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가장 낮은 곳에서는 누구나 혼자다

희망으로 2014. 9. 11. 09:12

<가장 낮은 곳에서는 누구나 혼자다>

 

! 밥 먹자, 아빠가 만든 된장찌개다~~”

 

추석 명절을 아이들 자취방에서 이틀을 보내고 돌아왔다. 좁은 공간이지만 오래 동안 가지지 못한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 행복했다. 아내가 질병으로 본의 아니게 7년째 살림을 휴업하는 바람에 막내딸이 먹고 싶다던 된장찌개는 내 몫이 되었다. 대파를 까면서 눈물 흘렸고, 감자와 애기호박을 썰면서 또 눈물 흘렸다. 한 번은 매워서, 한 번은 여기까지 온 것이 고마워서...

 

이 침대 몇 인분까지 견디는 거야? 이러다 무너지는 거 아닐까?”

 

아내와 나, 막내딸까지 3명이나 1인용 침대에 올라앉아 낄낄거리며 TV를 보며 놀았다. 그렇게 재미있게 보냈지만 이틀을 넘어가면서 더 버티기가 힘들어져가고 있었다. 일반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좁은 화장실은 휠체어가 들어가지 않는다. 아내는 머리도 못 감고 침대에서 간신히 세수와 양치질은 했지만 배변은 해결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보통 침대는 아내의 등을 받쳐주지 못해 반달쿠션과 베개를 이용해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는 동안 고단함이 쌓여가고 있었다.

 

? 일찍 왔네, 친구들이랑 더 놀다 오지 재미도 없는 병원에 일찍 돌아왔어?”

병원하고 달라서 불편한 게 많아요.”

하기는, 우리도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면서 뭐 할 말 없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더니, 병원나가는 것도 그렇네? 그치?”

 

같은 병실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20대 중반 아가씨가 있다. 두 다리가 많이 다쳐서 걷는 것도 불편하고 간신히 목박을 집기도 하고 병실에서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상태. 그래도 친구들이 오면 외출복 갈아 입고 가까운 곳으로 나가서 밥도 먹고 들어오는 정도인데도 그런 사람도 집에서 지내기가 불편하다고 일찍 귀원했다. 하물며 혼자 거동도 못하는 아내야 말하면 뭐할까...

 

몸이 마음이 원하는 것들을 앞장서서 끌고 다니며 해결해주는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은 모른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몸이 마음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기도 하고 차라리 없었으면 통증이나 괴로움이 줄어들 것 같아 괴로워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간밤에는 3명이나 동시에 잠을 못 자게 문제를 일으켰다. 한 분은 새벽 3시가 채 안되어서 다리가 너무 아프다며 엄마를 찾으며 죽게 해달라고 엉엉 울었다. 그 분 나이가 할머니이신데도 엄마를 찾으며..., 간호사가 두 번이나 달려와서 가쁜 숨을 과호흡이 된다고 천천히 쉬라고 조졸해주고 약도 주었다.

 

또 한 분은 침상에서 변을 연속으로 보는 바람에 들락날락 간병인이 부시럭 거리고 말을 걸고, 또 한 분은 명절로 대신 온 임시간병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목소리 톤이 높아져서 소리소리 지른다.

 

... 여기도 평안한 집은 아니구나,”

 

어릴 때 명절 끝쯤이면 종종 울었던 기억이 난다. 열 살 무렵에 서러움과 외로움에 복받치는 느낌을 맛보다니,

 

할아버지 아버지가 장손이라 명절이면 종갓집의 34일 지지고 볶는 시끌벅적하던 잔치가 늘 벌어졌었다. 많은 친척들이 이 방 저 방에서 먹고 놀고 밤을 새며 이야기하고 (아마 화투판도

벌어졌던 것 같다) 그러다가 명절 끝날 쯤 학교를 다녀오면 갑자기 집안이 물 빠져나간 바다처럼 썰렁했다. 고요하고 사람 말소리도 안 들리는 적막강산. 어린 나이에도 다들 돌아가고 아무도 없는 그 고요한 충격이 슬펐다. 명절앓이로 겪는 외로움. 그 뒤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맞이하고 보내는 쪽보다는 머물렀다가 떠나는 손님 쪽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다! 애들아,”

 

고단해서 잠에 떨어졌는지 막내딸은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아내를 부축해서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돌아오는 느낌도 그렇게 썩 편하지는 않다는 걸 알았다. 머물렀다 떠나는 손님이 되어도 별로 해결이 안되네? 하면서,

 

아무도 모르고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은 그 미어지는 느낌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기저기서 출몰했다. 비단 명절만이 아니고 삶의 구석구석, 순간마다 출몰했다. 지독한 치통으로 밤을 새우며 데굴 구를 때 그랬고, 내 힘으로 온 식구를 몇 십 년 챙기고 보호할 수 있을까 가늠하며 버겁다고 느낄 때가 그랬다.

 

곁에 있던 아내가 희귀병으로 무너지는 걸 속수무책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면서 그랬고, 도무지 손에 꽉 잡히지 않고 오락가락 가물거리는 믿음이 못 마땅할 때 불안하면서 또 그랬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종종 결정의 순간마다 외롭다고 하듯, 가장 낮은 곳에 내려갈 때도 확실하게 그랬다. 가장 낮은 자리 그곳에 떨어지면 누구라도 오직 혼자가 된다는 사실을.

 

그냥 이런저런 일로 바쁘고 묻혀서 지날 때는 전혀 몰랐다. 마치 자루속의 기둥처럼 버텨주던 몇 가지들이 있어서, 건강, 자부심, 친구들, 의욕, 지갑 속 얼마의 돈 등, 그것들이 결핍이 되거나 불안으로 느껴지면 사람들은 여지없이 털썩! 주저앉고야 만다. 빈 자루가 바닥에 엉덩이를 털썩 던지듯 무너지면서,

 

그런데 묘하다. 혼자 그 낮은 곳에 머물러 본 사람만이 혼자 또 다른 가장 낮은 곳에 떨어진 사람을 이해한다. ... 그 혼자만의 두려움, 외로움, 그래, 아무도 오지 못하고 기어 나가지도 못하고 갇혀서 오직 하늘을 향해 신에게만 손 내밀던 그 느낌.

 

"힘이 되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나도 얼마 전 그 바닥에 혼자였었지, 어제였나? 그제였나...

끌어내줄 힘은 없어서 못하지만 기다려 줄께, 나도 바닥에서 일어나 나올 때 누군가 지켜보며 기다려주기를 바랬거든....“

 

이별이 아픈 것은 비단 다시 보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슬픈 것은 잊혀진다는 서러움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미운 사람이 되는 것보다 속상하는 것은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이 될 때처럼.

 

어느 시인이 그랬던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다만 스쳐지나가는 풀포기 일 뿐, 꽃이 되지 못한다고, 그러고 보면 우리가 많은 경우 힘들어 하는 것이 가난, 질병, 외로움, 실패의 그 자체가 아닌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곁에서 함께 해주거나 헤치고 일어나기를 응원해주고, 구덩이를 기어서라도 나오기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그때 절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장 낮은 곳에 있게 될 때는 누구나 혼자다. 그 당연하지만 괴로운 진리가 또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 또 다른 누구를 이해하는데 그 고통만큼, 그 외로움만큼 유익한 것이 있을까? 세상의 그 아무도 내 고통을 이해 못할 거라는 상상은 상상만으로도 좌절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내가 그 낮은 자리에 종종 머물렀다가 회복된 경험을 또 누군가 했을 것이고, 비록 종류야 다르더라도 최소한 짐작이야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 이는 하나님의 계명이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서로 보살피라는 부탁의 말을 하신 예수도 그래서 로마도 때려잡지 않고, 썩어빠진 유대교 제사장들도 하늘의 벼락으로 태워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치욕과 극한의 고통을 감수하며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들인 것 아닐까? 가장 낮은 자리에 우리와 같이 하시려고...

 

내가 이렇게 힘들 때마다 날마다 목 놓아 이름 부르며 왜 저를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왜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투정부리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지도 모른다. ‘설마 나를 잊지는 않으셨을까?’ 하여, 미워서라도 귀찮아서라도 내 이름을 기억해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일지도.

 

'하나님이여 저를 잊지 마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