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흐린 세상에 숨은 하나님과 함께 살기

희망으로 2015. 7. 9. 21:36

<흐린 세상에 숨은 하나님과 함께 살기>

 

 

1. 나중에, 좀 더 나중에...

 

참 보기가 딱했다.

옆 병실의 아주머니는 틈만 나면 손전화기를 들고 복도로 나가셨다.

담당하는 의사선생도 회진을 하면서 몇 번이나 넌지시 말했다.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하시고 싶은 거나 가고 싶은 곳 들어드리라고.

그런데 아주머니는 그래서 더 발을 동동 굴렀다.

아픈 아저씨도 마음이 아팠지만 다른 또 하나가 걸린다면서.

많이 싸우고 집을 나간 채 다시 만나지 않고 있는 아들과 남편 사이에서.

 

그래도 니가 와야지, 한 번은 와야 한다. 니 아버지 오래 못 사실 것 같다.”

 

울먹이며 통화를 하는 아주머니 곁을 지나면서 참 마음이 저렸다.

아마도 아들이 엄마랑은 연락하면서 살아도 아버지는 끝내 보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아저씨, 아저씨가 그냥 보고 싶다 하시면서 그때는 미안했다 하세요.

속으론 많이 보고 싶어 하시면서 부자간에 무슨 자존심 체면을 따져요.“

 

좀 얼굴을 익힌 뒤에 몇몇이 그렇게 말씀을 드려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워낙 오래되었고 골은 깊었다. 아들과 뭐가 그리 의가 상했을까 궁금했다.

 

나중에, 조금만 더 있다가...”

 

그러나 끝내 부자간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 아저씨는 세상을 떠나셨다.

나중에 아주머니에게 아들이 장례식에 왔고 많이많이 울었다고 들었다.

 

그럴 걸... 살았을 때 서로 화해하고 엄마도 좀 마음 편하게 해드리지

 

하지만 남의 집 사정을 깊이 모르는 제3자 입장에서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는 가족 친구 연인끼리 등지고 화해하지 못한 채 사는 이들이 참 많다.

TV프로그램 중에도 그런 사이를 화해시켜주는 것도 있을 정도니.

 

그런 점에서는 올 초에 가족들과 이별한 우리장모님은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수 십 년을 자녀들이 목회자가 되어 교회를 섬기는데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자식들이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은 일체 말 한마다 안 하시면서도 본인은 그랬다.

자식 중 누군가 많이 조르고 떼쓰면 이렇게 말하셨다.

 

나중에, 좀 더 있다가...’

 

그런데 돌아가시기 두 어 달 직전에 김장을 하시다가 급작스레 쓰러지셨다.

그리고 가망 없다며 준비하라던 의사들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기적같이 회복하셨다.

의식이 오락가락하며 한 달 넘도록 온갖 호스를 달고 기계 도움으로 중환자실에 계실 때.

병실을 방문해서 기도해주시던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멘!’이라고...

그 후 퇴원해서 집에 계시며 몸조리를 하시면서 이번에는 맨 정신에 말하셨다.

몸이 좀 나아지면 교회로 나가야지요!’

 

불과 두 어 달 조금 넘는 시간에 급작스럽게 헤어진 슬픈 이별과 혼자되신 장인어른에 대한

안타까움이 몰려와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중증환자로 긴 시간을 병원 침대에만 누워 생사가 위태롭던 아내는 더더욱 부모에게 죄스러워 통곡했다.

그럼에도 참 다행이고 위로가 된 것은 장모님이 마지막 순간에 더는 미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 아멘!”

교회로 가겠습니다!”

 

하나님은 흐린 날, 슬픔 속에서도 숨어계셨다. 그리고 일하셨다.

나도 살면서 미루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사랑하는 가족이든지 상처를 준 이웃에게든지 혹은 오래 기다리시는 하나님께든지.

 

고마워요, 미안해요, 잘 할게요!”

 

 

2. 조용히 걷는 사람처럼

 

환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누구 누구는 무지 사나워! 걸핏하면 병원규칙이 어쩌고 어기면 어떻게 한다는 둥

맞아, 누구 누구는 참 말도 별로 안하면서도 필요한 거 참 많이 챙겨주고 잘하는데

 

그렇게 아무도 돈 먹은 것도 아닌데도 비슷한 심정으로 점수매기기에 동조했다.

그런데 마치 병원을 위해서 환자들이 존재하고 병원이 이고 환자가 인 것처럼 그렇게 잘 따지는 사람이 별로 친절하지도 않고 자주 미소대신에 짜증을 내었다.

그렇게 똑똑한데도 희한하게.

 

간호사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유급으로 간병을 하는 이들도 수 십 명이 되다보니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다.

우리가 입원할 몇 년 전에는 주로 한국 간병인들이었는데 이제는 중국동포가 더 많다.

그 중에는 유난히 요란하고 아는 것이 많은 것처럼 목소리가 높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오래 있다 보면 대부분 돌보는 환자와 갈등이 생기고 결국 바뀐다.

월급제인 공동간병인 경우는 보호자와 병원 사이에 말싸움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차분하고 목소리 높여가며 환자를 나무라지 않는 분들은 갈수록 칭찬받는 경우가 많다.

 

어디 세상 일만 그럴까?

교회 안에서도 신앙의 격렬한 잣대를 휘두르며 말로 저만치 앞서가는 분들이 종종 있다

무슨 일이든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거나 자기가 해석한 주장으로 뒷받침하기도 한다.

도무지 초보신앙인이나 지식 짧은 평신도들은 주눅 들고 기를 펴지 못하게 한다.

 

아내가 아프기 전 주일학교를 몇 년이나 열심히 고군분투하던 시골교회 사모님은 정반대였다.

내 기억에도 몇 년을 같이 예배드리고 내가 운전으로 봉사하면서 늘 보아도 그랬다.

양쪽 집 다 아이들이 같은 학년이고 시골은 한 반 이라 더 잘 알고,

심지어 아내가 아프면서 딸아이를 숙식까지 부탁하고 맡기기도 할 정도 였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그 사모님 입에서 성경 구절을 빌려 가르치시려 드는 걸 본 적이 없다.

신학자처럼 무슨 성경해석을 해서 자기의 말이나 결정을 정당화하는 것도 못 보았고

언제나 미소만, 일만 담당하시고 어르신 권사님들께 이럴까요? 저럴까요? 하셨다.

그러면 휘어 잡히고 만만히 보일까? 다들 그렇다고들 하던데.

 

아내가 아프면서 환청도 오고 정신도 분열증상이 와서 그 사모님께 모진 말을 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칭찬하고 뒤로 내 욕을 하는 줄 내가 모를 줄 알아? 이 나쁜 X!’

 

이런 끔찍한 말을, 그것도 직접 대놓고 앞에서....

 

물론 전혀 터무니없는 병으로 인한 말이었다. 사모님도 그걸 알고 들으셔서 분노하지 않았고 저주하지 않고 소화하셨다. 아내는 아프기 이전에 몇 년이나 그 사모님과 단 둘 이서 늘 여름, 겨울성경학교를 코피 쏟듯 열심히 해냈다. 그만큼 서로 존경하고 격려하며 잘 지냈다. 그리고 정신이 온전하게 회복된 후에 미안하다고 했고 당연히 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프면서 지나간 8년 동안 수 십군데 병원과 기도원을 떠도는 동안에 목사님과 함께 거의 빼지 않고 다 오셨던 유일한 분이다. 가족 형제도 어려운 일인데 그랬다.

설사 병으로 그랬다는 용서를 해도 감정이 상해서라도 슬그머니 외면하고 살만한데 안 그러신다.

 

메르스로 문병도 면회도 중지된 중인데도 이 글을 쓰는 하루 전에 다녀가셨다.

병실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병원 밖에서 만나 점심사주시고 돈을 30만원이나 주고 돌아가셨다.

그 먼 충주에서 청주까지 오셔서.

국가에서 받던 30만원 간병비 지원도 끊어지고 장애수당도 등급을 추락시킨 후 다 끊어졌는데 시골목회하시며 최저생활비도 안 나오는 가난한 목회자 가정이 꾸준히 그러신다.

 

그렇게 시끄럽지 않고 조용조용 걷는 분들은 결코 길을 갈지자로 비틀거리지 않고 걷는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목적지를 잊는 법이 없고, 가다말다 하지도 않고 꾸준히 걷는다.

나는 그 사모님을 보면서 배운다. 세상살이도 그렇고 교회 안에서 신앙살이도 비슷하다는 걸.

 

하나님은 시끄럽게 떠들어도 결코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헷갈리거나 놓치는 법도 없다.

무엇이 아름답고 진실하며 더 좋은 것인지, 더 좋은 사람인지를.

사람들도 조금만 같이 지내보면 다 아는 사실인데 하물며 하늘의 하나님이 틀리실 리가 없다.

 

 

 

3. 마음만, 기도만... 그러지 않을께요.

 

같은 병실의 한 간병인은 아예 밥장사를 하신다.

우리도 가끔 밥 다 파셨어요?’ 하고 농담을 한다.

얼마나 먹을 것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더 먹으라고 가져다주는 지 때론 귀찮을 정도다.

꼭 사육당하는 기분이예요. 이제 그만 줘요!’

나도 그렇게 말한 적 있지만 결코 기분 나쁘거나 정말 귀찮아서 탓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분은 무슨 먹을거리를 그렇게 많이 가져오는 걸까?

어디서 몰래 주방을 만들어 밥이라도 따로 하는 걸까?

물론 아니다. 병동 안에 이런 저런 이유로 외출이나 밥맛없어 건너는 사람들이 죄다 가져와서 쌓이는 밥들이다.

 

왜 그럴까? 그건 이 분이 틈만 나면 먹을 거 생기는 대로 다 나누어주러 다녀서다.

어쩌면 그렇게 퍼주는 것을 좋아하는지,

그러니 받아먹은 분들이 미안하고 보답하는 마음에 먹을 거만 생기면 들고 온다.

내가 그래서 한 번은 그 분께 이렇게 말했다.

남는 먹거리 모아서 먹을 것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는 푸드뱅크 사장님하시면 딱인데...’

 

그런데 그거 아무나 못한다.

조금만 맛있어 보이거나, 안 맛있어도 꼬불쳐두고 챙기고 욕심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열 번을 죽었다 깨어도 결코 음식 나눔 푸드뱅크 사장 같은 거 못한다.

예수님이 말하신 거듭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행동이다.

 

이 분은 옛날 음식 섭취스타일이다. 큰 양푼에 걸핏하면 채소 썰어 넣고 고추장 둘러 비벼먹는다. 봄날에는 틈만 나면(주로 치료 없는 주말이나 저녁 후) 근처 공원이나 야산에서 민들레를 날마다 캐 와서 씻어 이 사람 저사람 내내 나누어주었다. 나도 많이 얻어먹었다. 근 한 달이 넘도록. 그런데 그게 너무 재미있고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그럼 반대로 움켜쥐고 인색하고 욕심 많은 사람 예를 들어볼까?

아니다. 말자. 너무 많고 흔해서 아예 안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다 있기도 하니.

우리는 좀 손해가 나거나 위험하거나 귀찮으면 고개 돌리고 모른 척 외면하지 않는가.

 

오죽하면 성경 속에서조차 선한사마리아사람의 이야기가 다 들어갔을까.

하나님의 사랑을 입에 달고 살고 팔아서 밥 먹고 사는 제사장도 그랬다,

남들에게는 좋은 말, 화려한 말 폼 나게 다하며 은근 자랑하는 랍비도 그랬다.

그리곤 정작 강도 만나 피 흘리고 고통하며 두려움에 떠는 사람을 구하는 것은

바쁘고 힘든 삶을 살아가던 사마리아사람에게 그 역할이 돌아갔다.

지금 시대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돕거나 나누는 실천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곧잘 하는 말이 있다.

마음만,’

 

또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남의 불행을 보거나 듣게 되면 쉽게 하게 되는 말도 있다.

기도로,’

 

나와 아내, 막내 딸아이는 참 많은 도움을 남들에게 받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음식 돈 만도 아니고.

도움을 주는 분들은 정말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돌려받을 생각도 없이 그러셨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이렇게 받는데 익숙해지고 당연해지면 괘씸죄로 벌 받아 죽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그래서 조금씩 흘려서 보내며 살자고 아내와 결심했다.

이 작은 나눔도 도움이 되고 필요하다면...

 

그래서 멀리 산악지대의 나라에 사는 오지의 아이에게 조금 보내기 시작했고,

겨울옷이 필요한 노숙자들에게 필요한 기금을 일년내내 모으는 월 회비도 보냈다.

기형인 아이들을 수술로 돕는 의료단체에도 아주 적은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이 되었다.

(주로 선박을 이용해서 병원기능도 하고 이동도 하는 곳)


막내딸과 같은 나이 여자아이도 미술을 좋아하는데 엄마는 안계시고 아버지는 많이 아프셨다.

중학교만 마치고 고등학교도 못가고 그만 둘 지경이었다.

우리도 허덕이고 힘들지만 딸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같은 나이인데...

그래서 아이 이름과 내 이름으로 두 개의 후원자가 되었다.

올해 고3이 되었는데 각종 미술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미대에 거의 가게 되었다고 소식지와 편지로 알려주셨다. 

그림도 보여주셨는데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내 딸의 일처럼.

 

이게 무슨 자랑일까?

내가 번 돈도 아니고 남들이 주시는 돈으로 내는 심부름 통로일 뿐이니.

나중에 천국 가서 예수님 만났는데 충격적인 말을 듣지 않고 싶어서 일뿐이다.

 

나도 마음만 줄게, 다른 곳을 알아봐!’

왜 그러세요?’

너 땅에 사는 동안 늘 마음만 보내고, 나처럼 같이 살자는데 기도로만! 머리로만! 그랬잖아

 

힘들고 억울하고 가난하고, 그런 거 다 싫다고 공부로 기도로만 따랐다가 그런 문전박대 받고 갈 곳이 없어 떠돌면서 슬피 울고 싶지 않다.

마음만, 기도만하는 사이 숨어서 지켜보시는 하나님이 긴 한숨을 쉬시고 안절부절 하실 거다. ‘저걸 어째...’하시며.

 

숨은 하나님이 무서워서, 천국 간 후 벌어질 상황만 걱정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땅에서도 그렇게 오래 살면 마침내 모두에게 발 끊어진다. 외톨이로 비난받으며.

반대로 생활로 실천하면서 살면 우리 병실 간병 아주머니처럼 온통 복의 통로가 되고 복덩어리 칭찬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 길이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한지 살아보지 않으면, 눈으로 보지 않으면 모른다.

숨은 하나님이 흐뭇해하시며 너로 인해 기쁨을 참지 못하시게 되는그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