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그저 오늘 이야기...

난 니가 좋아!

희망으로 2013. 9. 12. 14:08


<난 니가 좋아>

어제 밤에 저녁 먹고 잠시 누웠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학교 기숙사에 있는 딸아이에게서 호출 명령이 왔다.
배드민턴 라켓을 사야한다고, 과제평가에 들어가는데 없다고,

나는 아무 때고, 어디에 있던지 아이가 부르면 간다.
그래서 호출 명령이라고 했다.
집사람은 내가 딸아이의 전화만 받으면 튀어나간다고 무지 놀린다. 
딸 전화만 오면 싱글벙글 웃고 기운이 넘친다고,

집사람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
병원생활 고단한데 딸아이기 부르면 신나기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거,
나도 그냥 계속 뒹굴 거리며 쉬고 싶고, 
불려 다니고 와서 바삐 잔일을 하는 게 피곤하다는 거,

그런데도 부르면 기쁜 듯 벌떡 일어나서 나가는 건 이유가 있다.
아이는 5년 동안 혼자 지내며 필요할 때 내가 곁에 없었다.
언젠가 한번은 비오는 날 아빠가 데리러 와주었으면 몹시 그리웠단다.
그 말이 내내 내속에 빚처럼 남아 이제 그걸 갚는 중이다.
만나면 반갑다고 어깨동무하거나 품에 안으면 이 말을 한다.

“난 니가 좋아!” 

어느 분이 반찬을 택배로 보내주셔서 아이들 자취방으로 갔다.
병원 냉장고가 적어 넣어 둘 곳이 없어서.
그런데 아이들 방 냉장고 안이 엉망이다.
상한 반찬 넘친 국물로 바닥은 찐득거리고...

치우기 시작한 청소가 기어이 집안 전체로 번졌다.
음식물 국물을 버리고 쓰레기봉투에 담으려고 보니 설거지통이 만땅이다.
몇 날을 쌓아두었는지 찌들고 마르고, 수저, 머그컵이 다 나와 있다.
그래서 설거지로 일이 번졌다.

설거지하는 김에 아이 책상위에 쌓인 컵들, 접시, 수저도 가져왔다.
책상위에 먹고 난 두유 통, 라면용기. 과자봉지들,
쓰레기봉투에 담으려다보니 거기도 수북이 쌓였다.
종량제 봉투를 두 개, 세 개, 채워 나가다 보니 아이방 전체가 쓰레기장이다.

화가 치솟는다. 이게 사람방이야? 쓰레기장이야?
갑자기 깨끗이 치우고 살지 않는 아이가 정상이 아닌 폐인같이 느껴졌다.
마침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빨리 병원으로 돌아와달라고,
거기대고 성질을 나는 대로 쏟아 부었다.
“애를 어떻게 낳았길 레 이 모양이야! 이게 사람이 사는 데야?” 그러며,

병원으로 돌아와서 또 한바탕을 퍼부었다.
나는 아침에 눈 뜨자 한의원부터 가서 어깨와 목에 침을 맞고 왔다.
좁은 보조침대에서 자다보면 종종 어깨가 뭉치고 근육통이 심하게 와서,
게다가 아침밥도 굶었다. 아내가 속이 안 좋다고 밥상을 놓았다가 내려놓은 채, 
예민해지고 배고픈 짐승이 스트레스까지 받았으니 심한 말이 나온다.
“이렇게 살기 싫어!“

커튼을 조금 치고 울려고 하는 아내, 
이래 저래 환자에게 퍼붓고 나니 미안하기도 하고, 
그냥 두면 또 종일 속을 태우고 분명 어디 한곳이 탈이 날거 같다.
그래서 돌려서 억지로 달랜다. 아쉬운 사람도 나, 미안한 사람도 나,

“난 니가 좋아”

목도 돌아가지 않고, 속은 쓰리고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불편하다. 
또 길게 멀리까지 이러고 살 앞날이 한 눈에 들어온다. 
5년 10년 뒤 카렌다까지 보이면서 저 세월을 이런 식으로 어떻게 산담?
이 모양 이 꼴로,
무슨 재미, 무슨 희망으로,

하루만 따져보면 안 망하고, 안 지쳐서, 하루살이로 살려고 작정했다.
오늘 당장 힘들 일 아니고, 오늘 당장 죽는 거 아니다 하면서,
그런데 종종은 한 번에 밀려온다.
그 고단할 짐들이 파도덩이처럼 한 방에, 일 년치 십 년 치가, 
그런 무게에 깔리는 날이면 당장 한 시간도 벅차고, 
정작 하루도 살 의욕이 안 생긴다.

그런데 꼭 그럴때면 누군가 슬쩍 한마디를 보태신다.
가슴속에서 들리는지 하늘위에서 들리는지 애매한 발신처,
미운 사람이 휘두르는 창 칼 보다 위력 있게 나를 붙잡아매는 한마디.

“난 니가 좋아”

그러면 속으로 나는 반박한다. 
‘에이, 그런 말 하지마세요. 나도 그런 말 딸에게도 해보고
아내에게도 해보았는데 그게 꼭 좋아서, 맘 편해서 하는 말만은 아니더라구요.
그냥 안 할 수가 없어서도 하고, 미안해서도 나오는 말이더구만요,‘

그렇게 못 믿는다고 반박하고도, 
그런데도 그 말에 가슴에 얼었던 딱딱한 게 녹는 걸 느낀다.
다시 앞으로 가야지! 다잡게 한다.
참 별난 힘을 가진 말,

“난 니가 좋아!”

오늘도 그 한마디에 아픈 목을 부여잡고 일어난다.
"여보, 또 치료실 가야지!"
<난 니가 좋아>
어제 밤에 저녁 먹고 잠시 누웠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학교 기숙사에 있는 딸아이에게서 호출 명령이 왔다.
배드민턴 라켓을 사야한다고, 과제평가에 들어가는데 없다고,
나는 아무 때고, 어디에 있던지 아이가 부르면 간다.
그래서 호출 명령이라고 했다.
집사람은 내가 딸아이의 전화만 받으면 튀어나간다고 무지 놀린다. 
딸 전화만 오면 싱글벙글 웃고 기운이 넘친다고,
집사람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
병원생활 고단한데 딸아이기 부르면 신나기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거,
나도 그냥 계속 뒹굴 거리며 쉬고 싶고, 
불려 다니고 와서 바삐 잔일을 하는 게 피곤하다는 거,
그런데도 부르면 기쁜 듯 벌떡 일어나서 나가는 건 이유가 있다.
아이는 5년 동안 혼자 지내며 필요할 때 내가 곁에 없었다.
언젠가 한번은 비오는 날 아빠가 데리러 와주었으면 몹시 그리웠단다.
그 말이 내내 내속에 빚처럼 남아 이제 그걸 갚는 중이다.
만나면 반갑다고 어깨동무하거나 품에 안으면 이 말을 한다.
“난 니가 좋아!” 
어느 분이 반찬을 택배로 보내주셔서 아이들 자취방으로 갔다.
병원 냉장고가 적어 넣어 둘 곳이 없어서.
그런데 아이들 방 냉장고 안이 엉망이다.
상한 반찬 넘친 국물로 바닥은 찐득거리고...
치우기 시작한 청소가 기어이 집안 전체로 번졌다.
음식물 국물을 버리고 쓰레기봉투에 담으려고 보니 설거지통이 만땅이다.
몇 날을 쌓아두었는지 찌들고 마르고, 수저, 머그컵이 다 나와 있다.
그래서 설거지로 일이 번졌다.
설거지하는 김에 아이 책상위에 쌓인 컵들, 접시, 수저도 가져왔다.
책상위에 먹고 난 두유 통, 라면용기. 과자봉지들,
쓰레기봉투에 담으려다보니 거기도 수북이 쌓였다.
종량제 봉투를 두 개, 세 개, 채워 나가다 보니 아이방 전체가 쓰레기장이다.
화가 치솟는다. 이게 사람방이야? 쓰레기장이야?
갑자기 깨끗이 치우고 살지 않는 아이가 정상이 아닌 폐인같이 느껴졌다.
마침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빨리 병원으로 돌아와달라고,
거기대고 성질을 나는 대로 쏟아 부었다.
“애를 어떻게 낳았길 레 이 모양이야! 이게 사람이 사는 데야?” 그러며,
병원으로 돌아와서 또 한바탕을 퍼부었다.
나는 아침에 눈 뜨자 한의원부터 가서 어깨와 목에 침을 맞고 왔다.
좁은 보조침대에서 자다보면 종종 어깨가 뭉치고 근육통이 심하게 와서,
게다가 아침밥도 굶었다. 아내가 속이 안 좋다고 밥상을 놓았다가 내려놓은 채, 
예민해지고 배고픈 짐승이 스트레스까지 받았으니 심한 말이 나온다.
“이렇게 살기 싫어!“
커튼을 조금 치고 울려고 하는 아내, 
이래 저래 환자에게 퍼붓고 나니 미안하기도 하고, 
그냥 두면 또 종일 속을 태우고 분명 어디 한곳이 탈이 날거 같다.
그래서 돌려서 억지로 달랜다. 아쉬운 사람도 나, 미안한 사람도 나,
“난 니가 좋아”
목도 돌아가지 않고, 속은 쓰리고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불편하다. 
또 길게 멀리까지 이러고 살 앞날이 한 눈에 들어온다. 
5년 10년 뒤 카렌다까지 보이면서 저 세월을 이런 식으로 어떻게 산담?
이 모양 이 꼴로,
무슨 재미, 무슨 희망으로,
하루만 따져보면 안 망하고, 안 지쳐서, 하루살이로 살려고 작정했다.
오늘 당장 힘들 일 아니고, 오늘 당장 죽는 거 아니다 하면서,
그런데 종종은 한 번에 밀려온다.
그 고단할 짐들이 파도덩이처럼 한 방에, 일 년치 십 년 치가, 
그런 무게에 깔리는 날이면 당장 한 시간도 벅차고, 
정작 하루도 살 의욕이 안 생긴다.
그런데 꼭 그럴때면 누군가 슬쩍 한마디를 보태신다.
가슴속에서 들리는지 하늘위에서 들리는지 애매한 발신처,
미운 사람이 휘두르는 창 칼 보다 위력 있게 나를 붙잡아매는 한마디.
“난 니가 좋아”
그러면 속으로 나는 반박한다. 
‘에이, 그런 말 하지마세요. 나도 그런 말 딸에게도 해보고
아내에게도 해보았는데 그게 꼭 좋아서, 맘 편해서 하는 말만은 아니더라구요.
그냥 안 할 수가 없어서도 하고, 미안해서도 나오는 말이더구만요,‘
그렇게 못 믿는다고 반박하고도, 
그런데도 그 말에 가슴에 얼었던 딱딱한 게 녹는 걸 느낀다.
다시 앞으로 가야지! 다잡게 한다.
참 별난 힘을 가진 말,
“난 니가 좋아!”
오늘도 그 한마디에 아픈 목을 부여잡고 일어난다.
"여보, 또 치료실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