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채운 답안지>
어제 졸업식을 마친 아이가 오늘은 아침부터 3년을 다닐 고등학교로 등교했다.
아직 입학식도 하지 않은 학교로 열흘간, 하루 6교시와 두 시간 자율공부를 하러 나간다.
“아빠 내일 가정조사 한다는데 아빠 엄마 직업을 뭐라고 대답하지?”
“뭐라고 하긴, 있는데로! 엄마는 아프시고 아빠는 엄마 간병한다고 하면 돼지!”
“에이 친구들 다 있는데서 물어보는데... 선생님이 너무 불쌍하게 볼거아냐”
“야, 병원에서 그렇게 아프고, 가족들이 간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도 우리 같은 경우로 그렇게 오래보는 사람 많지 않아!”
“뭐, 그러긴 하지만...”
속으로 그랬다.
‘사실 불쌍한 거 맞지, 니가 워~~낙 안 불쌍하게 씩씩하게 살아서 그렇지’
대답이야 내가 하는거 아니고 알아서 적당히 하겠지.
내 숙제는 저녁에 나왔다.
열심히 걷는 중에 전화가 왔다.
“여기 면사무소인데요, 김재식씨 맞나요?”
“예! 그런데요, 무슨 일...”
충주 집주소의 면사무소에서 어저께 온라인으로 신청한 ‘학비감면신청’건으로 전화했단다.
“몇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수입 없다고 되어 있는데 맞나요?”
“예”
“재산 부분 없다고 되어 있는 것도요?”
“예”
“.....”
저쪽에서 잠시 말이 없어졌다.
“부채 부분은 증빙이 필요한데요?”
“그거 제1금융권이나 법원판결문 아니면 부채 인정 안 된다고 하더군요.
신용카드사 부채라서... 삭제해주세요“
“........”
또 잠시 공백,
“여기 재산현황에 ‘무료임대’라고 되어 있는데, 확인서 받아야하는데요”
“아, 그 집 아이들 외할아버지 집이고, 정식 건물도 아니고 컨테이너인데...”
“지금 어디계시는가요?”
“저와 아내는 병원에 6년째고 아이만 거기서 살고 있습니다 확인서 받기도 좀 그렇네요”
“.......”
결국 그 분은 ‘무료임대확인서’를 알아서 처리하시겠다고 하면서 끊으셨다.
대놓고 말로는 안하셨는데 중간마다 이렇게 묻는 말이 생략되었다는걸 느꼈다.
“그럼 뭘 먹고 사세요?”
“그럼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해요?”
“그럼 아들도 있던데 대학교는 어떻게 계속 다니나요?”
나도 대답을 했다.
“.......”
들리지도 않고 내용도 없는 침묵으로,
내가 생각해도 할 말이 없는데 무슨 대답을 어떻게 하나?
우리 이야기를 듣는 분마다, 신문사 방송국마다 그렇게 물었다.
그럼 나는 대답을 못하고 빈 침묵으로 놔둔다
“......”
누가 물으면 대답거리를 찾다가 참 갑갑해진다.
모르고 그냥 살 때는 살아지는데, 남에게 말 할 때는 민망해진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통하여 먹이고 살리고 다 지켜주신다‘고
지금까지를 근거로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말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나의 신앙고백이자 간증이지,
그게 일반적인 생활대책을 묻는 분들에게
수긍이 가는 대답은 못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그 질문에 계속 몰리면 어느 새 불안이 되고,
그 불안은 알 수 없는 분노와 짜증, 허무와 외로움이 되어 나를 덮친다.
문밖에 서 있는 사탄이 가장 기대하고 보고 싶어 하는 모습...
여기까지!
에라이 못 된 근심의 뿌리들아, 그만!
멈추지 않으면 어디까지 능글맞게 파고드는지 숱하게 당해보아서 이젠 차단한다.
큰아이가 전화를 했다. 등록금으로 모아둔 돈을 내가 빌렸었다.
오늘부터 등록금 납부한다고... 은행으로 가서 송금했다.
그런데 큰 돈이 같이 들어와 있다.
‘무슨 돈?....“하다가 액수를 보니 집 보증금으로 보내주신 갈말모금잔액이다.
하아...
이래서 모범 답안은 작성을 못하는데도 살아지는 은혜가 계속된다.
오늘 어떻게 사냐고 계속 묻는 질문의 전화 온지 딱 한 시간 뒤에,
답안은 못 적고, 대답도 못했는데 그냥 결과로 보여주신다.
“이렇게 살아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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