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제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해드릴까 합니다. 지금부터 그러니까 약 20년 전이었습니다. 공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김해에 있는 샛별교회라는 작은 교회를 담임 전도사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목회자가 없는, 6-7분 정도의 성도가 있는 작은 교회여서 장교 생활을 하면서도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 교회를 섬긴 지 1년 반 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옆에 그야말로 시골 촌집에 작은 사택이 마련되었습니다. 아직 군복무 중이었기 때문에 평일에는 부대 근처에서 살고 주말에만 하루 이틀 그 사택해서 자면 되었습니다. 허물어져가는 기와집을 손질한 것이라 흙냄새도 나고, 집 밖에는 축사가 있어서 가축 냄새도 나는 집이었습니다. 어느 토요일, 군대에서 훈련을 마치고 늦게 교회당에 도착했습니다. 아내는 일찍 잠이 들고 저는 주일 준비를 좀 더 하다가 늦게 잠자리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겁니다. 내가 괜히 교회를 맡는다고 해가지고 이게 무슨 고생이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갓 신혼인데, 무슨 흙냄새에 닭똥 냄새 나는 집에 신부를 데려다 놓고 도대체 뭐하는거냐....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고생한다고 해서 뭐 대단히 나를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보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내일 설교를 하기 싫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그때가 20대 후반, 정말 혈기왕성할 때였습니다. 투덜투덜 불평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했고, 누군가가 제게 걸어왔습니다. 그분 뒤로 안개 속에 빛이 비췄습니다. 감히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땅에 딱 엎드렸습니다. 그분의 발만 쳐다봤습니다. 가죽으로 만든 샌달이었습니다. 그분의 그림자가 저를 덮었습니다. 낮고 무거운 음성으로 제게 말씀했습니다. “응도야, 이제 가자.....” 아... 순간... 이분이 바로 예수님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어디를 말씀이십니까?” “너는 이제 이 땅에서 할 일을 다 한 것 같다. 이제 나와 함께 가자.” 너무 놀라서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할 일을 다했다니요? 아직 목사 안수도 안받았고... 교회도 이제 막 시작했고... 앞으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러자 그분이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다... 내가 네게 너무 많은 일을 맡겼나보다... 그렇게 힘이 들고 어려운데 너는 이제 그만 일해도 되겠다. 그만 나와 함께 가자.” 그리고 저의 얼굴 앞으로 손이 쑥 내려왔습니다. 으헉... 하고 놀랐습니다. 손과 발을 사용해서 뒤로 믈러났습니다. 다시 그분이 말씀했습니다. “이제 그만 가자! 네가 할 일은 이제 없다.” 저는 황급하게 뒤로 물러나면서 외쳤습니다. “아닙니다. 예수님... 아닙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정말 많습니다. 정말 많습니다아아아아아~~~”하다가 벌떡 깼습니다. 꿈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가슴 두근거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가 마라톤을 완주한들 그렇게 가슴이 뛸까요? 눈에서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자고 있는 아내를 두고 교회당으로 갔습니다. 새벽 3시... 5시가 되어야 주일 새벽기도를 시작할텐데.... 한 2시간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다시는 사역으로 불평하지 않겠다고... 다시는 게으름을 피지 않겠다고... 다시는 허락하신 일에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예수님, 한번만 봐주세요... 안그럴께요.... 울면서 가슴을 치면서 기도했습니다. 엎드려 기도하는데 자꾸만 제 머리 위로 예수님의 손이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꿈이었지만 저는 주님이 제게 찾아오신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제게 메시지를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불평과 불만 없이 최선을 다해 허락하신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20년이 지났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가 쓴 소설 중에 ‘지옥의 단편’이라는 짧은 소설이 있습니다. 그 소설에는 예수님을 만났던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절름발이였었고, 또 한 사람은 창녀였고, 다른 한 사람은 소경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만나셨고 고쳐주셨고 새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한 참 후 주님이 다시 그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아니 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그대들을 치료하고 건져주지 않았던가?” 그들은 하나 같이 대답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당시에는 주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변화된 것 같았는데, 세월이 지나가면서 변화는 과거형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자신들을 새롭게 개혁하고 변화시켜나갈 동력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19세기 말, 영국 사회를 살던 민중들의 척박한 삶의 현실과 그들에 대해 무기력했던 영국 교회를 풍자하는 글이었습니다. 고백하건데 저는 때로 그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삽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회개하고 결단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말씀으로 인한 마음과 삶의 변화, 존재와 관계의 변화는 이미 과거형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Change’라는 말이 동사가 아닌 명사로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능동태가 아닌 수동태로만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주님을 만난 감격과 은혜에 대한 감사는 이미 다 지나가버렸습니다.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헌신하겠노라고 회개하고 결단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비교하고 불평하고 고개를 흔들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다가오는 한 해, 변화와 성숙이 계속되는 삶을 살겠습니다. 말씀이 날마다 내 안에서 나를 인도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변화’가 과거의 추억이 아닌 현재의 동력이 되는 삶을 살겠습니다. 날마다 변하는, 날마다 더 가까이 가는, 날마다 복음이 삶이 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가정 상담 연구원 215-869-5703, edwinlee@naver.com 초대교회 -> http://www.chodaepa.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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