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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164 - 우리를 위해 찬송가 가사도 한 절을 빼주신 하나님

희망으로 2014. 9. 2. 01:52

<잡담 164 - 우리를 위해 찬송가 가사 한 절을 빼주신 하나님>


“내일까지는 퇴원을 해주셔야 합니다!”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셨으면...”

그랬다. 미루고 버티다 약속한 날짜가 내일로 다가와 있었다.
그 해, 가을이 시작될 무렵, 응급실로 들어와 중환자실을 거치고 그리고도 두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3주 이상은 그 병원의 의사가족도 허락이 안 된다는 철통같은 병원규칙을 두 번을 돌아 거의 세 번째도 중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도저히 더 이상은 미룰 수도 없어서 부랴부랴 확인도 안되고 찬밥 더운밥도 가릴 수 없이 전화로 예약을 하고 짐을 차에다 옮겨 실었다. 퇴원 수납을 하고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 여름  한 계절을 꼬박 넘긴 종합병원을 나서는데 가을바람보다 가슴이 더 썰렁했다.

“우리가 어디 한 두 번 하는 이사도 아니고, 괜찮아! 그럼,  짐보따리 싸서 옮기고 짐 풀고, 느닷없이 밤이고 새벽이고 또 응급실로, 몇 주 만에 또 다른 재활병원으로 옮기고...”

돌아보니 정말 그랬다. 장기입원이 안 되는 종합병원은 언제나 한 달을 채 못 채우고 나와야 했고, 그럼 그 전에 있던 병원은 자리가 없어 바로 들어갈 수 없으니 또 다른 입원할 병원을 인터넷으로, 소개로 뒤져야 했었다. 

어느 때는 보름 만에, 어느 때는 불과 1주일 만에 다시 응급실로 가야해서 짐 보따리를 차 트렁크에서 풀지도 못하고 실린 채로 다시 옮기기도 했었다. 무려 15곳이 넘는 병원에서 병원으로의 이사. 진절머리가 났다. 때론 밤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낮선 건물 낮선 병실, 낮선 사람들 속에서 서먹하니 짐 풀고 식어버린 밥 받아서 먹곤 하던 기억들이 참 쓸쓸했다. 잠이 들지 않아 뒤척이며 보내는 첫 밤은 몸이 더 고단하게 느껴지고,

그러다 죽이라도 사러 나가서 낮선 거리를 돌면서 이국땅에 헤매는 나그네 같기도 했고, 밤이면 운동을 하러 나서면서도 조심스럽고 아무도 텃세부리지 않는데도 공연히 위축이 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서러움이 울컥 몰려왔었다. 어쩌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 우리 아이들은 또 옮기는 곳마다 물어물어 찾아와야만 하고...

집도 방도 없지만 있어도 갈 수 없는 상태로 떠돈다는 그 생활들이 난민, 아니면 유랑극단보다 더 기약 없는 부평초 뜨내기였다. 그러다 지금은 한 병원에서 3년을 넘게 있게 되니 정말 살 것 같다. 아픈 사람이 있어도 간병에만 신경 쓸 수 있다는 게 다 행복으로 느껴지는 이 어처구니없는 심정.

이제 그 떠돌이 삶이 좀 잠잠해진 지금, 찬양 가사 중 한 가지가 유독 가슴을 파고든다.

[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 늘 보호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정말 추풍낙엽처럼, 끈이 떨어진 연 같은 형편의 우리를 이제 더 이상 동가숙 서가식 여기저기 떠돌며 먹고 자고 치료받지 않도록 안정시켜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 서럽고 고단하던 시절을 몇 년째 우리에게서 떼어내셨다. 아이들 얼굴도 자주 볼 수 있도록 병원 가까운 곳에 불러주시고...

예전 비참할 때를 떠올리면 꿈같은 대접을 받는다.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을 정도로,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돈 벌 처지가 못 되고, 돈 나올 확실한 재산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치지 않고 들어가는 비용만큼 늘 들어오게 하셨다. 사람을 통해서, 혹은 방송 출연, 책 판매, 글을 보내서 받는 원고료 조금 등 갖은 방법으로.  

- 내 모든 형편을 아시는 주께서 늘 돌보아 주신 것 아니면 불가능한 생존이었다.

다시 가을이 시작되었다. 9월.
이 9월에는 아내와 나의 결혼기념일이 있고, 내 생일도 있고,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던 아내가 병을 진단 받고 본격적으로 투병이 시작되기도 한 달이다. 그리고 자주 가을 찬바람을 맞으며 병원을 이동하며 유난히 힘들어 하던 감정도 담긴 계절이다.

이제 그 서럽고 서럽던 계절에도 이사를 하지 않게 된지도 몇 해째다. 본래 있던 가사가 사라졌다. 처음부터 5절 가사였는데, 《통일 찬송가, 1983》편집 때 아래 4절을 빼어버렸다.

[ 이 짧은 인생 살 동안 내 갈 길 편할지 / 혹 환난 고초 당할지 난 알 수 없도다.]

우연일까? 가사의 내용대로 되면 너무 힘들까봐 주님이 사라지게 하신 걸까? 가사속의 불안과 고초를 찬송가책에서 조차 빼내시고 입에 담지 않도록 해주셨다. 물론 다시 넣거나 안 넣거나 사실은 우리 가정을 감안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우연일 뿐인 것을 안다. 그럼에도 유독 이 가사 한 절만 빼주신 것은 내 얼어붙은 서러움을 씻어주시는 은혜라고 믿고 싶다. 

그만큼 힘들었던 시절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