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 묻지 마라!...> ‘기독교 윤리학의 세계적인 석학’ ‘미국 최고의 신학자’ 이런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다니는 스탠리 하우어워스 교수. 그러나 학문적 금자탑 저편에는 심각한 정신병 환자인 아내가 있었다.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처절한 외로움과 절망의 시간이 있었다. 심한 조울증 환자였던 아내와 살다가 혼자가 된 스탠리 하우어워스. 그는 정신병을 앓는 아내를 보살피면서 동시에 아들을 아내로부터 보호해야 했다. 몇 십 년을 내내 미칠 듯한 고독함을 감내하며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진해야 했다. 기독교인은 무엇인지, 신앙인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말에 그는 대답했다. “모른다. 묻지 마라!” “기독교인의 삶은 답 없이 사는 것을 배우는 것” 나에게도 9년 째 침대를 등에 짊어지고 병원에서 사는 아내가 있다. 동시에 나와 아이들의 인생에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누리는 인생의 일상을 상당부분 푹 덜어내 버렸다. 아이러니 하게도 많이 힘든 부분은 신앙의 바깥에서 흔히 말하는 불행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에는 여러 불행들이 이유 없이 사람들을 덮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앙의 안쪽, 내가 믿는 기독교 안의 시선이고 편견이고 좌절이었다. 신앙인이라면 모든 고난을 감사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 배운 신앙인이라면 모든 고난의 이유와 목적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 좋은 믿음을 가졌다면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 제대로 기도한다면 불평이나 원망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이런 기독교 안의 시선이, 강요가, 외면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나무토막같이 머리도 가누지 못하는 사지마비 몸뚱이에서 그나마 꿈틀거리기 시작한 벌레 정도를 거쳐 간신히 서너 살 아이 수준이 된 아내가 나는 마냥 고맙기만 한데도 그 높은 기준들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하나님은 잘 풀린 사람들과 안 풀리는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살라했다. 서로 사랑하라고. 이웃처럼 내 몸처럼. 그런데 종종 느끼는 것은 ‘잘 돤 사람만 내 편!’ 이라거나 ‘망한 사람들은 제대로 안 믿거나 정성이 모자란 사람들!’로 몰아세우는 듯. 참 야속하고 때론 마치 무당종교 같이 느껴진다. 언제 그랬냐고? 그런 적 없다고? 많은 설교가 그렇고 많은 자랑스레 하는 간증, 고백들이 그렇다. 전도할 때 사용하는 논리들이 그렇고 위로하는 사람들 말이 그렇다. 그 기준들에 대어보면 내 신앙은 완전 땅바닥이다. 자주 감사하지 못하고, 자주를 넘어 도통 이유도 목적도 모르겠고, 도무지 고난을 이기는 건 고사하고 견디지도 못할 것 같은 찌질한 믿음은 나를 좌절시키고도 남으니. 더구나 이제는 제대로 원상복구의 회복을 비는 기도도 하지 않는다. 하기는 바울도 승부를 건 병회복의 기도는 딱 3번만 하고 안했다던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아서일까? 삐져서일까? 불평과 원망은 뭐 수시로 하니 거의 바닥난 신앙인이 되었다. 믿으면 능치 못함이 없고, 빌면 못 받는 복이 없는 기독교 시선의 기준으로는. 이런 나에게 스탠리 하우어워스 교수의 동병상린 고백은 하나님 목소리처럼 들렸다. 같은 아픔을 같은 몸서리와 절망감, 피로를 안고도 살아가면서 하는 그의 고백. “모른다. 묻지 마라!” “기독교인의 삶은 답 없이 사는 것을 배우는 것” 죽는 날까지 비용과 정성과 시간을 먹어치우기만 할 것이 분명한 희귀난치병 중증환자인 아내를 9년 동안 간병했고 앞으로도 9년을 더할지, 9일만 할지 예정이 없이 사는 나도 경험할수록 같은 대답이 나오더라. “나도 모르겠다.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을지... 다만, 오늘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 나는 나의 삶을 내 힘껏 견디며 살아 낼 뿐!“ (2008.5.9 - 2017.1.13 맑은고을 병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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