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일기 3100일 - 누가 내 부모고 내 형제?>
"아야....나 죽어! 아이구!"
같은 병실 앞자리에 있는 할머니가 갑자기 복통으로 신음을 질렀습니다.
체한 증상 비슷한데 조금만 먹어도 토하고 늘어졌습니다.
증상을 살펴본 원장의사님이 큰 병원으로 정밀 검사를 의뢰했습니다.
검사를 마치고 돌아왔는데...췌장에 염증이 생겼다고 합니다.
상태가 심해 어쩌면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합니다.
(어쩌면 다른 병원으로 가게 되겠구나! 잘됐다!)
'........'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사람이 아픈데, 어쩌면 더 나빠져서 수술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데 잘됐다니?? ㅠㅠ)
내가 왜 이렇게 고약한 사람이 되었을까? 자괴감이 큰 파도처럼 몰려왔습니다.
돌아보니 이해는 갑니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이 불쑥 난 건지, 그 배경에 대해서는.
그 할머니가 이 방에 온 첫 날부터 침대에서 대소변을 보는데 냄새가 너무 심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비슷한 사람들도 겪어보았지만 가장 심했고
같은 병실의 다른 이들도 참기 힘든 고역이라고 말할 정도로 좀 심각했습니다.
게다가 치매가 있어 수시로 울고 욕하고, 밥 먹고도 밥 안 준다고 간호사실에 일러
애매한 간병인이 야단을 맞는 모습도 여러 번 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병실 온 식구들에게 미운 털이 은근히 쌓인 거지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가슴이 철렁한 것은 또 다른 모습이 떠올라서입니다.
어머니가 마지막 5년을 시립병원에서 지내다 돌아가신 것이 기억났습니다.
파킨슨으로 거동 못하고 위암에 치매증상까지 겹쳐 그곳 간호사들의 손을 많이 빌렸지요.
나도 아픈 아내를 돌보느라 가보지도 못하고 임종도 못 지킨 불효아들이 되었던 상황...
( ...만약 저 할머니가 내 어머니였다면?)
그래도 눈앞에서 안보이기를 빌고 잘됐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불편한 공간에서 오래 시달리면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그 대상이 남이 아니고 가족이라면요?
아마 그러지 못할 겁니다.
남이라도 안 그럴 수 있는 분들도 물론 있습니다.
그냥 타고나기를 천사처럼 선하거나,
갈고 닦아서 성인군자처럼 너그럽고 품어 안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지요. 흉내도 쉽지 않지요.
하지만 한 가지 길은 있다는 걸 이번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방법이란...
남들과 살면서 소화하기 어려운 순간을 만날 때
만약 이 순간 저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하고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마음의 풍랑이 많이 다르게 변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보통은 어지간한 미운 일도 '내 가족이라면' 다르게 받아들이지요.
세상에는 내 가족의 성공을 위해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가족이기주의가 흔합니다.
'우리가 남이가!' 라는 지연 학연도 그런 일종이고,
남들에게는 죄에 가까운 불공평한 빽이라는 것도 그런 거지요.
그래도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오랜 세월을 아픈 아내를 돌보다보면 문득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론 내 가족도 귀찮아질 때가 있습니다.
내 가족이라도 너무 힘들고 지치면 미움이 몰려옵니다.
그때는 '내 몸이라면?' 하고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동물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그런 점이 있습니다.
내 몸만 챙기고, 나만 아니면 무슨 일도 괜찮은 이기적 태도.
나쁘다 좋다 말하기 이전에 사람들이 피하지 못하는 한계이기도 합니다.
내가 너무 힘들고 많이 아플 때도 다른 사람들은 잘 지냅니다.
그러면 참 깊은 고독과 외로움에 빠집니다.
아무도 소용이 없고 나를 몰라준다는 서러움에 견디기 힘듭니다.
그런데...나만 그럴까요? 똑같은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도 외롭고 홀로 버티지 않을까요?
그래서 내 몸처럼 남들도 그럴지 모른다 생각하면 조금은 견딜만 해집니다.
이해도 되고 덜 미워집니다.
예수는 '보소서 여기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습니다!' 하는 제자들에게
'누가 내 형제고 자매냐!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이들이 곧 내 가족이다!' 했지요?
혈연보다 가깝고 더 소중한 새로운 하늘나라의 가족 개념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또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큰 두 번째 계명 이니라!'
라고 못 박았습니다.
이 계명과 말씀을 공연히 주었을까요?
저는 문득 어머니나 형제인 가족이 중점이 아니고,
이웃이 중점이 아닐지 모른다는 느낌이 듭니다.
(혹시... 그렇게 듣고 수용해서 내게 닥친 고난들에서 죄에 빠지거나,
좌절로 죽지 말고 살아나라는 깊은 애정의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뭐 어쩌겠어요.
한 없이 연약하고 이기적인 우리 인간의 못난 성품도
그 속성을 역으로 사용하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2008.5.9~2016.11.3 맑은고을 병실에서)
'아내 투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병일기 3115일 - '무엇이 정답일까?' (0) | 2016.11.18 |
---|---|
간병일기 3113일 - 완벽한 아줌마 증후군 (0) | 2016.11.16 |
간병일기 3078일 - 당당히 살 자격의 기준은? (0) | 2016.10.12 |
간병일기 3067일 - 그 고마운 이유를 모르고... (0) | 2016.10.01 |
간병일기 3057일 - 소원, 이루어지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0) | 2016.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