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일기 3042일 - 단비는 목마른 사람에게만>
이른 아침,
새벽부터 빨래방으로 향했다.
"여보... 소변줄이 빠진 거 같아ㅠ"
새벽 5시, 아내의 부르는 소리에 일어났다.
‘어제 밤에도 늦게 간신히 잠들었는데...’
방광염증으로 어쩔 수 없이 시술한 소변주머니의 중간 연결 부분이 빠져버렸다.
낭패... 아마도 소변검사를 위해 그곳을 빼서 컵에 받고 꽉 채워지지 않았나보다.
침대시트랑 위아래 속옷 환자복을 다 벗기고 수건에 물을 적셔서 닦을 수밖에 없었다.
보조 침대에 아내를 옮겨 눕히고 옷을 갈아입히고 침대도 갈았다.
다들 아직 잠자는 시간, 작은 불빛아래 자는 사람들 깰까봐 부시럭 소리도 줄이며.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6.25 난리는 난리도 아닌 쇼를 했다.
진땀을 빼며 끝내고 대충 담아놓고 누웠는데... 소변 냄새가 만만치 않게 퍼진다.
‘에구... 안되겠다. 가지고 나가야겠다.’
환자복 속옷 건조시켜 다시 입어야 해서 (재횔요양병원 상황이 그래서)
병원 근처 빨래방으로 늘어지는 몸을 일으켜 나갔다. 아직 6시도 안된 새벽.
그래도 새벽길은 시원하니 참 좋다! 더운 여름을 지나서인지 싸늘한 가을 공기가 느껴진다.
아직 도로에 사람들도 다니지 않고 고요한 정적만이 거리를 채우고 있다.
빨래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가장 크게 들려 신경이 쓰일 정도로.
‘가끔은 시간대만 바뀌어도 감옥 문이 열리는구나...‘
잠도 깨면서 정신이 들고, 하나 둘 여기 저기 빌라에서 학생들이 튀어 나온다.
등교를 하기 위해, 또 직장을 나가는 사람들, 아침 일찍 움직이는 특별한 분들도 보인다.
시간이 조금 다르고, 장소가 다르니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신기하게.
‘목 마르다...’
그제서야 새벽부터 설친 후유증인지 갈증이 심하게 느껴진다.
빨래방 안에 정수기에서 종이컵에 물을 연거푸 2잔을 받아서 마셨다.
‘꿀꺽 꿀걱~~’
마실 물 조금이 이렇게 맛있고 살 것 같이 느껴지는 거 참 오랜만이다.
세상에 못 견딜 것이 타는 사막에서 목마름이고 한 모금이 생명을 좌우한다더니.
무엇을 가진들,
어떤 성공을 한들 이 고통스러워지는 갈증의 순간에서 건져지는 안도감보다 나을까?
돈 보따리와 물 한 병을 놓고 긴박한 순간에서 선택을 하라면 누군들 다를까?
정말 급해지고 막다른 상황이라면...
요즘 계속되는 아내의 만성적 증상과 후유증들에 많이 지쳐간다.
방광염으로 소변이 새고, 그 원인으로 나을 만 하던 엉덩이 창상은 또 덧난다.
배변이 안되어 비데기구를 사용한 자극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그 부작용도 더 보태진다.
살이 터지고 테이프 접착력에도 피가 난다.
서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합병증의 사례들, 악순환으로 향한다.
여자로써의 품위도 망가지고 체력도 나빠지니 우울증이 몰려오나 보다.
아내의 화를 섞은 울음을 보는 나도 가진 유머와 긍정적 각오들이 바닥이 난다.
하면 안 되는 상상들이 고장난 브레이크처럼 멈추지 않고 몰려온다.
이것 저것...
어느 분이 스마트폰으로 보내는 작은 조각 케익 하나를 먹을 수 있는 쿠폰을 보내왔다.
이런 저런 고생도 딱하고 잠 못 자고 새벽에 빨래방으로 오가는 나보고 먹고 기운 내라고.
눈물이 핑 돌았다. 문자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내가 그 조각 케익 하나 사먹을 돈이야 없을까만.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메마른 사막을 걷다가 꼬꾸라지는데 물 한 모금 주고 손 내미는 사람이...,
다시 일어나자 좀 더 견디자.‘
그것은 비록 작은 것이지만 결과는 그렇게 작지 않았다.
제 때에, 마음이 담긴 관심은 그렇게 큰 기운으로 살아나는 것에 나도 놀랐다.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제 때에, 곤란한 지경에 내리던 단비가.
농부들이 단비를 눈물 흘리며 맞이하는 경우는 대개가 가뭄으로 지독한 고생하고 근심하던 뒤 끝에 내리기 때문이었다.
같은 물질, 같은 건강, 같은 마음씀씀이도 사람 따라 큰 차이로 받게 되는 것은 그래서이다.
아무리 좋은 성경구절도, 눈물 쏟아지는 찬양도 늘 그렇게 같은 크기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절절해지는 고독과 간절함으로 받게 될 때는 평상시 흔하게 지나가던 무지 평범한 말씀 한마디도, 노랫말 한 구절도 폭포처럼 온 몸과 마음을 덮친다.
사막에서 쓰러질 때 오는 물처럼. 은총은 목마른 사슴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생수다.
그 단비를 만나 기운을 차리고 아내에게로 돌아왔다.
“다시 살아보자구! 아자~”
아내 앞에서 방긋! 방긋! 손으로 하트도 그리고 웃었다.
“...뭔 일이야??”
“내가 사는 날까지 이럴 려고,
당신에게 내 마지막 얼굴 표정을 일그러지고 화난 것으로 남기고 싶지는 않아서 그래!
이러면 내가 떠나도 나를 떠올리면 마지막 웃던 기억 때문에 덜 슬플 거 아냐! 흐흐“
단비는 사람을 너그럽게 변화시킨다.
가뭄과 지독한 갈증, 고통의 과정을 지나기는 하지만.
아니, 그 사막을 건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흔한 물 덩어리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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