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는 비겁한 신자가 아닐까?>
.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만 한다고? 아니. 때로는 미워도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만 한다고? 아니. 가져도 가신다.
하나님이 고통을 걷어주고 없애주기만 하는 분이라고?
아니!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은 고통을 주시기도 하는 분이다.
하나님이 기쁨과 만족만 주신다고?
아니! 종종, 그리고 아주 긴 역사를 거치면서 슬픔과 부족함도 주시는 분이다.
.
다만 어떤 경우에도 동행을 하신다.
기쁨의 환성만이 아니라 눈물과 신음에도.
고통이 사람에게 오는 이유, 생기는 원인이 이렇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우리가 인생에 바라는 것과 하나님이 바라는 것의 차이,
우리가 가고 싶어 하는 곳과 하나님이 가기를 원하는 곳의 다름
그 차이에서 고통이 생긴다고...
.
우리 또한 어쩌면 모두 비겁한 신자일수도 있다.
신자의 모습을 보면 크게 두 부류가 있다.
한 부류는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지마시고 우리 주문대로 해주세요!’ 하는 신자고,
또 다른 부류는 속으로 믿지 못하여 ‘내가 해결해야지’ 하고 불안하며 사는 신자다.
둘 다 사실은 하나님을 작고 영향력이 없는 신으로 만드는 것이다.
.
나는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으면 자기에게 양심적으로 물어보자.
정말 하나님 때문에 인생의 모든 근심에도 불구하고 푹 잠에 드는 평안을 누리는지!
아니면 반대로 무당을 믿는 정도로 터무니없는 행운만 기다리는 맹목적 신자가 아닌지!
두 가지 모습을 벗어난 신자라면 정말 하나님과 가까운 신자일 수 있다.
최태선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실천적 무신론자들이다. 오늘날 이 땅의 기독교에도 짙은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다. 예배 때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며"라고 사도신경을 고백하면서도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하나님은 사라지고 돈이 없으면 하나님도 아무런 힘이 없다고 말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돈과 권력을 구하고 그것을 힘으로 행사하는 사람들이 된다. "
맞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에게 넉넉하게 돈(성공)을 주셔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 믿음이 모자라거나 혹은 하나님이 주무시고 계시는거라고 말한다.
하나님 노릇하기 점점 힘들게 하는 신자들이 많아지는 세상이다.
"하나님, 말 잘들으실래요 아님 버림받으실래요?
고집을 접으실래요 아님 왕따를 당하실래요?"
내 속에 질기게 뿌리내린 돈에 대한 의존이 있다.
돈의 부재에 대한 불안이 그렇게 말한다.
내가 바로 실천적 무신론자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
'이것저것 끄적 > 길을 가는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과 신앙 (0) | 2015.08.18 |
---|---|
<바람 불어 좋은 날! 너를 기다리다> (0) | 2015.08.17 |
나 돌아갈래! 안 해! (0) | 2015.08.08 |
삶이 그대를 속이는 날에도 걷자! (0) | 2015.08.06 |
30년 수련도 하루 고통에 흔들린다. (0) | 2015.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