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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하루는 그 디테일 위에 있고...

희망으로 2018. 4. 15. 23:10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하루는 그 디테일위에 있고>

 

무섭다. 그리고 슬프기도 하다. 남이 아니고 내 자신이 그렇고, 오늘이 아니고 내일이 더 그렇다. 우리 집 사정을 아는 분들이 종종 내게 말해주신다. 참 용하게 잘 참고 잘해나가고 있다고 칭찬과 응원을 해주신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말이 다행히 지금까지는 맞았지만 계속 맞을지는 자신이 없다는 걸. 그래서 무섭고 그래서 슬프기도 하다.

 

십년 전, 원하지 않았지만 아내에게 닥친 불행한 희귀난치병은 나를 몰아세웠다. 수도자도 아닌 나를 금욕생활을 하게 했고, 살림이 바닥나도 죽지도 못하고 살게 했다. 돌아보면 단 하루도 그 싸움이 없던 날이 없었고 그 지긋지긋한 유혹과 근심은 나를 떠나 며칠만이라도 휴가를 가는 자비도 없었다.

 

사모님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독신 아닌 독신이 되어버린 나와 비슷한 처지의 어느 목사님은 그 괴로움을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여성도님, 특히 젊은 여자청년들은 절대 11로 제 곁에 오지 마십시오!” 유혹, 그 위험성과 자신의 한계를 미리 아시는 그 목사님의 싸움은 내게도 그대로 날마다 싸우는 현실이었다.

 

유혹은 협박보다 힘이 세다. 그리고 위험하다. 이를 악물고 목숨 걸고 어떤 불행과도 싸우겠다는데 슬그머니 밀려오는 외로움은 날카로운 폭력보다 오히려 감당이 안 되었다. 이솝 우화던가? 봄날의 날씨가 강풍의 겨울을 이기고 사람의 외투를 벗긴 이야기. 유혹은 그런 차원의 강적이었다.

 

설마 유혹이 대낮 사거리에 벌거벗은 여인으로 나타나 나를 가지세요!’ 하며 다가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유혹이라면 안 넘어갈 자신도 있다. 그래서인지 유혹은 외로움을 비집고 사소한 일들을 통해서 슬며시 다가온다. 베푸는 사람은 정작 의도하지 않았고 애초는 유혹이 아니었는데도 받는 사람의 위태로움이 그렇게 만들어가기도 하고 끝을 그렇게 망치기도 한다.

 

모든 일마다 따라오는 금전적인 지출항목들 또한 내겐 유혹만큼 위험한 대상이 되었다. 청구서들은 순서대로 목을 조여 와서 나를 근심과 불안에 빠트린다. 욕심, 누가 길거리에 돈 보따리를 놓아두고 훔쳐가라면 그런 노골적인 부채질에는 나도 안 넘어갈 자신이 있다. 하지만 신앙의 양심과 사람사이의 도리 같은 우선기준을 슬쩍 밀쳐놓으면서 그로 인해 생기는 이익()을 취하라면 달라진다. 말로는 신앙이 우선이고 하나님을 위한 일이 먼저라고 하면서도 근심에 빠진 속사람은 내게 얼마만큼의 돈이 생길지, 바닥난 형편에 얼마나 도움이 될 사람인지 먼저 저울질 하게 만든다.

 

유혹과 근심으로 변질되는 우리의 형편은 가랑비를 맞는 것과 많이도 비슷하다. 심한 소나기는 아예 만반의 대비를 하거나 아님 아예 길로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잔잔한 가랑비는 만만하다. ‘이쯤이야!’ 라거나 잠시인데 뭘하며 맞다가 그만 가랑비에 옷이 다 젖어버린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다보면 에이, 이미 버린 옷...’ 그러면서 결국 계속 비를 맞고 만다. 소나기보다 훨씬 나쁘고 심한 최후의 자리로 우리를 몰아간다.

 

우리는 비슷하면서도 진짜가 아닌 것을 짝퉁이라고 한다. 물건이 아닌 종류에도 그런 게 있다. ‘사이비라고. 사이비라는 단어 자체가 아주 비슷하지만 아닌 것 그런 뜻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더 진짜 같을수록 더 사이비라고 보면 맞다. 사람사이에도 그런 것이 있는데 우리는 그걸 사기꾼이라고 부른다. 모두의 공통점은 처음에는 진짜배기처럼 보이다가 어느 시점, 어느 부분에서는 본색을 드러내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애당초 품었던 나쁜 목적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럼 그런 것은 진짜와 뭐가 다를까? 가짜, 즉 짝퉁, 사이비, 사기꾼은 대부분 얼른 눈에 보이는 겉모습이나 쉽게 비교해보는 부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름표나 크기, 생김새 색깔 등등 그러나 잘 보이지 않는 부분, 혹은 잘 구분할 수 없는 전문적인 항목 등에서 차이가 있다. 좀 안목이 있는 사람이나 그 분야 전문가가 깊이 들여다보면 다른 점을 찾아낼 수 있다. 한마디로 디테일, 세부적인 것 하나하나를 비교해보면 많이 다름이 나타난다.

 

또 짝퉁이나 사이비, 사기꾼은 공통으로 비슷한 점이 있다. 짝퉁은 싸면서도 좋은 듯 속이고, 사이비는 진실한 듯 하면서도 다른 길로 데려가고, 사기꾼은 처음에는 선한 듯 하면서도 결국은 남을 망치고 자기 욕심을 채운다. 그런 점에서 아주 유사한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악마다. 사람들의 삶과 생명, 심지어는 죽음 이후까지도 파탄을 내는 무시무시한 가짜. 짝퉁이나 사이비 사기꾼 정도와는 비교가 안 되는 끔찍한 속임수로 사람들을 파멸시키는 존재다.

 

서양에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detail.) 라는 속담이 있다.

 

큰 원칙에서는 합의가 쉽지만, 세부 항목들에서는 서로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뜻으로 주로 협상테이블에서 사용되는 서양 속담이다. 계약서를 꼼꼼히 보지 않으면 당한다는 경고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주 작은 글씨크기로 인쇄하고 가입자가 미처 못 보았다가 나중에 낭패를 당하는 보험약관의 경우도 해당될지도 모른다. 영어사전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detail] - 1.세부 2.하나하나 다루기 3.말초적인 일 등.

 

그렇다. 악마는 한눈에 보이는 큰 덩치로 나타나지 않고 아주 세부적으로, 또는 우습게 볼 수 있는 말초적인 하나하나에 존재한다. 사람들을 유혹해서 죄에 빠트리는 수단과 방법, 접근 방식도 그렇다. 대놓고 모두에게 해로운 것을 표 나게 당장 선택을 하라고 들이밀면 아무도 속지 않는다. 그래서 발톱을 숨기고 독소를 향기로 위장해서 스며든다.

 

다윗이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게 된 것이 다윗이 작정하고 오래 계획하고 한 일이었을까? 아님 밧세바가 일부러 다윗을 망치려고 고의로 한 일이었을까? 나중에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 장군을 죽일 것과, 결국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후회할 것을 알고도 범죄를 저질렀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거다. 단지 적적하거나 외로움의 바람이 가슴을 건드리고 지나간 어느 밤, 우연히, 정말 아무도 계획하지 않은 양쪽의 우연이 둘을 그렇게 몰아갔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두근거림과 감정의 뜨거운 느낌, 그리고 호기심을 채우는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자기 살자고 아내를 누이라고 넘겨주고 줄행랑 도망친 아브라함, 처음부터 그렇게 될지 알고도 들어가지는 않았을 거다. 그냥 먹을거리나 구하고 지낼 곳을 찾다가 예상 못한 상황에 몰리고 협박 비슷한 위험한 분위기에 그만 두려워져서 그랬을 거다. 끝이 그렇게 치사하고 무책임한 행동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땅 판 돈 전부라고 일부를 다른 주머니에 남기고 속였다가 죽어 나간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그렇게 거짓말하다가 죽을 줄 알고도 처음부터 작정하고 숨기고 속이고 했을까? 그냥 조금은 남겨도 되겠지, 거짓말 한 번 한다고 어떻게 되겠어? 뭐 그랬을 거다. 알고도 죽자고 빼돌리고 속이고 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많은 나쁜 끝의 처음에는 그렇게 그저 작고 사소한 동기가 있었을 뿐인 경우가 많다. 겨우 그 정도, 겨우 한 번 정도의 대수롭지 않거나 넘어가겠지 하는 일들이 나중에는 감당 못할 큰 일로 만들어진 거다. 그 작은 씨앗이 자라고 불편해지면 그걸 덮기 위해 더 큰일이 일어나고, 그러다 비극을 맞는 거다. 악마는 늘 그런 긴 일정을 가지고 처음 시작은 하나의 조각처럼 세세한 일로 접근한다. ‘이건 뭐 그리 큰 죄악이 아니야!’ 아님 딱 한 번인데 어때?’ 식으로.

 

악마는 그렇게 디테일에 숨어서 온다. 우리는 그걸 가랑비처럼 만만히 받아들이고 한 번 두 번 거듭되는 사이 온몸이 젖는 거다. 우리의 외로움과 좌절과 필요를 이용하고, 때로는 본능인 욕망과 욕정을 건드리면서 우리를 파탄시킨다. 남의 일이라면 잘 알고 결코 안 속겠지만 막상 본인이 떠내려가는 흐름의 중심이 되면 당하고 만다. 강둑에서 보거나 제3자의 위치가 아니면서 급류의 중심에 있으면 나의 모습을 전체로 볼 수 없기에 그렇다. 당사자라는 약점의 자리는 자주 그렇다.

 

맞다. 사람들은 그렇게 어리석다. ‘하지 말라, 제발 하지 말라또는 그러면 죽는다는 하나님의 경고와 법을 알면서도 기어이 그렇게 되고 만다. 악마는 겉으로 대놓고 처음부터 거부할 접근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기를 과신하면 넘어간다. 조금씩, 한 번만 더! 하다가 보면 어느새 가슴팍까지 물에 들어와 있고, 다시 되돌리기는 너무 힘들어 진다. 어느새 습관이 되고 욕심 욕망 욕정의 맛에 빠져 끊기 힘들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큰소리치면 안 된다. 순간마다 사소한 작은 일마다 그 디테일에 숨은 악마의 유혹을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 결코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매의 눈과 흔들리지 않는 힘은 하나님만 가졌다. 도무지 은총이 아니면 누가 이 악마의 디테일을 이기고 속지 않아서 나중에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

 

악마는 아주 디테일한 것들에 숨어서 우리를 날마다 흔들고 우리는 그 디테일들이 연속으로 이어진 오늘을 살아간다. 거창한 적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미세하여서 우습게 볼 지도 모르는 더 위험한 적, 악마의 유혹과 얼굴을 마주대고 고상한 영혼만이 아니라 뜨거운 몸으로 씨름하며 산다. 정말 하루는 하나님의 도움이 시시각각으로 필요한 구체적인 전쟁터이고 현실이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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