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간병일기 3033일 - 은총은 마일리지가 아니더라

희망으로 2016. 8. 28. 07:51




<간병일기 3033- 은총은 마일리지가 아니더라>

 

 

1. 그날 밤, 중한 죄 짐을 벗고 싶어 은총을 구했다.

 

어느 해 1230,

그 겨울은 아주 추웠고 그 날은 더 캄캄하고 더 추운 겨울밤이었다.

강원도 깊은 산 속 기도원에서 맞이한 그 해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비통했다.

아내는 질병이 급하게 악화되어 몸이 말을 안 들어 거동도 힘들고,

정신은 심한 환청과 악몽에 시달리며 거의 죽음이 문턱까지 온 듯 두려움에 시달렸다.

바깥은 눈이 쌓여 오가지도 못할 정도인데 가진 돈도 바닥이 났다.

 

욥기 14장에 이런 글이 나온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

 

그날 아내와 나는 영락없는 꽃과 같은 존재였다.

화사하게 피는 꽃의 시기가 아니라 시들고 사라지는 꽃의 시기를 닮은.

아무래도 몇 년은 고사하고 며칠을 못 넘길 것 같은 두려움과 슬픔에 마음이 미어졌다.

 

주님, 죽는 건 괜찮은데 왜 이리 맘이 무겁지요? 지난날 잘못한 것들이...’

 

막막한 순간에도 긴 신앙경력은 습관적으로 찬양 하나를 부르고 있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나는 연락처를 뒤지며 아는 사람들의 전화를 하나씩 돌렸다.

이대로 세상을 떠난다면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을 위주로.

살면서 미워하고 다투고, 서운하다고 등 돌렸던 이들이 후회로 남을 것 같았다.

그 밤에 지난 날 속상하게 했던 것 미안한 것을 꺼내어 사과를 했다.

 

어느 정도 연락 닿는 사람들과 통화 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평안이 몰려왔다.

기억이 채 나지 않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로 부탁했다.

은총을 베풀어 내 죄를 소멸해달라고...

 

그렇게 나에게 온 은총은 30년 넘도록 태평하게 교회생활 할 때는 못 느낀 평안이었다.

그날 밤 정말 꿈같이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두려움과 슬픔과 외로움에 힘들던 상태와 전혀 다르게.

 

 

2.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그럴까? 맞다. 믿고 기도하면 슬픔 많은 세상도 바뀐다.

그것은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죽을 것만 같은 비통함도, 한없이 깊은 암흑수렁으로 추락하는 두려움도.

 

그런데..., 정말 기도만 하면 죽지 않을까?

실패를 만회하는 몇 배의 성공을 이룰까? 질병에서 회복될까?

기도를 하면 그런 결과를 보장하고, 그래서 기도를 하는 것일까?

찬양 가사는 아니었다.

 

먼저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그러고 나면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라고 했다.

 

더 오래 살고 더 많이 더 높아지는 복을 받아서 슬픔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은총을 구해서 중한 죄 짐을 벗어야만 슬픔이 변하여 천국이 된다고 했다.

 

그날 밤 진짜 경험을 했다.

고작 내가 저지른 과오를 사과하고 상처준 것을 용서 구했는데 평화가 왔다.

이제 죽어도 괜찮겠다!’ 하는 심정이 되었다.

죽어도 두렵지 않으니 그게 천국 아닌가?

 

 

3. 많은 부귀영화도, 병 나음도 은총이 아니었던 사람들

 

성경에도 복으로 보이는 것들이 오히려 망가지는 결과를 낳는 사례가 나온다. 받은 복이 중한 죄 짐 벗는 은총이 아니라 과시가 되어 자신과 남을 망치는 것을. 슬픔 많은 이 세상이 천국이 되지 못하고 불행한 최후를 맞은 사람들.

 

하나 - 히스기야왕

 

기도로 해를 뒤로 돌리고 수명을 15년이나 늘리면서 죽을병을 고쳤던 히스기야왕. 하지만 말년에 하나님을 거스르며 타락하여 자식들이 망하고 재앙을 불렀다. 죽을병에 걸린 환자나 가족들이 참 많이 매달리는 사례다. 예외 없이 나도 그랬었다. 벽이 부서지도록 머리를 박고, 목이 쉬고 피가 나도록 바닥을 치고 구르면서.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만 두었다. 바울이 3번 기도 후 그만 둔 이유와 심정으로. 그리고 히스기야 왕도 병이 낫고 15년을 더 살게 된 것이 은총이 아니란 걸 알았다. ‘제가 주 앞에서 바로 살려고 애쓴 것을 주님이 아시잖아요?’ 했던 날의 삶. 그것이 진짜 은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솔로몬왕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왕이 되어 큰 복을 받았던 솔로몬왕.

하지만 여색을 좋아하는 바람에 무려 700명의 후궁도 모자라 따로 수청 드는 300명의 여자에 파묻혀 우상 신들이 범람케 하였다. 결국 이스라엘을 두 개의 나라로 쪼개지게 하고 벌 받는 대표적 왕이 되었다. 그의 권력과 부귀와 영화는 지혜를 구할 때의 겸손을 벗어난 재앙의 뿌리가 되었다. 부귀 권력 재능 자체가 곧 은총의 씨앗은 아니었다.

 

- 웃시야왕

 

52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들에게 존경받던 웃시야왕. 권력과 교만으로 변질되어 제사장의 자리까지 직접 행사하다가 벌을 받았다. 문둥병에 걸려 비참하고 쓸쓸한 말년과 죽음을 맞이했다. 그를 교만하게 하여 제사장의 자리까지 행사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가졌던 권력과 능력이 아니었을까?

 

- 사울왕

 

사무엘에 의해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되었던 사울왕

암몬 외적의 침입에서 나라를 구하기도 했으나 인간적인 불안으로 자신이 제사도 직접 드리는 불신을 보이고 나중에 재물에 욕심을 내어 하나님을 거역 했다. 블레셋을 물리친 다윗을 질투하여 스스로 한 약속도 어기고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죽이려 들었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제사장에게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도 은총이 못되었다.

 

다섯 - 발람

 

발람은 처음에는 모압왕 발락의 수차례 요구에도 이스라엘을 해롭게 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끈질기게 계속된 요구와 회유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 이스라엘을 타락시킬 방법을 알려주어 수만 명이 죽게 만들었다. 그 대가로 발람도 칼에 맞아 비명횡사를 했다. 끝까지 지키지 못한 믿음은 비참했다. 명예와 재물을 탐하는 욕심에 무너진 숱한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고 만 발람.

 

 

4. 은총이 오는 유일한 통로, 예수.

 

만일 사람들이 내일 죽는 것이 확정된다면 우리는 오늘 무엇을 할까? 어떤 이는 먹고 싶었던 것을 실컷 먹겠다고 하고, 어떤 이는 가고 싶었던 곳을 여행 하겠다고 했다. 또 교과서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오늘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해의 마지막 날, 죽을 것같이 괴롭고 두렵던 밤에 사과나무는 심지 못하고 사과를 했다. 남에게 상처를 준 일, 숨기고 한 나쁜 죄를 직접 사람들에게 전화로 용서를 구했다. 아내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용서도 했다.

 

그러면서야 알았다. 은총은 오래 살게 될 때 오는 것이 아니고 수명이 줄어들 때 온다는 것을. 잘났다고 높아질 때가 아니고 잘못했다고 낮은 자리로 내려갈 때가 더 큰 은총이 오고, 결국 죄 짐을 벗는 데 쓰이는 은총이란 가난하고 아픈 병자가 되었을 때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 이유는 사람의 본성은 내버려두면 그냥 자기의 잘난 능력 덕분이고, 소유는 생길수록 욕심에 더 욕심을 향해 달려가기 십상이다. 반대의 경우도 만만치 않아서 사람들은 힘든 고통의 순간을 만나면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를 비참하고 피폐된 심정으로 더 몰아세우고, 심지어 원망과 불안은 잘못된 수단도 상관없고 잔인한 악행을 사용하도록 우리를 충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총이다.

이 모든 것은 예수를 만났을 때만 가능하다. 기쁠 때 같이 기뻐해주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해주는 자비, 이 마음을 가진 예수가 우리를 향해 아낌없이 동행해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 자비를 받아보면 오만과 자해의 위험에서 벗어난다. 내 영혼이 그런 은총을 입어 중한 죄 짐을 벗을 때만 슬픔이 변하여 천국이 된다. 그래서 은총이다.

 

 

5. 은총은 누적되지 않더라. 마일리지가 아니더라.

 

그런데...그 해 끝 날에 가졌던 은총의 평안을 나는 또 잃어버렸다. 시간이 지나고 장소도 바뀌어 좀 형편이 나아지면서 어느 사이에 나는 다시 용서를 구할 말과 행동을 이웃에게 쌓고 있었다.

 

은총으로 옷 입고 평안을 얻었어도 끝이 아니더라. 지독하게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은 더 질긴 우리의 죄성이다. 한 번 회개했음에도 그럼에도 또 제자리로 돌아가고 다시 죄를 반복하는 사람의 본성이 참 밉다.

 

은총은 무슨 포인트나 마일리지처럼 누적이 되지 않더라. 아무리 여러 번 받아도 언제나 단 한 번의 교만에도 무너진 신앙 선배들을 보면서, 또 나 자신의 삶을 바라보면서 아프게 인정하게 되더라.

 

한 번이 아니라 거듭 거듭 주님의 얼굴을 보아야 하고, 날마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내 맘속에 꼭꼭 담아야만 은총도 죄 벗음도 유지가 되는 걸까? 그래서 찬양의 끝에 그랬을까? 한 번에 가서 닿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다가가야 한다고.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은총을 베푸소서!

하루하루, 날마다 주께로 가까이 가는 중인 우리네 생명입니다.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어가면서...


(2008.5.9 ~ 2016.8.28 맑은고을 병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