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더 힘들지도 몰라...>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했다.
바로 지척의 도버해협만 건너면 그렇게 가보기를 바라던
영국 생활신앙공동체 ‘브루더호프’가가 있는데...
프랑스 수도원 ‘떼제공동체’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다음 행선지로 기대하던 ‘브루더호프’,
프랑스 수도원 ‘떼제공동체’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다음 행선지로 기대하던 ‘브루더호프’,
가정을 가진 가족들의 생활공동체로 당시 내게는 닮아서 살고 싶던 최고의 모델이었다.
남을 험담하지말고 ‘직접, 솔직히, 조용히’ 서로 풀고 사는 믿음생활의 모범적 공동체,
남을 험담하지말고 ‘직접, 솔직히, 조용히’ 서로 풀고 사는 믿음생활의 모범적 공동체,
이 땅에 천국이 있다면 가장 가까운 모습이라고 믿었던 공동체,
같이 동행해주기로 했던 독일선교사로 계시던 목사님은 일정이 바뀌어버렸고,
같이 동행해주기로 했던 독일선교사로 계시던 목사님은 일정이 바뀌어버렸고,
우리에겐 편도 티켓과 고작 백달러정도의 현금밖에 없었다.
가난한 불법체류노동자로 찍혀 입국 거부될 게 너무 빤하다고 주위에서 모두 말렸다.
걸어서도 못가는 현대판 가난한 순례자가 되어 버렸다...
천국은?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상상한다.
천국은?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상상한다.
춥지도 배고프지도 않고, 슬픔도 이별도 없는 부족함이라곤 하나도 없는 상태,
모두가 미워하지 않고 평안과 사랑이 잔잔히 흐르는 삶,
이 땅위에서 가장 그 상상과 가깝게 살고 있는 곳이 있다면
이 땅위에서 가장 그 상상과 가깝게 살고 있는 곳이 있다면
바로 그 생활공동체 ‘브루더호프’일거라고 믿었었기 때문에
정말 가서 머무르며 보고 듣고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천국에 대해서 좀 다른 생각을 한다.
과연 내가 외롭지 않았을 때가 더 천국에 들어갈 만한 사람으로 살았던가?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았을 때가 감사와 너그러움으로 지냈던가?
이별의 슬픔과 각종 고난으로 무기력한 고통을 당하지 않을 때가 더 겸손하고 친절했던가?
가족 간조차 아무 도움도 필요 없고, 나도 도와줄 필요 없을 때가 정말 행복한 관계였던가?
대답은 그다지...
부자도 비난을 받고, 인기와 명예를 넘치도록 받던 사람도
그런데 지금은 천국에 대해서 좀 다른 생각을 한다.
과연 내가 외롭지 않았을 때가 더 천국에 들어갈 만한 사람으로 살았던가?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았을 때가 감사와 너그러움으로 지냈던가?
이별의 슬픔과 각종 고난으로 무기력한 고통을 당하지 않을 때가 더 겸손하고 친절했던가?
가족 간조차 아무 도움도 필요 없고, 나도 도와줄 필요 없을 때가 정말 행복한 관계였던가?
대답은 그다지...
부자도 비난을 받고, 인기와 명예를 넘치도록 받던 사람도
고독을 못 견뎌 자살을 수시로 하는 세상,
외부의 조건이나 충족이 결코 행복과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본다.
나도 아내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기 전에는 나만의 감옥에 갇혀 나와 주변을 참 많이도 괴롭혔다.
나도 아내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기 전에는 나만의 감옥에 갇혀 나와 주변을 참 많이도 괴롭혔다.
신기하게도 생지옥을 견디면서 아무것도 그 고통과 괴로움을 대신 해주지 못하는걸 알았다.
세상의 많은 대상들이 아무 힘도 없는 허상이라는 걸 깊이 실감했다.
오히려 그 고통과 체념의 순간들을 통과하고 겪으면서 새로운 대상,
오히려 그 고통과 체념의 순간들을 통과하고 겪으면서 새로운 대상,
새로운 관계, 새로운 목적지의 희망을 꿈꾸기 시작했다.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쓸모없는 일들인지를...
어쩌면 천국은...
우리를 무한정 무조건 안락의 상태로 살게 하는 그런 곳이 아닌지 모른다.
고통이라곤 가시하나 찔린 만큼도 없는 곳이 천국일거라는 상상,
배고픔은 고사하고 허기도 없고, 아무도 누군가를 도와줘야할 손톱만큼의 필요도 없고
상황도 없는 관계가 천국일거라는 기대,
그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그런 곳에서 나눔과 친절, 배려, 사랑이 과연 필요하기나 할까?
그런 곳에서 나눔과 친절, 배려, 사랑이 과연 필요하기나 할까?
겸손과 자신을 낮추며 남을 높이는 일은?
순종이나 인내도 필요 없고, 은총도 위로도 더 이상 필요 없는 삶이라...
예수나 제자들이나,
예수나 제자들이나,
또 그 길을 목숨을 바쳐 걸어간 숱한 사람들이 자신의 유익이나 행복을 위해 살지 않았다.
고난과 헐벗음, 비난과 모욕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나아지기를,
천국시민으로 가깝게 가는 삶으로 도와주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제 그런 삶들이 더 이상 필요 없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일까?
천국이 달콤하고, 아무 부족함도 없고,
이제 그런 삶들이 더 이상 필요 없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일까?
천국이 달콤하고, 아무 부족함도 없고,
눈물 이별 아픔 자책도 없는 장소이기를 자주 자주 그리워하지만
그건 순전히 도망가고 싶은 욕심인지도 모른다.
이 땅에서 너무 고달파서 간구하는...
하지만 어쩌면 천국은 더 우리가 자신을 의지하지 않도록
하지만 어쩌면 천국은 더 우리가 자신을 의지하지 않도록
자신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한가지도 없을지 모른다.
자기 혼자서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않도록 누군가의 도움을 더 받도록 할지도 모른다.
더 많은 서로를 돌보는 삶을 살도록 더 많은 일들이 우리를 기다릴지 모른다.
천국은 우리의 그림과는 다르게
천국은 우리의 그림과는 다르게
지금보다 더 고달프고 더 힘들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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