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이 뭐예요?>
저녁 식사가 끝나고 병실에서는 날마다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여기 저기 욕과 칭찬을 곁들인 TV연속극 보는 시간.
나는 보지도 않는데 듣기는 해야 한다. 라디오가 되는 TV라니!
그렇게 들리는 연속극 끝 즈음에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물었다.
"그때 찢어버렸던 종이 마지막 줄에 적었던 소원이 뭐였어요?"
그리고 뭐라 뭐라 말했는데 늘 나오는 멜로드라마의 그런 대답이었다.
흘려듣다가 무심코 내 입에서 툭 튀어 나온 말에 아내는 피식 웃었다.
"소원? 내게 물어봐, 생각할 필요도 없이 열 가지도 더 나온다!
요즘 갑자기 먹통 되면서 불루스크린 나오는 노트북 바꿔줘!
여기 저기 당장 필요한 돈 오백만원 쯤 좀 주던지!
아님, 그냥 당장 시원한 물이나 한 컵 줘!"
그랬다고... 아내가 웃었다. 웃는 아내에게 보충 설명을 했다.
"생각해봐, 죽으면 하나도 못 가져가니 큰 거나 작은 거나 똑같지 뭐가 달라?
10억짜리 아파트나 천만 원짜리 초가집이나 놔두고 가는 건 마찬가지지,
몇 억짜리 수입차나 만 원짜리 중고 자전거나 매한가지고,
부귀 명예 성공? 그깟 거는 뭐 이고 지고 갈 수 있대?
기억에조차도 못 담아가고, 강물 한 번 건너면 다 사라지는 이 세상의 부스러기지.
명예? 인기? 박사 자격증? 저기 사거리에 가져다 놓아봐,
하루 종일 둬도 개도 안 물어가!"
그래서 차라리 지금 당장 필요한 물건이나 갈증 해소해줄 물 한 컵이 낫다 그랬다.
내가 너무 염세적 인가? 멋도 없고, 기품도 없이 막판 인생처럼 말한 걸까?
나도 예전에는 안 그랬다.
만약 갑자기 복권이라도 맞으면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건지 달콤한 상상도 해보았고,
알라딘 램프 요정이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이라도 말할 기회를 주면 무엇을 말할까?
끙끙거리며 삼십 가지도 넘는 소원을 바꿔가며 줄 세우는 고민도 했었다.
그게 너무 벼락치기 횡재를 바라는 것 같이 낮 간지러워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대신, 겉으로는 신앙인답게 고상한 포장지에 싸서 기도라는 모양으로 빌어보기도 했다.
필요한 경제적 소유, 남들에게 당당할 사회적 지위, 성공, 건강, 명예 등등.
많이들 그러지 않나? 타고난 재능과 행운, 혹은 물려받은 유산도 하늘이 준 복이라면서도,
속은 결국 넘치게 떵떵거리며 살고 싶고, 남보다 높이 올라가고 싶은 욕구라는 것.
그러다 아내가 심해도 보통 심하지 않은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날들을 보내면서는,
스스로 죽는 것만 아니면 얼른 죽었으면 더 좋겠다고 그게 소원 첫 순위가 되었다.
나도 그런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소원 빌기로 날려버릴 줄은 몰랐다.
그 아까운 기회를.
후로 아내의 투병 십여 년을 곁에서 죽은 사람처럼 버티고 보내면서 알았다.
사람들이 죽고 못 살며 붙잡고 싶어 하는 것들 대부분이 그리 진짜가 아니라는 걸,
심지어는 생명을 주고도 바꿀만한 것이라고 욕심내던 것 중 많은 것들이 신기루라는 걸.
그 화려하고 대단해 보이던 많은 것들을 주어도 정작 사랑하는 사람 생명 하나를 못 건지고,
해가 뜨면 시들고 소멸하는 풀의 꽃이고 꽃의 영광이라는 걸 실감했다.
누구는 나에게 그 경험을 큰 고통을 당하면서 얻은 소득이라고, 자유라고 말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디오게네스도 혹시 그래서 그런 말을 했을까?
세계를 정복하고 의기양양하며 소원을 말하라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주저 없이 질러버린 말.
"거, 가리고 있는 햇빛이나 잘 들어오게 비켜주쇼!"
참 바보같이 굴러 들어온 호박 정도가 아니라 호박 컨테이너를 통째 차 버렸다.
그러나 뭐 한편 공감하는 구석도 있어서 그리 우습거나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없다.
아니, 오히려 지금 당장 가장 평안하고 행복해지는 비결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아 보인다.
오늘 행복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은 사람은 내일이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내일은 다시 지금과 같은 오늘이 되니까 결국 미루는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내일은 만족하겠지? 내일을 위해 오늘은 좀 더 모으고!
내일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오늘은 희생하고 미루고...
아님, 내일도 모레도 영원히 이 부귀영화 명예건강을 누릴 수 있을거야!
그걸 위해서 다른 거 좀 희생해도 되겠지? 그게 현명할거야!‘
그렇게 말하며 오늘을 미루고 오늘 지금 중요한 것도 희생하지만
그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혹은 왔다고 붙잡고 살아도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간다.
아무도 모르는 ‘하나님의 오늘밤’이나 더 뒤의 그 날이 오면.
그래서 오늘 일용할 양식만 구하고,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닙니다!’ 하며,
오늘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사는 게 더 신앙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요 근래 가족을 잃었다.
세상에서는 다시 보지 못하는 이별을 하고 떠나보내고 마음 한구석이 비었다.
배우자로 남은 가족은 후유증과 변한 환경으로 심한 외로움과 곤경을 당하고 있다.
또 다른 가족은 무서운 암으로 투병하며 힘들어해서 나까지 마음이 무겁다.
아픈 아내와 아이들로 내가 겪는 지긋지긋한 일상만도 힘에 버거워 허덕이는데...
그러다보니 늘 우울한 심정이 내 가슴속 한쪽에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신나서, 하고 싶은 일이 넘쳐 아침에 해뜨기도 전에 눈을 뜬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사는 재미가 살기 힘든 괴로움에 치여 빛을 보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너무 힘든 이웃들이, 너무 마음 아픈 분들이 평안히 잠든 어느 날 밤에 고통 없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으면...
남는 사람이 외롭지 않게 사랑하는 사람도 동시에 갈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문득 이렇게 중얼거리는 나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는 적도 있다.
사실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이들의 마지막 소원은 하나님께로 가는 것 아니던가?
이 땅에 뭘 남겨놓는 것에 의미도 계획도 없고 미련도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 연장선에서라면 일찍 고통 없이 간다면 정말 축하를 들을 소원이 맞기는 하다.
그렇지만... 친하다고, 좋아하는 분에게 그런 기원을 앞에서 빌어주면 뺨 맞을 거다.
최소한 다음날부터 면회사절, 응답거부! 일지도 모르고. 나도 그 정도는 아니까 안 한다.
그 결정권은 하나님께만 있고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다.
자기 생명조차 자기 것이 아니고, 아무도 손 댈 권리가 없으니 바람으로만 남기고 패스다.
다시 돌아 와서, 별 자랑거리도 힘도 없이 무기력해진 평범한 신자 입장에서,
나도 좀 진지하게 소원을 말해본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기왕 시작된 오늘, 하루 동안 징징거리지 않고,
좀 우울하지 않게 보내게 해주세요!
집사람 통증 좀 덜 아프게 해주면 좋겠고요.
그게 안 되면... 우리 둘 다 잘 참아낼 힘이라도 제발 주시고요!"
너무 큰 소원인가요?
그럼...뭐, 다시 물이나 한 컵 주시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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