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간병일기 2177일 - '침묵, 그 괴로운 신뢰'

희망으로 2017. 1. 19. 16:01




< 간병일기 3177일 - '침묵, 그 괴로운 신뢰의 대상'>

[예수는 형제 같던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머물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물렀다. - 요한복음 11장 6절]

예수님과 무척이나 가까웠던 나사로 가족들
마리아와 마르다의 입장에서는 나사로의 위급한 소식을 듣고도
바로 오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반응은...
'침묵' 과 같은 것이었다.

침묵은 그저 소리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침묵은 행동하지 않거나 가만 있는 것을 말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남을 조금 이해시킬 때는 말로도 가능하지만
모든 것을 이해시키켜야 할 때는 어쩌면 침묵이 더 나은지도 모른다.
작은 변명은 말로 할 수 있지만 큰 진실은 오히려 침묵이 유용하기에.

- 그래서일까? 예수님도, 하나님도 종종 큰 일에는 침묵하셨다.

잠시 사랑을 구할 때는 달콤한 말이 감동적이지만
오랫동안 사랑을 유지하려면 침묵의 진심이 훨씬 힘이 있다.
살면서 가끔 확인하게 된다.
죽지 않을 만큼 슬픈 일에는 소리 내어 우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죽을 만큼 슬플 때는 침묵이 더 고비를 넘길 평안이 오더라는.

- 누구보다 그걸 잘 아셔서 종종 사용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일까?

나사로의 죽음 직전 예수를 기다리며 애태우는 마리아와 마르다
그들에게 말없이 이틀을 더 머무르시는 예수님은 얼마나 야속했을까?
하지만 나중에 예수님의 깊은 사랑에서 나오는 침묵의 진심을 보게 된다.
눈물이 안 보인다고 울지 않는 거 아니다.
말이 없다고 사랑하지 않는 거 아니다.

- 늘 하나님의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

나는 오늘도 눈물도 없고, 아무 소리도 없는 울음을 운다.
병으로 생사를 힘겨워하는 아내 곁을 지킨다. 침묵으로...

누군가 그랬다.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할 경우에만
주님이 침묵하실 때에도 굳세게 견딜 수 있다고.
나는 정말 하나님이 침묵할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 걸까?
그 하나님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신뢰하며 사는 중일까?

말하지 않으면서도 하루씩 이 길을 끝까지 갈 각오는 하는지,
말로 하고 싶은 작은 변명들 대신  긴 침묵으로 기도를 올리는지,
말로는 '사랑해!' 하며 돌아설 때마다 한숨쉬지는 않는지...

생사가 오가는 순간의 이틀을 잠잠하셔도 믿었던 마리아 마르다
안달을 하고 원망스럽다가도 막상 예수님을 만나면 나도 이 말이 나올까?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안죽었을겁니다!'라는 신뢰와 고백.

침묵,
침묵의 바닥과 뒤와 속 가득한 하나님의 진심,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긴 단 하나의 벽
불신, 그 벽을 평생 허덕이며 넘으려 애쓰는
그 괴로운 신뢰.


(2008.5.9 - 2017.1.19 맑은고을 병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