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간병일기 3115일 - '무엇이 정답일까?'

희망으로 2016. 11. 18. 00:26







< 간병일기 3115일 - ‘무엇이 정답일까?’>

“저...소변 빼는 카테터가 다 떨어졌는데요.”
“아, 그래요. 여기!”

그렇게 간호사실에서 타온 일회용 라텍스 호스 100개들이 박스를 들고 비상구 계단으로 나갔다. 하나씩 뜯어서 분리하면 종이 먼지가 날려 병실에서 못하고 비상구 계단에서 해서 들어온다.

“내가 없으면 누가 이걸 해주지?..."

오랫동안 직접 비싸게 구입했는데 다행히 얼마 전부터 의료보험 적용이 되어 병원에서 타서 사용하게 되었다. 물론 집으로 돌아가면 또 개인이 구입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갈수록 다시 신청하는 간격이 빨라진다. 하루에 7-8개 사용하던 것이 지금은 하루에 12 - 15개 사이를 쓰다 보니. 그만큼 방광이 줄어들고 소변을 자주 보게 되었다는 상황. 나는 점점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발이 묶이고...

아내는 이 장애가 정말 힘들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첫 번째 이유가 되었다. 면역억제 약과 항암 주사를 계속 맞다보니 소변주머니라고 부르는 폴리백도 장기간 착용을 못한다. 방광염증이 계속 생겨서. 멀리 외래병원 검사하러갈 때나 부득한 경우만 잠시 달았다가 바로 떼어낸다.

“만약...내가 많이 아프거나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누가 이 돌봄을 해줄 수 있을까?”

답이 안 보인다. 아이들? 어렵다. 아들은 물론이고 딸아이도. 완전히 한 사람의 인생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것이라서. 아내도 반대한다. 불행을 대물림해야 한다는 빤한 사실 앞에서. 그렇다고 유료 간병인은 꿈도 못 꾼다. 한 달 250만원 안팎, 일 년 3000만원 비용을 누가 기약도 없이 대줄 수 있다고. 그럼... 남는 건 요양원이나 무료 시설이다.

“그냥... 데리고 떠날까? 이 세상을”

인지도가 떨어지거나 치매라면 몰라도 정신은 맑은 아내는 소홀한 돌봄도 못 견딜 것이고, 또 굳이 극한 외로움을 안고 몇 년을 더 산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다.

남들이 뭐라고 할지, 더구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무슨 대답이 나올지 안다. ‘생명은 귀한 것이니 끝까지 견디고 희망을 잃지 말고...’ 뭐 그런 답. 나라도 입장이 바뀌면 그렇게 말이 나올 것 같으니까.

그런데... 대책은 없고 겪을 상황은 손바닥 보듯 빤한데 직접 당사자가 느끼는 현실의 공포심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다.  

‘딩동!’

문자가 한 통 왔다. MBC 휴먼 다큐 ‘사랑’ 작가시란다. 이전에 방송 나갔던 기독교방송 ‘새롭게하소서’를 보았고 기사도 보았다면서. 아마도 교회 다니시는 분인가 보다. 첫 인사가 ‘김재식집사님’ 이다.

그 프로그램 잘 안다. 벌써 10년이 넘은 대표적 방송휴먼 다큐고, 아주 큰 방송상도 받았고 방송된 내용을 담은 책도 여러 권 나왔다. 일 년을 기획하고 제작해서 가족의 달 5월에 딱 5편만 방송에 내보낸다. 유명한 ‘붕어빵 엄마’ ‘해나의 기적’ 등 참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감동을 주었다.

[요즘 제 고민은 아내보다 오래 살지 못할 상황이 오면 아내를 어떻게 해야 될지 결정을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니까, 또 귀한 목숨을 함부로 동행하면 안 되는 것으로 말리겠지만 당사자의 현실로는 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우울한 처지는 별 희망도 기대도 없는 무기력한 미래를 상상하게 할 뿐입니다. 주신 연락의 의미는 고맙고 짐작하지만 혹시라도 출연여부를 말씀하실 거라면 적절한 대상이 아닌 거 같습니다. 훨씬 깊고 큰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중인 분들이 많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하여 이 답장으로 통화를 대신해도 될 것 같습니다. 관심 주신 마음을 감사로 받습니다. 휴먼다큐 사랑의 애청자로 응원과 감사도 드립니다.]

나는 이렇게 좀 긴 답글로 통화를 대신하면서 정중하게 혹시 방송 출연 관해서라면 사양을 한다고 했다. 그래도 자세하게 말해줘 고맙다고, 기도하겠다고 다시 답장을 보내오셨다. 참 고마운 분.

찬송가 가사 하나가 머릿속을 뱅뱅 돈다.

울어도 못하네. 겁을 없게 못하고...
힘써도 못하네. 다시 나게 못하니...
참아도 못하네. 어찌 아니 죽을까...
.
.
.
.
이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막막함이 숨이 차게 한다.
몸으로 때워도, 있는 거 없는 거 다 털어가며 참고 또 참고 마음을 달래 봐도.
아픈 증상들은 늘어만 가고 아내의 기력은 시간과 비례해서 점점 줄어드는 게 느껴지니..

자꾸만 내려가기만하는 상황은 마치 쌀통의 바닥이 보일 때 오는 불안감 비슷하게 몰려온다. 생명의 잔고도 그런 방식일까? 언젠가 본 ‘인 타임’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생명을 시간으로 바꾸어 잔고처럼 소모해가며 하루 노동으로 몇 시간의 숫자가 채워지는 영화. 부자들은 엄청난 시간 잔고를 가지고 그걸로 물건도 사고 집도 사고, 가난한 사람은 있는 시간이 제로가 되면 바로 숨이 멈추면서 죽어 갔다. 째각 째깍 타이머의 숫자가 ‘0’이 되는 순간에. 그 심정이 공감되어 숨이 답답해진다.

찬송가의 끝 절.

'믿으면 되겠네. 오직 주께 나가면...‘

- 내가 안 믿었나?
주께로 안 나가고 다른 곳으로 갔던가?

누가 좀 가르쳐 주고 보여주면 좋겠다.
어떻게 믿어야하는지
어떻게 해야 주께로 나가는 건지...
자꾸만 발목을 잡고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이 지치는 순간들이 너무 힘들어 못 견디겠는데....

답이 없어 무거워지는 마음을 털어내고 싶어 나간 길.
이어폰을 통해 마냥 반복하며 들려오는 가사들이 가슴을 친다.
어서 오라는 듯...



“그 길고 긴 방황의 늪을 지나 / 다시 주님 품에 안겼네
상한 나의 이 몸 / 찢기어진 나의 마음 모두 가진 채로
나의 욕심 때문에 나의 헛된 꿈 때문에 / 그렇게 방황했던 나의 인생을
이제 주께 맡기려네

그 멀고 먼 근심의 계곡을 지나 / 이제 평안의 집에 왔네
그 아무도 내게 참된 평안 줄 수 없어 / 얼마나 괴로웠었는지
나의 욕심 때문에 나의 헛된 꿈 때문에 / 그렇게 방황했던 나의 인생을
이제 주께 맡기려네

이제 아버지의 집으로 / 이제 영원한 안식처로
돌아와 눈물 흘리며 엎디니 / 오 주여 나를 받으소서“


(2008.5.9. - 2016.11.18. 맑은고을 병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