 멀리 가고 싶어질지 모른다. 그 다음에는 공항으로 가고 싶어지고 그 길로 인도 어딘가로 가서 살지도, 누군가를 만나 또 결혼을 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자원봉사자로 살지도..."

그렇게 떠나고 싶고,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어딘가에 매여 빗나가는 삶을 탄식했던 걸 아내는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 내용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고, 그 마음과, 그 꿈과, 그 외로움까지를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6개월마다 맞는 항암주사와 피검사, 진료를 위해 멀리 일산까지 오려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습니다. 
그 일정을 듣고 인도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시다 마침 한국에 들어와 계시던 분이 병원까지 일부러 오셨습니다.

'그냥 죄송하다고 말하고 취소를 할까? 어째야 하나...'

아내의 몸 상태, 특히 실명한 오른쪽 눈의 통증이 계속되고 있어서 누구에게 무거운 표정, 무거운 말 한마디도 보이는 게 미안해서 어떻게 하나 고심하며 올라왔습니다.

"내가 억지로라도 왔을 겁니다!"

취소할까 고민했다고 솔직하게 말한 내게 그 선교사님은 그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고맙게도,

다시 입원중인 지방의 재활병원으로 내려오는 길에 찬양을 들으며 운전을 하는데 눈물이 핑 돕니다.
내게는 무거운 삶의 원인이 되면서, 동시에 한마디만 하면 나머지를 채우고도 남을 아내라는 친구,
그리고 그런 우리를 기꺼이 찾아와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내짝 – 자신의 수고와 아픔을 감수하며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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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 "어느 날 사라져서 소식 없으면 인도에 가 있을 남편입니다!" 아내는 내가 꺼낸 '인도'라는 단어를 듣던 선교사님께 고자질하듯 그렇게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오래 전 내가 아내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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