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단지 오늘이 아닐 뿐...

희망으로 2016. 6. 6. 12:10

<단지 오늘이 아닐 뿐>

 

아아악! ...! 이 나쁜 $%^##$~~!”

왜 그래요? 정신 차려요!”

 

...그러고 말았다. 안 그래야지 노력했는데 소용이 없다.

가위에 눌리고 소리를 지르다보면 영락없이 다른 사람들 잠을 깨워버린다.

이건 매너나 심성의 문제도 아니고 조심한다고 안하는 것도 아니다.

몸살이 나거나 고민거리가 좀 길어지는 날이면 더 잦아진다는 사실도 최근에 어렴풋 알았다.

 

'에휴, 뭐가 그리 힘들다고 내가 자꾸 이러는지...'

 

문제는 한 번 잠을 깨면 다시 잠이 들어도 계속 23탄 시리즈로 악몽이 이어진다는 것.

뭐 이런 황당한 일이 있는지, 그게 싫고 무서워서 주기도문도 10, 20번 외우며 다시 잠을 청해보기도 하고, 이어폰을 꽂고 찬송가를 틀어놓은 채 자보기도 하지만... 잘 안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 밤을 보내고 난 다음날 아침은 온 몸이 늘어지고 물에 빠진 솜덩이처럼 무겁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내가 1등은 아니다.

다행인지 안타까운 일인지 애매하지만 같은 병실의 한 간병인 아주머니는 거의 이틀 건너 사흘건너 정기적으로 그러신다. 오죽하면 집사람도 그런다.

 

아마 남들에게는 말 못하는 무지 괴로운 어떤 기억을 가지고 계시나 봐,”

 

종종 옆 사람이 심야에 일어나서 흔들어 잠을 깨워주고 오곤 한다.

다음날 아침이면 아이고, 미안해요.’라고 말하신다.

당사자도 참 괴로울 거라는 거 나는 안다. 나도 경험하는 일이라.

세상살이가 낮에 보이는 사람들의 겉모습, 말의 내용이 전부가 아니더라는 걸 속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가장 세게 하는 경우는 따로 있다.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들이 수술하면서 한 마취가 온전히 깨지 않아서 헤매시는 경우다. 밤새 잠을 못자고 집에 가자, 불이 천정에 날아다닌다. 별 소리를 하시면서 간호사를 부르고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빠르면 1주일 정도 지나 차분해지기도 하고 오래 가는 분은 한 달 이상이나 힘들어 하는 경우도 본다.

 

몸 하나 약해져도 사람이 그렇게 된다.

넋이 나간다고 하나? 심한 충격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당한 이들이 종종 빠지는 상태.

살다가 겪는 숱한 일에도 제 정신을 유지하고 남에게 불편을 안주고 수습하는 분들은 참 용하다.

그 이야기는 가끔씩 정신 흐려지고 헛소리도 하고 가위도 눌려도 그럴 수 있다는 말이다.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고 감수하고 견디며 사는 긴 인생인데...

 

암 투병을 하며 견디는 26살 결혼도 안한 조카아이가 시골 빈 집에 혼자 지내고 싶다고 했다.얼마나 많은 생각과 감정이 몰려와서 쉽지 않으면 그런 바람을 가졌을까. 항암치료로 속이 울렁거려 식사도 못하고, 그 때문에 엄마아빠와 가족들에게 걱정끼치는 것도 마음에 걸렸나보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살다가 지금은 비어있는 조용한 시골을 오니 마음이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아내가 단호하게 말렸다.

 

안돼, 잠시 쉬러 와서 느끼는 조용함과 혼자 살면서 겪는 것은 많이 달라. 그리고 사람은 혼자 있으면 악한 생각에 빠지는 본성이 있어, 말을 할 상대가 없으면 더 나빠져서 심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아내도 예전에 발병초기에 혼자 참고 견디다 환청에 빠지고 심한 우울증에 빠진 경험에서 우러난 만류였다. 나도 심하게 공감한다. 혼자 지내는 고독을 이겨내고 오히려 유익이 되려면 정말 건강한 정신상태와 몸이 뒤따라야 한다. 믿음을 바탕으로 한 영적인 건강은 기본이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스스로 조절이 되지 않는 상태로 미끄러지듯 빠져 익사를 하게 된다. 마귀의 근심 바다, 염려라는 심해로.

 

주위에 건성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숱한 사람들도 심도 깊게 검사하면 불안증과 병적인 우울증 상태로 진단이 나오는 사람이 무지 많다. 다들 그렇게 만만치 않은 삶을 지탱해간다고 보는 것이 정답일거다. 그럼에도 가족에 기대고 일에 매달리고, 때때로 사소하지만 즐거운 일들에 기뻐하며 견딘다. 이웃과 교회를 다니는 믿음생활도 튼튼한 동아줄의 하나다.

 

남들은 모르겠고...

나는 무엇이 그리 힘들고, 왜 그것들은 밤에만 나타나는 가위가 되고 악몽이 되어 잠도 못 자게 나를 괴롭힐까?

 

그 이유를 살피기 전에 정리해야할 것이 한 가지 있다. 정직한 사실? 혹은 냉정한 확인?

그것은 사람이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데 정말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과 없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먹는 것. 사람은 하루 한 끼만 먹고 살아도 죽지 않는다. 씨알 함석헌 선생님은 노년에 평생 그렇게 먹으면서 살다 임종하셨다. 좀 가난하고 열악한 나라의 교도소 같은 곳에서는 하루 분량이 한 끼 정도밖에 안되는데도 수십 년을 산 기록들이 있다.

 

입는 것. 어지간하면 한 두 벌을 손보면서 살면 평생도 산다. 어디까지나 만족 같은 기준이 아니고 최소한의 기능을 기준으로 그렇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바깥으로부터의 위험, 폭력이나 전쟁, 천재지변 뭐 그런 것들이다. 그런 것이 오늘 하루 안에만 일어나지 않으면 오늘 하루 생존에 큰 문제는 없다. 오늘은 그렇다. 내일은 또 내일 하루치 안전과 필수품만 공급이 된다면 해결될 것이고.

 

그런데... 내 속을 냉정하게 살펴보니 종일 나를 분노하고 억울하고 슬프게 하는 것들, 심지어는 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대부분의 일들이 오늘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왜 우리 가정에는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그때 9년 전에 왜 시작이 되었을까? 그 바람에 당한 처참하고 애간장이 끊어지는 고통은 또 얼마나 많았고 나와 당사자인 아내, 그리고 아이들은 또 무슨 죄가 있다고 비바람 노숙하듯 살아야 했던가?"

 

맨 그런 회상에 따라오는 감정들이었다. 대부분 오늘 아침 눈뜨고 일어난 새로운 일도 아니고 원인도 아닌. 그렇게 길고 지루하게 우리를 지치게 했던 지난 일(비록 끝이 나고 제 자리로 회복 된 것은 아니지만, 어제 전 일이니 분명 지난 일이 맞다.)에 끌려다니면서 너무 힘들어 지고 있다. 감정이, 지금 형편이 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연좌제 같은 원망이...

 

그런 감정이 오늘 일어나는 사소한 불편과 어려움조차 산더미처럼 키워놓고야 만다. ‘?, ?’ 이런 증폭을 거치면서. 그러니 그 감정과 기억들이 밤이 되면 가위로 악몽으로 이어진다. 지난 일인데, 그 일들이 직접적으로 오늘 새로운 고충을 또 만든 것은 분명 아닌데도.

 

지난날을 다시 바꾸어 놓을 능력을 가진 사람이 이 땅위에 한 명이라도 있을까?

내일 일은 혹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어제 지난 일은 해를 뒤로 돌린 하나님 빼고는 못할 것이다.

슈퍼맨이 지구를 거꾸로 돌면서 시간을 과거로 돌린 것이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돌린 것은 모두 영화 속의 지어낸 이야기일 뿐 현실에는 그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아직은.

 

그럼에도 참 많은 사람들이 지난 일을 가슴에 품고 우울하고 가위눌리고 힘겨웁게 산다.

미련하다고 해도 못 벗어나고, 안 그래야지 이 악물어도 털어내지 못하면서.

오직하면 딱하게 여기신 하나님이 그러셨을까? 얼마나 인간이 그 지경에 이르지 못하고 되풀이하면서 허우적거렸으면 성경에 활자로 박아놓고 말하고 또 말하고 그러실까...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라고.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그걸 듣고 아는 사람이 그러냐고? 누가 들었다고 안다고 자유로워졌는지 만나고 싶다.

불신하는 게 아니고 비난하는 게 아니고 정말로 필요하고 그렇게 되고 싶어서.

한 날의 괴로움을 그 날 해가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줄이고, 기도로 잠들기 전 털어내고 새 날을 맞을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또 한 가지가 있다. 나를 잠재우지 않고 목을 조르는 가위나 악몽의 원인이.

위의 성구에서도 말했지만 바로 내일 일에 대한 염려.

 

어느 친구가 자기의 평생 신조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지켜야 할 두 가지!

절대로 내일 일을 오늘로 당겨오지 않는다.

가능하면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룬다!‘

 

처음에는 듣고 웃었다. 그러나 종종 힘든 마음, 생각 때문에 지칠 때면 그 말들이 떠올랐다. 그냥 웃기만하고 넘기기는 아까운 의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좋지 않은 근심, 불리한 형편으로 생각에 종일 끌려다니다 지칠 때면 너무도 필요한 기준이다.

 

내일 일, 내일 근심을 오늘로 당겨오지 말아야 한다.’ 는 것과

오늘은 도저히 계산도 방법도 보이지 않는 길을 어찌 갈지 우울한 마음은 내일로 미루라.’

 

세상에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미리 살 수 있는 이가 단 한명이라도 있을까?

기껏 준비야 할 수 있지만 내일 아침 신문은 내일 아침이라야 볼 수 있고,

봄에는 여름을 기다려야 열매를 보고, 가을에는 겨울을 기다려야 눈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좋은 일도 그런데 하물며 내일 근심을 당겨서 하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을까?

얼마나 자신의 귀한 오늘 삶을 박살내고 망치는 미련한 짓일까?

 

그럼에도...우리는 거의 하루도 예외 없이 그러고 산다. 아니, 남들은 안 그럴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렇다.

오늘 내지 않아도 될 병원비를 오늘 근심하고, 오늘 먹을 것이 있어도 내일 먹을 것 떨어질까봐 근심한다.(준비가 아니고 근심을)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건강의 문제, 자녀의 취업 걱정, 결혼은 잘 할까? 헤어지지 않고 잘 살아낼까? 별 헤아릴 수도 없는 수만 가지 종류를 때도 시도 없이 해댄다.

 

그러니 밤이면 그 짓눌린 감정들이 가위로 변하고 악몽으로 변해서 목을 조른다.

어쩌면 잠들기 점부터 내 얼굴색은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거울을 보지 않아서 몰랐을 뿐.

 

... 지난 일과 오지 않은 일만 덜어내도 오늘 하루 얼마나 평안할까? 잠은 또 얼마나 달콤하게 들고...’

 

안타까이 돌아보는 내 모습에 많은 죽어가는 이들이 겹친다. 별반 다르지 않게 근심하고 분노하고 무거워 허덕이며 잠 못 드는 숱한 사람들이.

멀리 갈 필요가 있을까? 당장 이 병실 안에 같이 잠 못 들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있고, 취직 못해 고민하는 아들이 뒤척이고 있고, 공부와 성적으로 어깨가 무거워지는 딸이 있으니.

 

또 들려온다. 하늘 끝에서 오는지 내 심장의 바닥에서 오는지 모르겠지만.

 

제발..., 내일 일은 걱정 좀 마!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한다니까?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잖아, 이 안타까운 아들아....”

 

나도 내가 답답하고 안타깝다.

그런데... 정말 그런 날이 올까?

지나간 어제는 털어내고, 오지 않은 내일은 내일에 맡기고, 단지 오늘 필요한 것만 있으면 감사히 사는 그런 날이.

하나님이 그게 좋다는데, 말대로 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살라는데.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있는 것은 있는 대로, 없는 것은 없는 대로 받아들이고.

만남은 만남으로 기뻐하고, 헤어짐은 다시 만날 것을 흔들리지 않고 믿으며 사는 평안한 날들일테니.

 

그런데, 맞다. 그 날은 온다. 왜냐하면...한 번 말하면 어기지 않는 분 하나님약속이니까.

다만 지금이 아니고, 여기가 아니고 오늘이 아닐 뿐.

반드시 그런 날이 온다. 그런 나라를 볼 것이다. 그런 분을 만날 것이다.

그러니 소망을 가지고 살자.

 

우리는 쉽게 이루어지고 빨리 해치울 수 있는 것은 할일이라고 부른다.

어렵고 오래 걸리지만 더 간절하게 하고 싶은 것은 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기다림과 노력은 할 일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을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오늘을 견디며 사는 것도 할 일 때문이 아니고 꿈같은 소망 때문이기를.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아서 흔들리고 힘들지만 꼭 이루어진다고 믿으며 살고 싶다.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하는 말.

 

단지 그 날이 오늘이 아닐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