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병일기 3078일 - 당당히 살 자격의 기준은?> “나 소변...” 병원에서 나온 점심을 먹고 잠시 앉았는데, 쉴 틈 없이 아내는 또 나를 필요로 합니다. 하루 종일 2-3시간마다 커튼을 치고 소변을 뺍니다. 그러는 중에 새벽도 지나고 아침도 오고, 3번의 밥시간도 옵니다. 그 사이 사이로 몇 번의 치료실도 다녀오고 배변 씨름하러 화장실도 갑니다. 그렇게 눈 드고 다시 잠자리에 들고 하루는 늘 그럽니다. 하루 24시간, 한 달 30일, 일 년 365일. 무슨 변고로 날마다 아침 7시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어느 영화처럼 반복됩니다. 그렇게 9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살아 버티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는 걸까? 성공하고 복 받아야 덕이 된다는 교회에는? 사회에는? 나라에는?‘ 그러나 마땅한 정답도 명분도 찾아내지 못한 채로 살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저 꿈틀거리는 무익한 버러지나 조금씩 움직이는 달팽이를 닮았다 자조하면서. 그 힘든 순간들에도 살아가는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털어서 지불하며 버텼습니다. 곧 바닥이 나고서는 어쩔 수 없이 친인척이나 국가, 혹은 착해서 외면 못하는 이들이 그 비용을 릴레이처럼 부담하며 살아왔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런 우울한 심정에 잠기는 제게 그럽니다. ‘지나친 비관’이거나 ‘모자란 믿음’에서 나오는 약한 소리라고. 맞습니다. 언제나 강한 의욕과 희망만으로 넘치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끝없이 반복으로 몰려오는 파도 앞에 오래 서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경험의 울타리에 갇히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저 바닷물이 이 육지를 다 삼켜버릴지도 몰라, 이렇게 끝없이 계속 몰려오면...‘ 그러다 문득 아내가 아프기 전 생활들이 비교가 되었습니다. ‘그럼, 그때는 내가 당당할 만큼 생명 값을 하면서 힘차게 살았던가?’ ...솔직한 대답은 ‘별로’였습니다. 그래서 물어봅니다. “당신은 지금 전혀 부족함이 없어서 무엇이든지 가능하신가요? 단지 생존만하는 우리와 달리 당신은 유익만 끼치면서 사는 중인가요?“ 진심으로 당신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신앙인이라면 하나님이 자랑할 만한 자녀다운 삶으로, 국민이라면 속한 국가에 한몫을 하면서 꼭 필요한 인재로, 부모 형제나 친구들에게라면 그 일원으로 도리와 제 몫을 하는 사람으로! 부디 계속 그렇게 살아가시기를 빕니다. 여전히 많은 가능성과 좋은 여건들 속에 살아가시는 분들은 그 기회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보면서 헛되이 살지 않기를 빕니다. 제가 경험한 후회와 반성을 비슷하게 겪지 않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요. 그러나... 혹시 제가 아내가 아프기 전의 삶을 돌아보며 평가한 것처럼 ‘별로’인 분도 있을 겁니다. 그다지 다르지 않게 자기의 욕심이나 유익을 가장 첫 번 째로 추구하며 살고 있거나, 조금 더 양보하더라도 기껏 내 자녀, 내 가정이 전부인 ‘가족이기주의자’가 되었거나. 전혀 비난하거나 좌절하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몰려오는 하루하루의 생활, 눈앞의 생존에 급급하다보면 그렇게 되어버리더라는. 흔하고, 의지나 능력 어느 면에서든지 연약한 보통 사람이 많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예전에 그렇게 살아버렸더라는 아픈 반성의 말을 덧붙이면서요. 그러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좀 더 유익한 사람으로 살기를 애쓰십시오. 그래서 지금 무익한 생존처럼 느껴져 곤혹하게 유지하는 불행한 날이 닥칠 때, 마치 질병으로 인한 불행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는 삶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게요. 안 아플 때도 별 다르게 살지 못한 사람이 하는 변명이 될 뿐입니다. 지금, 몹시 심하게 제한을 받게 된 분들에게도 말하고 싶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들고 그다지 어깨 힘주며 보여주지 못하는 삶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살아야한다는 거지요. 어쩌면 비참해진 감정만큼 삶의 가치도 그렇게 달라지지는 않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평가는 그 이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말 귀하게도 그 깨달음을 먼저 알고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하나를 진심으로 깊이 공감하며 되새깁니다. [내게 유익하던 그 모든 것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다 버렸습니다. 더구나 내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여기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훨씬 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내가 그 모든 것을 쓰레기처럼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과 완전히 하나가 되기 위한 것입니다. - ‘현대인의 성경’ 빌립보서 3장 7절 ~ 9절] 분토나 쓰레기처럼 다 버리고 오직 어떤 상태든지 상관없이 소중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과 그 분을 아는 지식은 내 형편이 어떠하든지, 부유하든지 가난하든지, 혹은 아프든지 건강하든지 그다지 큰 관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눈과 자신의 감정으로는 하늘과 땅, 유익과 무익으로 갈릴지라도, 때론 버러지 같거나 귀한 성인 같을지라도 그리스도와 하나 되지 못하는 삶은 다 분토요 쓰레기처럼 버릴 수 있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니... 당당하게 살 자격의 기준은 그리스도를 닮아 하나 되는 여부입니다. 힘내시기를! (2008.5.9. ~ 2016. 10.12 맑은고을 병실에서) |
'아내 투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병일기 3113일 - 완벽한 아줌마 증후군 (0) | 2016.11.16 |
---|---|
간병일기 3100일 - 누가 내 부모고 형제? (0) | 2016.10.15 |
간병일기 3067일 - 그 고마운 이유를 모르고... (0) | 2016.10.01 |
간병일기 3057일 - 소원, 이루어지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0) | 2016.09.21 |
간병일기 3054일 - 좋은 소식이 된 임종 (0) | 2016.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