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간병일기 3164일 - 점점 작아지다가 사라지기를

희망으로 2017. 1. 6. 11:35






<점점 작아지다가 사라지기를>

‘딩동!’

딸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빠, 제 방에 토플 책 택배로 좀 보내주세요.’

이른 아침 우체국이 영업 시작하는 9시에 두 번째 손님으로 들어가서 책을 포장해서 보내고 왔다. 병실을 오래 비울 수 없어 종종걸음으로 오갔지만 겨울 아침의 차가운 공기는 상쾌해서 참 기분이 좋다.

또 하나 기분이 좋은 것은 정말 쓸모없는 사람처럼 날마다 살아가는 자조감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 무언가 자녀를 위해 내가 해줄 것이 있고 아직 유익한 부모라는 점이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가슴도 펴고 어깨 힘도 들어가는 참 사소한 행복.

어느 분이 잠시 몸이 아파져서 병원 신세를 지면서 엄마노릇 아내 노릇 못하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 글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속으로 댓글을 달고 있었다.

‘잠시 그러는 것을 가지고 그래요? 제 아내는 9년째 병실을 못 벗어나면서 침대만 지고 살아 엄마노릇 아내노릇 꽝인데요...’

그러나 마음속으로만 달고 바깥으로 내놓을 수는 없었다. 내가 그러면 또 우리보다 더 험한 처지의 누군가가 내 아래에 더 무시한 댓글을 달아 내 입을 막을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에. 그리고 누구나 자기의 짐이 가장 무거운 법이라는 걸 나도 많이 느껴보았기에.

이런 특별한 상황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누구나 나이 들어가면서 비슷한 처지에 빠진다. 현실적으로 사회가 물러서라고 하는 제도나 인식도 그렇지만, 스스로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줄어든다. 힘과 재력, 용기도 줄어들면서 우리는 나서는 건수보다 뒤로 물러나고 포기하는 대상이 더 많아지는 것은 계절이 바뀌는 자연처럼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참 고맙다. 크고 오래 걸리는 일들에서 물러나면서 우리는 동시에 아주 작은 일들에 기뻐하고 만족해지는 변화도 동시에 얻게 된다. 거의 젊을 때와 같은 효과를 일으키는 이 현상.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이 변화가 아니면 우리는 좌절감과 비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많이 우울해질 것이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것은 조롱하는 의미도 분명 있지만 진실로 다행인 점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작아지다가 사라지는 존재를 어찌 수용하며 그 마지막까지 감사를 품을 수 있을까? 오히려 그 과정을 거쳐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소멸되는 것을 고마워하고 싶을 경우도 있다. 자신감과 넘치는 힘 때문에 만든 숱한 죄악과 상처들, 영향력이 클수록 잘못되었을 경우 결과도 파장이 크기에.

젊은이들에게 삶을 소심하고 부정적으로 살라는 권고가 결코 아니다. 계절에는 갓 태어난 아기 같은 봄도 있고 사나운 용기 열정이 넘치는 여름도 있어야 한다. 쓸쓸하지만 결실을 다지는 가을도 있고 마침내는 모든 것을 떨구고 죽음과 같은 이별의 계절 겨울도 있어야 다시 태어나는 법칙이 자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기도한다. 작아지고 아주 소심해지더라도 기쁨과 감사가 반대로 커져서 견디게 해달라고. 점 하나같이 되다가 먼지처럼 사라지는 소멸의 그날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 날이야말로 애초에 떠나온 고향으로 다시 귀향하는 기쁨의 날임을 흔들리지 않고 믿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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