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211 – 정말 병원도 환자도 싫다. 그런데...>
오전에 열심히 덜렁이 딸이 만들어준 미션 두 가지를 3시간에 걸쳐 끝냈다.
그리고 숨이 차도록 서둘러 돌아온 병원.
박수나 꽃다발이 기다려 주리라곤 꿈에도 생각 안 한다.
칭찬이나 용돈이라도 준다면 뭐 싫다고 뿌리치지는 않겠지만 그런 날 없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나를 기다리는 하루의 일정.
아내를 데리고 샤워실로 가서 머리 감기고 씻기고 지겨운 일과 배변, 장청소...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20분 정도밖에 안 지났는데도.
잠긴 샤워실 문고리 잡아 흔드는 조짐이 뭔가 심기가 불편하고 불안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두 번째는 투덜거리다가 세 번째는 대놓고 계속 흔들며 욕지거리다.
“내가 싸우지 않고 설명만하고 양해를 구하고 들어올게”
지난 번 좀 심하게 싸운 기억 때문에 걱정하는 아내를 달래고 나갔다.
“아, 씨발, 30분이 넘도록 안 나오고 씻어야하는데 뭐하는 거요?”
“우리 들어간 지 20분 조금 넘었고, 환자가 변을 못 보는 병이 있으니 좀 기다려주세요.”
“아, 딴 화장실로 가서 보면 될 거 아뇨! 내가 기다리는 중에 새치기를 하고 말이야!”
“무슨 말씀을? 우리가 이 앞에서 안에 있는 사람 나오기를 대기하다가 들어갔는데...”
그렇게 시작된 그 사람의 막무가내와 ‘을’처럼 그냥 빌고 해명하던 내가 충돌하고 말았다.
설사 좀 늦어진다고 해도 기다려줘야지, 일 보는 중에 나오라고 흔들면 어쩌냐,
입장 바꿔서 당신이 안에 있는데 내가 그러면 화나지 않겠냐? 하는데 소용이 없다.
왜 일반 화장실에서 혼자서도 못 보느냐, 그리로 가라, 그렇게 계속 우긴다.
‘그러는 당신은 다치지 말고 밖에서 건강한 사람들처럼 살지 병원을 왜 들어와?’
속상해서 나도 그렇게 되돌려 주는 말을 했는데도 계속 딴 말을 한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느니, 새치기를 했다느니, 다른 화장실로 가라느니...
그러다가 욱! 치받는 감정을 못 견뎌서 곁에 있던 소화기를 손에 들었다.
머리통을 부셔버리겠다고 달려가는데 간호사실에서 우루루 나오고 다른 환자들,
치료사 선생님도 와서 말렸다. 원무과 과장도 아래층에서 뛰어 올라왔다.
병원생활 8년 만에 이런 일은 나도 처음이다. 남에게 폭력으로 갚겠다고 한 경우는.
...정말 싫다. 이 쓰레기 인간들이 우글거리며 모인 감옥 같은 병원이.
내 인생이 어쩌다 이런 곳에서 돌아버릴 것 같은 억지와 무례함을 버티며 살아야할까?
자조가 몰려오고 처자식이 아니면 정말 같이 죽어버리고 싶다.
분이 풀리도록 백번도 넘게 식칼로 난도질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에 견딜 수가 없었다.
처자식이 아니면 여기 있지도 않겠지만...
사람들은 아픈 사람을 오래 돌보고 병원생활 많이 하니까 이해심도 많을 거라 여긴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그런 점도 있지만 동시에 스트레스도 계속 쌓인다.
뇌를 다친 사람들 치매환자들이 섞여 있고, 오랜 불구의 몸으로 비관하는 사람들,
그 속에 살아간다는 게 어떤지 남들은 모르는 고통이 있다.
언젠가부터 나는 병원 건물도 싫고 환자복 입은 사람만 보아도 피하고 싶어졌다.
아내가 회복되거나 안 되거나 이 병원생활 끝나면 죽어도 안 만나고 돌아서고 싶다.
정말 지겨운 환자, 환자의 고통스런 악다구니, 보기도 싫은 병원의 냄새 도구 규칙들...
지긋지긋한 가난을 이기고 간신히 탈출한 사람이 다시는 가난을 보지도 않겠다고,
지독한 이기주의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증오하고 멸시하는 드라마도 보았다.
얼마나 지겹고 끔찍하면 그렇게 깊은 상처로 자리 잡았을까.
나도 병원, 환자, 질병의 그늘이 내 속에 화인이 되어가고 이런 일을 겪으면서 이해된다.
‘오죽 괴로웠으면 그럴까...’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그렇게 보는 것도 싫고 이름 들리는 것도 싫어서 멀리 도망가고 싶은 심정인데
아이가 선생님과 대학진로 상담한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성적을 감안해서 수시 지원할 학교를 상담했는데 1차 3곳을 우선 협의했단다.
그런데...
그 3곳이 전부 의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아이는 3년 내내 학교 상담 때 장래 희망란에 ‘의사’라고 적어왔단다.
나도 예전에 아이에게 의사가 되겠다는 말은 들었지만 말렸고,
성적이 좀 불안해서 다른 분야로 간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가볍게 잊어버렸다.
수능 점수 반영 안한다는 U대학 의과,
지역 학생만 일정 인원 선발한다는 C대학 의과,
조금 안정선인 D대학 의과.
그렇게 3곳을 1차 대상으로 의논했단다.
만약 그렇게 되면 나는 늘 그 모습을 또 보면서 들으면서 살게 될 거다.
지옥처럼 지겨워서 탈출하고 싶은 심정인데 아이가 그곳으로 가게 되면 나는 어쩌나?
물론 지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수시가 아닌 정시는 수의학과나 화학과로 가겠다고,
재수는 죽어도 안한다는 자기 결심이니까 좀 이해해달라는 말을 더 붙였다.
물론 수용하고 그 길로 가게 되어도 아무 실망도 안할 것 같다. 어쩌면 맘 편하기도 하고.
단지 병원과 환자와 질병에서 멀리 간다는 이유하나일까?
그렇게 밉고 싫고 지겨워진 것일까? 병원과 환자와 질병이?
마음이 아프다...
요 며칠은 내게 지독한 시험의 연속이다.
아님 사순절의 고통을 제대로 퍼붓고 언제쯤 죽어버리나 보자는 뭐가 있던지...
부활의 날이 얼마나 남았지? 죽을 지경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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