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억울할까?>
병원 저녁 밥 차가 오기 전부터 아내와 툭탁거리고 있었다.
아이 문제로 생각이 달랐는데 쉽게 수용이 안 된다. 아무래도 불길하다.
결국은 아내가 두 어 숟가락 먹지도 않고 놓아버린다.
그럼 나도...
그 길로 아이 학교로 가서 아이를 태워 시외버스터미널로 데려다 주었다.
야간자습도 포기하고 예전 중학교친구가 하는 야외기타공연에 간다.
응원인지 동참인지 차로 두시간이나 달려간단다.
아내는 평일이고 밤에 출발해서 막차를 타고 새벽이나 되어야 돌아오는 일정이
많이 맘에 걸린다고 만류를 했다.
나보고도 아이를 설득해서 안 가게 하라지만 뾰족이 말려야만 할 확신이 안 선다.
그래서 그냥 아이 뜻대로 하게 두었더니 기어이 강행을 했고, 아내는 기분이 많이 상했다.
둘이서 맨날 합작해서 움직이고 자기만 왕따를 시킨다는 뭐 그런 섭섭함...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 전혀 없었다.
그저 남에게 해가 되지 않고, 자신을 해치지 않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걸 그냥 동의를 해줄 뿐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자꾸만 감정을 실어서 나를 몰아 부친다.
무조건 딸만 편든다고 하면서, 그게 아닌데 뒤집어 보여줄 버선목이 없다.
모처럼 된장찌개를 따로 끓여서 맛있게 먹으려고 했는데 물거품이 되었다
정말 지겹다... 싸움도 안 되면서 때려치울 수도 없다.
이렇게 생각이 다를 때면 뭐 헤어질 수도 있거나,
주먹질 직전까지 대판 싸울 수라도 있어야하는데 나는 원천봉쇄가 되어있다.
아내가 중증환자니 내겐 아무른 선택권도 없다. 뭐 이런 경우가 있나?
미치고 팔짝뛰겠다.
뛰어 나갈 수도, 나가서 안 돌아올 수도 없는 외길.
환자를 버렸다는 불문곡직 내 책임론 앞에 멍들어가는 영혼...
이혼조차 생각으로도 허용안하는 이것은 지옥이다 ㅜ.ㅜ
지겨운 중증환자의 남편자리...
아이는 출발하면서 메시지를 하나 보내왔다.
휴대폰도 학교에 압수당해서 와이파이를 이용해 내 페이스북으로 글을 보냈다.
엄마에게 전해주라면서,
<아빠 카스 (휴대폰 소통용 카카오스토리의 준말) 너무 공개적이라 엄마한테 못 보내겠어
아빠가 전달해주셈
- 엄마 나 기숙사라 평일 날 저녁에 이렇게 움직이는 거 못하는 거 알잖아
근데 딱 맞춰서 물론 잘한 짓은 아니지만 퇴사해서 갈 수 있게 되었는데
나현이가 비록 몇 곡 안 하긴 하지만 가고 싶어
나중에 보면 이거 별거 아닌데에 시간 많이 투자했다고 생각이들 수도 있지만
일단 지금은 중학교 때 어떻게 보면 젤 많이 시간 보낸 친군데
이렇게 갈 방법도 시간도 다 났고 언제이런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고
아마 일 년에 한 번도 있을까 말까일거야
그니까 이번에만 허락해줘 난 엄마 아빠중 한명한테만 말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아빠는 그게 아닌가봐 둘 다 한테 말하지 않아서 미안하고
앞으론 이런 일 있으면 엄마한테도 의견 물어볼게
근데 나도 사람이니까 그냥 얼굴 보는 사람한테 말하게 되는거야
굳이 아빠한테만 말 한다 이런 거 아니니까 서운해하지마 기분 풀고 미안해
될 수 있으면 일찍올 게 내일 안 피곤할거야 오늘 많이 자뒀거든.....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러뷰♡♡♡아빠랑맛있는거먹어~>
...그대로 아내에게 보내주었다.
무작정 나선 길, 운동을 하러간다고 나왔지만 영 의욕이 안 생긴다.
배는 고파서 자꾸 신경도 더 예민해진다.
‘에라, 설렁탕이나 한 그릇 먹고 기운을 내자!’
아무 생각 없이 몇 술갈 먹다가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나는 나대로 대놓고 펀치도 못 날리고,
화난다고 판도 깰 수도 없도록 발목 잡혔다고 억울해 했다.
그런데 아내는 아내대로 휘익~ 나가서 바깥바람 씌고 돌아다니는 내가 얼마나 부러울까...
불이 나던 싸움이 나던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삭혀야 하는 처지라니,
정말 누가 더 억울한 걸까? 알 수가 없다.
다시 돌아온 병실,
더 기가 막히고, 꼼짝도 할 수 없는 감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싸우고 화가 나도 내게 손을 빌려야 하는 아내의 병 상태,
얼굴 붉히고 다시는 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지겨움까지 욱 했어도,
별 수 없이 소변처리 해주고 배변 도움을 주기위해 얼굴 맞대고 합동해야한다니...
이런 해괴하고 빼도 박도 못하는 울타리에 갇힌 우리 두 사람이 어이가 없다.
환자는 아픈 고통과 제한된 활동범위로 생기는 화를 보호자에게 풀어대고,
보호자는 긴 병수발로 쌓이는 스트레스를 또 환자에게 쏟아 붓는 반복,
말도 안 되지만 정말로 이게 병원생활의 진실이다.
전혀 감동적이지 않는 현장, 현실...
처음에는 무지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두려움으로 빌고 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이 되고, 포기하고...
그때부터는 무채색 회색이 되어 간다. 밝은 것도 어두운 것도 아닌 회색 지겨움...
많은 장기 투병의 환자와 그 가족들의 모습이 유난히 눈에 선하고
가슴을 파고드는 밤이다.
그래서 그 회색을 색칠해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들어오는 길에 마트를 들러 옥수수차 1.5리터, 계란이랑 두부랑,
또 끓여먹을 찌개용 된장도 샀다. 간식으로 먹을 짜먹는 요구르트랑 초코렛도 샀다.
아내는 계란을 노른자는 거의 익히지 않고 흰자까지도 바깥만 살짝 삶은
내가 개발한 반의 반숙(4분의1 삶은 계란)을 무지 잘 먹는다.
목도 메이지 않고 날계란처럼 비리지도 않고 거의 마시듯 먹어도 되니!
오늘도 4개를 삶아 2개씩 먹었다.
조금 색상이 들어갔다. 마음바탕에!
나는 새벽 한시에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할 아이를 기다렸다가
집에 무사히 데려다 놓고 돌아와서 잠을 자야 한다.
안 그래도 어차피 자다가 두 번, 세 번은 일어나야 하니 뭐 그게 그거다!
오늘 하루도 길었다. 하루살이의 황혼이 다가온다. 밤 1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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