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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165 - 결혼 26주년...>

희망으로 2014. 9. 3. 23:58
<잡담 165 - 결혼 26주년...>

병원 싱거운 밥상에 진저리가 나서 탈출 계획을 세웠다.

"저기 가까운 곳에 매운 알탕을 하는 곳이 생겼어!"
"우리 거기가서 밥 좀 먹자 나 병원밥 식욕이 떨어져 못살겟다.ㅠ.ㅠ"

부슬거리는 비를 무시하고 휠체어를 밀며 도착했더니...

- '점심 특선 - 12시에서 오후 2시까지'

"도대체 되는 게 없네..."
"그래도 명색이 오늘이 결혼26년주년 기념일인데..."
"영화보러가자!"

초밥 몇 개와 국수가 나오는 단골집에 갔다.
둘이 밥 나올 때까지 서로 딴 곳을 보며 심심하게 버티다가,

"우리 불륜아닌거 확실하고, 부부 맞네! "
"그려, 조용히 딴데 보며 할말이 없는걸 보니~~ㅎㅎ"
"그렇지? ㅎㅎ"

그런대로 저녁 떼우고 영화 보기 시작.

아...마음이 아프다. 
기껏 지겨운 병원을 피해서 왔는데,
이건 우리 지난간 필름을 재생시키는 것 같다.
그것도 우리를 앉혀놓고...

'두근두근 내 인생'

잠시 두근거리고 오~~래 가슴아프며 고단한 인생.
누가 인생이 다 그런거 아니랄까봐 뒷 감당하느라 눈물 무지 뺀다.

아픈 가족 하나로 온 식구가 허리 휘어지고,
그러다가 모금하는 방송출연하여 멍든 상처 드러내고,
살림비 병원비로 전전긍긍하다가 들어온 후원금에 
안도의 한숨 푸! 내쉬고,

회복 불능 진단에 잘 참던 환자의 비관이 겹치면
병원 계단에 앉아 무릅사이에 얼굴묻고 펑펑우는 것 까지,
'쌍둥이다 쌍둥이! 녹화인가? 흐흐...'

당사자인 아내는 울며 보고,
산 사람은 산다는 잔인한 나는 울지도 않고
한치 건너 남인 혈육은 또 살겠지? 하며 예측한다.

아픈 아들이 철없는 아빠를 감동시켜 
아빠의 아버지와 재회하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 사랑하고
아픈 아이 아니었다면 가족들이 서로 이렇게까지 사랑할까? 
아픈만큼 성숙하고 잃는만큼 오히려 넉넉해지는 인생마법!

다시 거리로 나온 도로에는 그사이 뚝 떨어진 싸늘한 밤공기
등짝으로 가슴팍으로 파고드는 한기가 되어
이게 날씨 때문이냐 꼬인 인생때문이냐?
오들오들 병원으로 쌩~ 꼬리날리며 귀가했다.

암만, 살아서 미워하며 지지고 볶는게 복이제, 하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