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의 미움>
이 봄이 밉습니다.
멀리 산에 따뜻한 기운이 가득차보입니다.
지금쯤 우리 고향에는 얕은 산마다
연두색들이 만발 할 겁니다.
봄이면 아지랑이 피는 논밭 사이를 지나
그늘 언 땅을 밟으며 마을 산을 올랐습니다.
나무 사이로 햇빛이 따사롭고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그러나 벌써 몇 해 째
봄은 그야말로 ‘봄’이 되고 말았습니다.
병실에서 유리창너머로 눈으로만 보는,
거리의 봄 빛깔 옷을 입은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가벼운 등산복에 작은 가방 멘 사람들도 부럽습니다.
누구는 저 좋은 햇살아래 산을 오르내리고
우리는 병실에 굵은 올가미를 메어 놓으시고...
집사람은 수시로 울렁거림과
불편한 장을 비우느라 씨름하다 지칩니다.
작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던 글들을
꼭 일년만에 뒤적거려 보았습니다.
일 년을 짤라내고 감쪽같이 이어놓은 필름처럼
제자리로 돌아와 있습니다.
그 병원 그 침대 그 병 증세,
그리고 같은 기도의 제목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제자리로 오는지요?
작년의 봄이 다시 재현이 될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이 봄이 밉습니다.
봄이 왔다가 목전에서 가버리는 것을
몇 해나 보았는지 모릅니다.
'아내 투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뚱맞은 오른쪽 눈 (0) | 2013.06.08 |
---|---|
누가 더 억울할까? (0) | 2013.05.28 |
사랑없이도 하는 일 (0) | 2013.04.30 |
깨는 꿈이 서러워 (0) | 2013.04.20 |
아내의 눈을 잃어버린 날 (0) | 2013.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