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잘못 짚은 중요한 것들

희망으로 2015. 7. 3. 10:10

<잘못 짚은 중요한 것들>

 

 

1.

 

기운이 없어 보인다?”

, 별로...”

꼭 제대 한 달 앞둔 말년병사 같은데? 흐흐

 

3 수능생으로는 사실상 마지막 시험일 3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다음 날

학교로 등교하는 딸아이에게서 여유를 넘어 서는 나른함을 보았다.

하기는 고등학교 3년의 세월을 끌어오는 건 그 이유도 상당했을 거다.

쉬고 싶고 놀고 싶고 어딘가로 훌훌 가고 싶은 충동들을 꾹꾹 누르며 살게 하는 이유.

대학진학을 위해 내신관리를 하면서 수능준비로 공부를 하는 굴레.

그 하나를 위해 많은 것을 참고 미루며 지내왔으니 거의 8부 능선은 지난 심정일거다.

아직 수시지원과 수능시험도 봐야하고 아무 탈 없이 졸업도 해야하니까.

그러고 보니 나도 긴장감이 풀려서 마치 휴가 받은 아빠 같았다.

 

조심해, 긴장이 풀렸을 때 다치기도 하고 병도 난대

 

늘 안하면 100점일 마무리를 잔소리로 60점쯤으로 깎아먹는다. 별 수 없는 부모.

사실 결과로 남는 점수의 어떠함보다 잘 마쳤다는 대견함이 더 크다.

그러면서 하나의 생각이 희미하게 의문으로 남는다.

 

그 목적과 이정표가 아이를 괴롭히기만 한 것일까?

혹시 아이를 긴장과 성취감을 수시로 맛보게 하면서 아이를 지켜준 것은 아닐까?

나쁜 것만이 아니라 좋은 기능으로도...‘

 

 

 

2.

 

월급날 하루 보면서 한 달을 참고 일하는 회사원들.

가장 기다리면서도 가장 무겁고 허무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날이 바로 월급날이었다.

누구 표현에 의하면 월급쟁이들은 이렇다.

 

더럽고 치사해서 그냥 들이받은 후 때려 치고 싶어도 가족을 생각하며

주먹 불끈 쥔 채 물러나 화장실 세면대에 물 틀어 놓고 울음 삼키는...‘

 

바로 그런 월급쟁이 시절을 거의 30년을 보냈던 나도 참 벗어나기 힘든 쳇바퀴였다.

그러고도 다음 날이면 또 출근길에 오르고, 저녁이면 분노와 서러움을 한가득 담고,

가슴 안주머니에는 사표가 수시로 봉투에 담긴 채로 며칠씩 머무르다 휴지통으로 가고.

그런데 중간에 잠시 직장이 공백이 생겨 일 없이 놀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위 백수라는 이름으로 안팎의 괴로운 시선을 견디는 사람도 있다.

애를 쓰고 노력해도 해결이 안 되어 불편하고 초라하게 사는 젊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오래 벗어나지 못하면서 정작 일을 다시 할 두려움이라도 생기면 더 낭패가 된다.

습관성 빈둥거림이 자리 잡으면 인생이 통째로 불량해지고 폐인이 되기도 한다.

 

월급만이 정말 중요한 목표였을까? 그것만이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

한 달 중 하루, 월급날만이 진짜 소중한 날이고 나머지는 의미 없는 괴로움이었을까?‘

 

어쩌면 꼴랑 월급봉투 하나에 쓸개 간 다 빼고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이 없으면 우리의 심신을 건강하게 한 달도 채 끌어가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3.

 

일 날 형이랑 동생 가족들 다 내려온다고 연락 왔어. 휴가라고 여기 와서 보낸다네!”

정말? 그러면 또 추어탕 끓일까?”

 

돌아가신 엄마는 그랬다. 유난히 가족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신이 났었다.

온다는 며칠 전부터 가마솥 닦고 시레기 준비하고 장을 가서 미꾸라지도 사기도 하고.

그 더운 여름에도 땀 빼며 마늘 찧고 고추 다듬고 제피(산초)가루 빻고.

그렇게 앞으로 며칠, 와서 먹고 간 뒤로 열흘 한 달을 기분이 좋아지시고 의욕이 나셨다.

그래서 형제들은 그 모습이 좋아서 그런지 또 맛있다 다음에 또! 했는지도 모른다.

 

부모들에게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 힘이 덜어질 어떤 일들은 부역이 아니고 행복이다.

사는 힘이 되기도 하고 기꺼이 기쁨이 되어서 다른 수심도 떨쳐내는 약이 된다.

힘에 부치는 더운 여름에도 머리에 수건매고 잡초 뽑으며 마늘 심고 땅콩도 캐서

봉다리 봉다리에 담아 명절에 오는 자식들에게 건네셨다.

내가 잠시 아주 어려웠던 시기. 엄마는 비닐하우스 농장에 가셔서 상추 쌈 수확일로 번 돈을 돌돌 고무밴드로 묶어 허리춤 주머니에 넣어두셨던 그 귀한 만원짜리 수 십장을 아버지 몰래, 형제들 몰래 내게 주시기도 하셨다.

 

엄마는 힘들지 않으셨을까? 많을 때는 10여명이 넘는 식구들 먹을 거 장만하고 치우고 하는 일을 일로만 보면, 애써 모은 돈을 넘겨주실 때는 그 많은 고생과 노동의 결실이 날아가는데도?

 

엄마는 일보다, 돈보다 다른 것들이 힘을 나게 하고 기뻐셨나보다.

우리가 흔히 평가하는 일과 재산의 값어치가 아닌 그 뒤에, 혹은 그 아래에 흐르는 것들을.

 

4.

 

나 돌아왔어!”

빨리 왔네.”

당신은 내가 나가면 언제나 당연히 돌아온다고 알잖아.

그런데 만약 내가 나가서 안 돌아오면... 당신 많이 슬퍼겟지?“

“.......”

 

금새 얼굴이 심각하게 슬퍼지고 울먹거릴 직전이 되었다.

아냐! 그냥 해본 소리야!’ 그렇게 달래놓고 돌아서서는 정작 내가 소리 없이 울었다.

늘 돌아오면 그 자리에 아내가 있고 아이들이 있고 내가 할 일이 있었다.

때로는 그 해야 할 간병일들이 지겹고 힘들고 괴롭기까지 했다.

또 아내도 아이들도 마냥 내가 늙고 허리꼬부라져 죽기까지 지고갈 짐처럼도 느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이 비어버리고 사라진 자리가 내 앞에 닥치면?

가장 먼저 못 견디고 고독해서 슬퍼서 죽을 사람은 아내도 아이들도 아닌 나 자신일거다.

그걸 어렴풋 미리 실감해보는 것은 참 끔찍하고 공포스러웠다.

 

어떻게든 빨리 나아서 자유로워지면 좋겟다. 훨훨 날아서 어디론가로 막 가볼텐데...’

 

그런 생각도 기도도 한 적 많지만 정말 하늘이 내게 주신 은총은 그런 결과의 상황이 아니엇다. 지금, 여기에 같이 있도록 해주신 것, 할 일을 하면서 먹고 자고, 긴장과 휴식을 날마다 정상으로 누리면서 살게 해주신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당장의 고단함에 짓눌릴 때는 다 걷어지고 마무리 된 상황을 꿈꾼다.

간절히 기도하기도 하고 그럴 수 있도록 온갖 방법을 써보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그날이 오고 더 이상 아무 것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고 필요도 없는 순간에 놓이면 우리는 과연 한없이 행복하기만 할까? 아무 기도도 할 것이 없는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바라며 견디며 잠깐씩 주어지는 소소한 기쁨과 평안을 상대적으로 맛볼까?

 

공동묘지의 어느 땅속에 있는 주검과 다를 것이 거의 없는 그 상태란...

 

 

5.

 

우리는 종종 중요한 것을 잘못 짚는가보다.

 

대학과 성적보다 더 소중한 일상을 유지시켜주는 목표들이 참 고마워야하는데 지겹기도 하고 고생의 뿌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 우리가 그렇게 바라보고 그렇게 단정짓고 그 속에 파묻혀 미워하면서 허덕이는 것을 돌아보면 그렇다.

 

월급보다 중요한 일이 있음을, 일할 수 있는 자리와 건강이 있음을 미처 감사하지 못하고 벽과 세면장에 얼굴을 처박기도 하니까. 사표를 만지작거리며 월급의 두께와 액수에 자존심을 비교하고 불을 붙이면서 그 귀한 자리 귀한 동료 귀한 시기를 스스로 끝장내려고 하는 것을 보면.

 

엄마가 가장 힘을 얻고 소중한 것은 음식도 저축도 아니고 우리 자식들이고, 우리를 바라보면서 맛있어하고 근심하지 않는 표정을 보는 것임을 놓쳤다. 더 이상 음식이 먹고 싶지 않으면 음식만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존재까지 드문 드문 잊고 지났던 것을 돌아보면 마음 아프다. 왜 그걸 몰랐을까? 미련하고 잘못 짚은 내리사랑의 자식들이란...

 

질병의 깊음과 회복이 전부가 아니고 길고 짧음에 우리 사랑하는 가족의 관계가 달려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몰랐다. 날마다 그 자리에 있어주는 귀한 축복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인데도 더 나은 상태, 더 빨리 회복되지 않음에 다 매몰되어버렸다. 나으면.. 그 다음에는 뭘할건데? 안 아프면 얼마나 더 사랑할 수 있는데? 별 뾰족한 답도 없으면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신음만 하고 살았다.

하나님은 그래서 멀 리가 아니고 지금 여기, 내일의 결과에 매달리지 말고 오늘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며 살라고 누누이 말하셨나보다. 특별한 일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범사에, 일에 따라서 기뻐하고 화내고 하지 말고 항상! 곤경에 빠질 때만 기도하지 말고 늘 기도하라고! 우리가 늘 잘못 짚고 사는 꼬라지를 너무도 잘 아시는 게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말이다.

 

잘못 짚은 중요한 것들을 다시 짚으며 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