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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210 - 덜렁이도 유전인가요?>

희망으로 2015. 3. 23. 18:09

<잡담 210 - 덜렁이도 유전인가요?>

 

아침 7시가 조금 지난 시간 전화가 왔다.

- ‘으잉? 이 시간에 딸래미가 어쩐 일이지? 무슨 사고가 났나?’

 

아빠, 나 학교 좀 태워줘야겠어...”

그러지 뭐, 근데 무슨 일이야?”

 

학교에서 여학생들 치마가 너무 짧게 올라갔다고 많이들 걸렸단다.

무릎 위로 올라간 교복치마는 무조건 단을 내리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세탁소 맡길 시간도 없어서 집에서 자기가 내려야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 이럴 때는 키가 작았으면 관절이 살짝 가려져서 문제없이 통과하는 건데...’

 

, 나 별걸 다 부러워하네. 속으로 그렇게 들으면서 예전 기억이 났다.

7-80년대 경찰들이 자를 듣고 지나가는 여자들 미니스커트를 재어 단속하던 시절이.

 

주말에 깜박 잊어버려서 월요일 아침 등교직전에 부랴 하는데 시간이 늦었단다.

다른 날처럼 걸어가서는 도저히 제 시간에 학교를 못가겠다고.

그러니 학교로 좀 태워달라는 말이다.

 

자취방에서 태우고 가면서 아침도 못 먹어 김밥 한 줄을 사서 가방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교복치마를 보니... 단이 풀리고 끝마무리가 안 되어 늘어져 있다.

시간에 쫓겨 마무리를 못하겠고 귀찮아서 그냥 다니겠단다.

 

- ‘에그...숙녀가 이게 무슨 날나리 시츄에이션? 흐흐

 

하여간 자기 입으로도 시인하는 덜렁이다.

한 번은 담임선생님이 김나눔, 너는 차분해보여도 알고 보면 꽤 덜렁이야!’ 했다면서.

 

여기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전에는 여권을 세탁기에 통째로 돌려서 얼마나 튼튼(?)한지 직접 시험을 했다.

개정된 대한민국 전자여권은 정말 질기고 튼튼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종이도 멀쩡 실밥도 안 터지고, 심지어 해외봉사차 다녀온 출입국 스탬프도.




 




1때 다녀온 청소년해외봉사 사랑의집짓기’ 11일짜리 베트남도 무사하고,

2때 10일짜리 아프리카 급식봉사로 다녀온 탄자니아와 우간다 기록도 멀쩡하다.

그 귀한 흔적인 잉크스탬프가 멀쩡하게 보존되어 남아있다.

무려 1시간이나 돌린 세탁기속에서도!








그러나 여권은...

다시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학교를 데려다주고 병원으로 와서 아내 아침을 죽으로 먹이고 다시 구청으로 달렸다.

대한민국에서 인문계고등학교 3학년은 어떤 직장 어떤 공무원보다 근무시간이 길다.

아침 730분부터 밤11시까지 토요일도 오후5시까지 학교에 있으니.

그 이후도 개인별로 더 하는 학생이 수두룩하고, 그러니 관공서 용무는 볼 수가 없다.

 

사진이 적어서 여권용으로는 접수를 못 받겠는데요?”

? 울 딸이 여권용으로 찍었다고 준 건데...”

이 만큼은 되어야하는데 이건 얼굴이 반 정도라 안되요.”

에이그....”

 

직원이 자까지 꺼내서 기존 여권의 얼굴크기와 가져간 사진을 비교해준다.

결국 여권용 사진이 크기가 작아서 퇴짜를 맞았다.

다시 찍으려면 또 일이 복잡하다. 사진 찍을 아이가 별보기 운동하느라 갈 수가 없으니.

 

- ‘어이구, 이 덜렁이 딸...’

 

다시 덜렁이 딸이 친 사고와 여권용이라고 우기고 내게 준 사진 때문에 속이 끓는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쉽게 포기하고 물러날 아빠가 아니다!

근처를 뒤져 사진관 하나를 발견했고 작은 사진을 스캔해서 여권용으로 다시 출력했다.

혹시 흐려진 해상도로 퇴짜맞을까봐 조바심이 났지만...무사 통과.

끝냈다. 오늘 내게 주어진 덜렁이 딸이 남긴 미션 두 가지를 모두 해냈다.

3시간에 걸쳐서~

 

여보, 막내가 덜렁이인 것은 우리에게 물려받은 유전이겠지?

혹시... 당신이 어릴 때 그랬지 않았어?“

“...졸려

, 맨 정신에도 덜렁이들은 사고 치는데 졸려서 컸으면 뭐 더 심했겠다.”

 

나의 어린 시절 백번도 넘게 지적받은 덜렁이 전과는 조심스레 묻어놓고 입 다물었다.

(아무도 모를 거야! 흐흐흐~)



  

* 문제의 증명사진,

아이가 주민등록증을 처음으로 만들면서 찍었던 사진임이 이제야 생각났다.

그러니 작을 수밖에... 그걸 오른쪽 사진크기로 다시 확대 인화하느라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