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수용소 내 맘대로 읽기 – 둘>
2. - 1장 ‘미지의 곳으로‘ : 번데기 뽑기 뺑뺑이판에 바늘 던지는 복불복
오래전 유럽 수도공동체를 보러가느라 독일 비행기 ‘루프트한자‘를 탔다.
“저게 뭐야? 사막에 듬성듬성 점 하나처럼...”
고비사막 위를 날면서 본 땅에 사는 사람들 마을이 딱 그랬다.
‘만약 내가 저기서 태어났다면... 지금 이 비행기를 타고 유럽 수도원 방문이 가능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할거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말 끌고 물 먹이러 가고, 서른 넘도록 저 마을을 못 벗어 날거야.
장가는 갈 수 있었을까? 글쎄...‘
사람은 태어날 나라와 가정을 고르는 복은 없다.
부모가 부자고 잘 놀아주고 인자하시기를 바란다고 되지 않는다.
번데기 뽑기 회전판에 바늘 던져서 두 봉지냐 꽝이냐 그저 복불복처럼
삶의 한복판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고난은 그런 것이다.
박사거나 노숙자거나 가리지 않고 들이 닥친 전쟁의 후유증
부자거나 믿음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수용되는 어느 날 상황은 그랬다.
조금 더 깨끗하거나 조금 더 잘났던 것은 바로 무너지기 직전까지의 풀의 꽃일 뿐.
(그러나 이 말은 결코 하나님이 우리에게 로또나 복불복의 행운을 통성으로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가진 차등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무서운 선언!)
“억울해... 왜 나에게? 난 좀 더 대접을 받아야하는데,
저기 게으르고 나쁜 심보로 산 놈들과는 다른 데 왜 같은 고생이냐고!...“
수시로 울고불고 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되었다.
산둥수용소에서도, 여기 2014년 한국 땅 전쟁터 같은 생존경쟁의 삶속에서도.
그렇게 어느 날, 어디로 어떻게 우리 인생이 흘러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하늘이 원하는 방식이고 그 길을 통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실 계획이라면.
다만 적응력 조금과 그 속에서조차 감사할 꺼리를 찾아내는 질긴 감각을 키워야 할 뿐.
죽음 자체가 더 괴로울까? 아님 죽음을 예상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더 괴로울까?
산둥수용소로 가는 과정이 그렇고, 배치된 후 하나씩 맞닥뜨리는 과정이 그랬다.
우리가 고난의 미끄럼을 탈 때와 한 치도 다르지 않는 심정으로.
하지만 막다른 상황에 ‘절망’도 꿈틀거리지만 ‘발버둥’도 꿈틀거리고, ‘본능’도 꿈틀거린다.
지독한 생존의 기질, 적응이라는 놀라운 기본 아이템이 발동하는 것이다.
[‘절망’...“그러면 저 새로운 세상에서는 누가 허드렛일을 하지?” - 27쪽]
[‘발버둥’...활기 넘치는 몬터규와 함께 일하는 것이 침대옆에서 우울하게 신발이나 쳐다보는 것보다는 나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숙소 일을 맡아보겠다고 말하고는... - 31쪽]
[이 낯선 사람들 속에서 얼굴이 예쁘거나 몸매가 멋진 사람을 찾고 있었다. -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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