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나는 지렁이

희망으로 2013. 1. 11. 15:25

<나는...>

 

나는 지렁이다.

배를 땅에다 깔고 꿈틀 꿈틀 거리며 앞으로 기어가는

 

나는 달팽이다

다섯배나 되는 짐을 등에 지고 엉금엉금 가야만 하는

 

누가 나를 가볍다 비웃을 건가

누가 무게를 달아서 가벼운 생명이라 할 건가

 

다 태우고 난 재로 말하지 마라

재가 많다고 귀한 생명 아니고

재가 곱다고 깨끗한 존재 아니다.

 

무더기로 핀 꽃이 더 아름다운 거 아니고

큰 꽃이라고 더 아름다운 거 아니고

왕의 궁전에 피어야 귀한 꽃 아닌 것처럼

 

길 가에 핀 작은 꽃이라도

비바람 다 맞고

어둔 밤 다 견디어 아름다운 법

 

나는 살아서 열심히 종착지를 향하는

귀한 생명

누군가를 단 한번, 남몰래 기쁘게 하는 꽃