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재철 목사님이 설교에서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이야기하셨다. 그 분이 아직 목회자가 아닐 때 어느 날 갑자기 하반신이 마비되어 앉아서 7년을 사셨다. 가장이 되어버린 사모님은 돈을 벌러 가면서 아침에 뒷산 바위에 데려다 놓고 저녁에 퇴근하면서 들러 업고 집으로 가셨다. 무려 7년을 그렇게 눈이 오나 추우나 하셨는데 어느 날 소리를 지르는 걸 듣고 뛰어간 가족 앞에서 그 목사님이 소나무를 잡고 일어서서 하늘에 감사하시고 계셨다는, 그 후 목사님이 되시고, 자녀분도 목사님이 되셔서 서대문 어느 감리교인가 시무하신다던.
그 간증을 나는 오고 가는 차 안에서 카세트로 들었다. 사지마비에 정신마저 온전치 않아 가위에 눌린 아내를 강원도 정동진 산속 기도원에 놓고 충주로 일하러 다니던 때였다. 놀라면서도 속으로 이랬다.
‘우리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7년씩 감당할 자신 없어, 그 전에 아내가 끝이 나던가, 내가 못 견디고 도망 갈거야.’
그런데 벌써 6년이 되었다. 그때 도저히 못 견딜 거라던 7년에서 이제 1년이 남았다. 아내는 겉모습은 아주 심할 때의 찐빵에서 날씬한 만두처럼 변했고, 손가락도 오그리지 못하던 전체 마비에서 많이 나아져 밥숟가락도 든다. 여자에게 생명 같은 외모도 그런대로 유지를 하고, 아무 말 안하고 있으면 휠체어를 타는 그저 좀 장애가 있는 정도의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난치병의 후유증과 진행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실명된 눈은 점점 말라들어 가면서 안구가 수축되고 있어 마음을 심히 불편하게 한다. 눈이 몸값 천 냥 중 구백 냥이라는 말도 있는데, 밤낮없이 씨름하는 대소변 생리도 전쟁 같다. 간병하는 나를 가장 괴롭힐 뿐 아니라 꼼짝도 못하게 하는 주범이다. 여전히 두 달에 한보따리씩 먹어치우는 약들과, 살아서는 그만두지 못하는 정기 혈액검사도 그대로고, 두어 번에 한 번씩 맞아야하는 면역억제 표적치료제 항암주사도 늘 빚 덩어리에 근심거리다.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더라는...
그러나 다행히 우리는 하루씩 행복하게 산다. 비록 남은 날들이야 전부가 별로 전망이 밝지 못해도 하루는 잘 지낼 수 있다는 이 신비한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주위의 도움도 받고, 아이들이 제대로 바른 길을 가주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들이 마침내 도달할 다음 세상이 점점 기다려지고, 믿어진다는 것이다.
지난 주 처음으로 병원 바깥 교회에서 드린 예배에서 목사님이 설교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두 번 죽는데 한 번은 흙에서 난 몸이 죽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질그릇 같은 흙속의 보물인 영혼이 죽는 것이라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 두 번째는 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미 값을 주고 대신 매를 맞은 예수님의 대속 때문에! 그 큰 복을 받았는데 몸이 죽는 것에만 한없이 슬퍼하고 살 수는 없겠다는 마음이 더해졌다.
몸 안에 갇혀 사는 동안이니까 제한되고, 감정의 지배도 받고, 세상에 끌려 다닐 수도 있지만, 눈까지 멀고 기억까지 잃어버릴 수는 없지 않을까? 망가진 아내의 몸을 넘어 건강하고 깨끗할 또 하나의 생명을 본다. 그대로 천국에 들어갈 죽지 않은 영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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