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것이 나쁘기만 할까?>
일본 드라마 중에 ‘아임홈’이라는 것이 있다. 올해 막 시작한 드라마다.
영어로는 ‘I am at home’ , 그러니까 ‘나는 지금 집으로 간다.’ 뭐 그런?
좀 촌스럽고 초등학생 같은 직역이지만 딱 느낌이 그렇다.
어느 날 공장 곁을 지다다가 찢어진 파이프관에서 샌 가스폭발로 크게 다친다.
거의 죽음직전에서 3개월 만에 간신히 살아난다. 그리고 재활치료로 사회에 복귀한다.
하지만 그 후유증으로 최근의 5-6년간의 기억이 모두 사라지고 만다.
여기까지가 통속적이고 흔한 드라마 아류다. 별로 다르지 않은.
그런데 흥미를 끄는 것이 있다.
그 주인공 남자는 달라진다.
다치기 전의 방향과 인간관계, 선택 스타일이 아닌 것으로.
그는 성품도 나쁘지 않고 매너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주위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남들은 다가오지 못하고 본인은 허용하지 않았다.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지기 싫어하는 타고난 성격 그 하나 때문에.
그 덕분에 그는 대학도 장학생으로, 회사에서도 일류 앞서가는 엘리트였다.
승승장구 남들의 부러움과 주목을 받으며 사장의 표창장을 8년 내리 받는 기록도 세웠다.
그리고 그 대가를 혹독히 치룬다.
친 딸은 아니지만 처음 결혼한 여자와 이혼하고 그가 데리고 온 딸과도 헤어졌다.
그리고 그 딸에게 핀잔을 듣는다.
“지금껏 방치해놓고 이제 와서 왜 간섭을 해?”
그리고 다시 결혼한 여자와 살면서도 냉정하기만 했었나보다.
겨우 3살짜리 아들에게 혹독하게 학습지 등 공부를 시키고
약속한 만큼 공부하지 않는다고 장난감들을 다 내다 버렸다.
지는 것이 보기 싫다고 아이의 유치원에서 하는 축구교실에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본래 성품은 차갑지 않아서 잘 대하려는데 아이는 혼란스러워 한다.
“미안해, 장난감들이 망가졌네. 아빠도 망가졌어. 둘 다 다시 수리해볼게”
친구에게도 지는 것이 싫어 친구가 짝사랑하던 여자를 아내로 만들었다.
(어떤 과정으로, 서로가 동의한 것인지 자세히는 아직 기억이 안 나왔지만)
그렇게 그는 망가진 자신을 인정한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는 두 번 망가졌었다.
어릴 때 가난하고 불행했던 시절이 싫어 독해진 다음 살아온 과정에서 망가졌었다.
또 한 번은 바로 폭발 사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기억상실에 걸리는 망가짐.
아직 초반이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 남자는 지금 망가진 것들을 회복하며 나간다.
그런데 두 번 째 망가진 기억을 살리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첫 번 째 망가진 삶과 관계들을 본래 가진 성품으로 다시 살려낸다.
사과하고 반성하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살다보면 우리도 여러 번 망가지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혹은 사람관계에서도.
이 드라마에서는 뒤에 망가진 것이 오히려 복이 되고 있다.
세상에서는 유능하고 부러움을 받지만 얼음장 같은 고독함을 고치는 계기로
망가짐을 고난이라고, 불행한 어떤 순간이라고 바꾸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 말하는 것처럼 때론 고난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기도 한다.
어떤 병이 더 큰 건강을 가져오는 동기가 되기도 하고,
어떤 실패는 놓치고 살았던 소중한 것을 바로 잡아주기도 한다.
망가짐, 고난.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흘러가게 할지는 하늘이 절반, 사람이 절반,
받아들이고 적응하기에 달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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